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 차원 높이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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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가 차원 높이려면...

본문

질문

요즘 유행하고 있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것은 20년 전의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서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누나들한테 공부를 가르쳐서 차원 높은 곳으로 올려 줄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욱더 좋았을 것을 하구요. 작년에 저의 큰누나가 몸을 벗었습니다. 차원대로 만나서 악연을 만난 것이 원인이었지요.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누나들을 공부 시켰으면 누나들도 좀더 높은 차원의 사람들과 연이 되었을 것을,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면 항상 남는 것은 허탈감뿐이에요. 이러한 생각이 어떤 것을 인연하여 나왔는지,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앞으로 어떠한 과를 낳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닌 망상인지요? 하지만, 저는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생각조차도 그냥 나오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제 생각이 맞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냉정하게 따지고 본다면, 어제도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는 생활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왜 어제도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느냐. 항상 얘기하지만 고정됨이 없이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 한 발짝 떼어 놓으면 앞서 한 발짝이 없어지고 또 없어지고 하는 도리와 같이 우리 생활 전체가 그렇다는 얘기죠. 고정되게 한 곳만 바라보고 있으면 미쳤다고 할 겁니다. 이걸 보면 저걸 봐야 하고 이걸 들으면 저걸 들어야 하고, 이 사람 만나면 저 사람 만나야 하고, 이 길도 걸어야 하고 저 길도 걸어야 하고, 갔다 하면 와야 하고, 모든 게 고정된 게 하나도 없어요.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자다가 꿈을 꾸었대요. 너무 어렵게 찌들리며 살다 어느 날은 꿈을 꾸었는데 조상님들이 다 나타나더래요. 그래서 스님께서 조상과 내가 둘이 아니라고 그러셨는데 뭘 그렇게 성가시게 하고 괴롭게들 하시느냐고 그러니까 그 조상들의 영령들이 나왔다가 다 싹 없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로 가나 보니까 연기처럼 자기한테로 다 그냥 들어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겁이 나가지고 뛰어 왔더라구요. ‘연기처럼 변하더니 전부 저한테로 들어왔으니 이걸 어떡합니까?’ 하구요. 그래서 ‘허허, 아무리 연기처럼 해서 들어왔어도 그게 영이라면, 영에다 영을 합쳤는데 그게 몇 개나 되겠느냐?’ 하니까 ‘영이 아무리 많아도 영은 그냥 영이죠.’ ‘그러면 됐지 않느냐? 벌써 너의 몸으로 인해서 재생이 돼서 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 그랬죠.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정말이지 공부하려고 하는 분들의 조상님들은 자손들과 함께 같이 공부하러 다녀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다고 그럴까봐 말을 안하지만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의 조상님들은 그냥 고마워서 따라오는 분들도 많아요. 그러니 얼마나 그게 한 사람으로 인해서 수천 수만이 다 건져지는 도리입니까. 한 사람의 속에 몇 생이나 들어 있겠습니까. 수천 생이 됩니다, 이 몸 속에도. 그게 인과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될 수 있으면 이 지구라는 인간 만드는 공장에서 벗어나야 우리가 자유껏 살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의 근본 에너지로 그냥 자유스럽게, 때로는 이 모습으로도 되고 때로는 저 모습으로도 되고 용도에 따라서 그렇게 하면서 이 우주 전체를 다녀도 손색이 없다는 겁니다.

조상과 내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닌 이유가 고정됨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을 많이 했지요. 삼세가 공했다구요. 삼세가 공한 반면에 자기조차도 공했다구요. 고정됨이 없다고 한 자체가 바로 나도 공하고 전체가 공했다는 얘기죠. 그래서 어저께도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는 말이에요. 또 같이 포용된 나는 내세울 것도 없고, 했다고 할 것도 없고, 한다고 할 것도 없다 이런 말입니다. 고정된 게 없이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내 몸뚱이 속에 생명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목이 말라서 내가 물 한 컵을 마셨다고 한다면 내가 마신 거겠습니까, 누가 마신 거겠습니까? 개별적인 누가 마셨다고 할 수가 없죠. 어떤 것을 내세워서 내가 했다 내가 먹었다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포괄적이면서 공식(共食)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면서 어떠한 경계가 닥쳐오더라도 겁내지 마세요. 내게 부딪혀 오는 모든 것이 나의 지혜를 넓혀 주기 위해서 다각적으로 다가오는 재료라 생각하고, 근본에 모두 맡겨놓고 지켜보세요. 더 위로 올라가서 알려 하지도 말고 아래로 내려가 모르지도 말며, 오직 근본 그 자체에 놓는다면 그대로 한생각으로 모든 고가 소멸되어 위로는 조상들을 제도하고 아래로는 후손들의 뿌리를 튼튼하게 가꿔 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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