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을 주인공에 놓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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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큰스님 법문을 듣다가 의문이 나서 질문을 드립니다. 항상 나와 조상님이 한자리 하고 있는데 왜 주인공에다 조상님을 놓으라 하셨는지요. 또 조상님을 주인공에 놓는 것과 조상님이 같이 한다고 믿는 것과 공부하는데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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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그것은 세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차원은, 모르는 사람들이 형식에 따라서 천도식을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라도 해라" 하고 말씀해 놓으신 거를 따라서 그렇게 해주는 천도식이 있고, 또 한 단계는, 여러분이 이 도리를 공부하면서, 주인공에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가시는 분들도 그렇고 처음 오신 분들도 그렇고, 스님네들이 마음의 도리를 알아서 떡 한 그릇을 차려놓고 한다 하더라도 함이 없이 차림이 없이 했을 때, 비로소 영령들께서 그 마음 안에 들어오면 전체가 내 아님이 없는 도리에 들어왔다 이겁니다. 그러니 어떤 거를 먹고, 어떤 거를 갖고, 어떤 거를 할 게 없이 전체가 자기 거니까,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말을 하죠. 스님네들이 공부한 차원에 따라서 그 영령들도 천도가 된다 이겁니다.
두 번째 신도님들은 즉 말하자면 천도를, "우리 조상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또 조상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 자손들도 잘된다더라" 하는 생각으로서 천도를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생각을 할 때, 모든 걸 맡겨 놓고서 조상님의 천도를 할 때, 일체제불과 조상님들이 자식을 위하는 마음, 마음과 마음이 한데 합쳐집니다. 합쳐짐으로써 즉 말하자면 수분이 적은 사과같은 데다가 꽂아 놓고서 불을 켜는 그러한 불과는 달리, 아주 큰 밝은 불을 봤을 때 "아이구, 내가 추웠는데 저기 큰 밝은 불이 있으니까 그리로 가서 따뜻하게 밝게 살아야겠다" 했을 때에 그게 천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고 살면서 끄달리다가 돌아가면 그 차원의 그릇 밖에 안됩니다. 사발이다 종지다, 이렇게 천차만별로 돼 있는 겁니다. 그런 것을 한 그릇에 갖다가 놓고 밝게, 개미도 지나갈 수 있는, 개미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게끔 밝음을 그대로 맛볼 수 있고, 모든 게 나 아님이 없고 먹을 것도 내것 아닌 게 없으니 한 찰나에 천도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단계는, 여러분이 공부를 해서 모든 것을 정말이지 당당하고 원력이 있고 그랬을 때 "일체제불의 마음이나 모든 조상들의 마음들이 둘이 아닌 까닭에, 그 한자리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나고 드니 몇 가지 놓고 빌고 해 봤자야 그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원력이 있을 때에 그것은 촛불 하나 안 켜놔도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인등을 켜니까, 그 밝은 인등을 켜기 때문에 그 인등 속에서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한마음 속에 온 누리를 다 덮고도 남음이 있고, 밝고 온 누리에 통신 안됨이 없고, 온 누리에 한마음으로서 공심으로서 돌아갈 때에 그 조상의 마음도 그냥 거기 한자릴 하는 거죠. 따로 지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게 되죠. 그래서 생각으로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는 것과 정말로 이 도리를 알아서 함께 하는 것은 천양지차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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