염불만이 생사해탈 되는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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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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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만이 생사해탈 되는지요?

본문

질문

염불에 관하여 여쭙겠습니다. 어떤 스님께서는 참선을 잘하여 조사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생사를 벗어나기란 어렵고, 실제 역사상 유명한 선사도 윤회하고 있다고 하시며 미타염불이야말로 열이면 열, 번뇌를 끊지 못해도 왕생할 수 있으니 이야말로 지름길 중 지름길이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참선은 잘해도 열에 아홉은 미끄러진다 하시며 화두 놓고 열심히 염불하라고 주장하십니다. 만약 그것이 정말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세속에 끄달리며 사는 속인들에게는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생사 해탈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에 대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수행의 문은 많이 있습니다. 염불을 해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경을 읽어 들어가는 문이 있고, 선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이 문 저 문 여러 가지의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을 벗어나면 서로 다른 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문 없는 문이라고 했죠. 즉 마음 자체는 내놓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빛깔도 없습니다. 허공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겁니다. 지금 질문을 하지만 주인공이 없다면 이렇게 하지도 못해요. 그것으로 입증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를 다스리며 이끌고 다니는 참자기를 믿으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자성입니다. 자성불이 공해서 돌아가니 주인공이에요. 고정됨이 하나도 없이 돌아가니까요. 그렇게 붙잡을 것이 없으면서 여전히 말을 하게 하고, 이 생각 저 생각나게 하고, 이것저것 보게 하고, 이것저것 듣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입증이 안됩니까?

그리고 염불이 밖으로, 소리만으로 하라고 해놓은 게 아니거든요, 사실. 그런데 꼭 바깥으로 붙잡고들 염불을 한단 말이에요. 그것도 옳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자기를 붙들고 해야한다고 해도 처음에는 쉽게 믿지 않으니까, 그렇게 안 믿으니까 바깥에다 해 놓은 것은 사실이나, 지금 시대에는 반드시 안으로 붙잡고 나가게 해야 하거든요. 지금은 모두들 의식들이 아주 성숙했잖아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해드렸죠. 절에 스님들이 많이 살았는데, 너는 누구 덕으로 사느냐 하고 물었더니 전부들 부처님 덕으로 산다고 하고, 때로는 은사스님 덕으로 산다고 하는데 그런데 한 사람만 제 덕으로 먹고 삽니다 이러더래요. 그걸 스님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괘씸하게 생각해서 불때는 부목으로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좌는 그걸 마다 하지 않고 장작 패어 불때고 부지런히 일하고 살면서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겁니다, 거기 주지스님 들으라고 하는 거죠. 어쩌다가 벌이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려고 보니까 유리문이 나가는 데인 줄 알고 나가려다 부딪치는 걸 보고는‘몸 떨어지니까 입도 떨어지더라’는 노래를 하는 겁니다.

그게 말하자면 나가는 문이, 경(經)이 문인 줄 알고 그거만 읽으니까 늙어서 몸 떨어지고 보니 다 없어져 중노릇한 본의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거든요. 그래 거기 주지스님이 어느 땐가 가만 들어보니까 이 경이 유리문이구나, 하고 알아지더라는 거죠. 그러더니 제자에게 주지 자리를 주고 자기가 부목이 됐다는 겁니다. 앉았기만 해서 유리를 뚫는 게 아니고 부목 노릇만 해서 유리를 못 뚫는 게 아니니까 제자를 주지 자리에 앉히고 나중에 자기는 선사가 됐다고 하죠.

알고 보면 이것이 얼마나 간편한 법인지 모릅니다. 팔만사천의 말씀이 그 자리에서 하나가 되고, 온갖 번뇌와 고통이 거기에서는 태양 앞의 그림자처럼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 위대한 광명이 바로 나 자신 안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야말로 우리들 수행의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번뇌를 끊어라, 버려라 하는 말을 녹이라는 말로 바꾸기도 합니다. 끊으라는 말은 둘로 보기 때문에 나옵니다. 그렇게 둘로 보는 이상 그것은 끝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생활 속에서, 나의 근본에 들고 나는 일체를 그 자리에 다시 되놓는 공부를 정말로 지극하게 해서 자유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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