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부딪침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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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힘들 때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찾을 곳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참으로 미련하게, 답답하게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이제는 주인공이 비추어 주는 밝은 빛을 향해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막아서는 그림자가 생깁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이 빛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그림자도 만나지 않았을 것을, 하고 쓴웃음을 짓습니다. 제 생각이 옳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생각의 차이로, 각자의 차원의 차이로 인한 부딪침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선원과 인연 닿아 공부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반들도 나름대로 공부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도반들과 만나서 또다시 인과를 짓고 업을 쌓아 창고에 저장하느니, 모르는 예전으로 돌아가 마음을 추스르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힘이 드는 것은‘저 모습도 지난날의 내 모습이야.’‘그도 주인공, 나도 주인공’하고 나와 상대를 동격으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것도 네가 했으니 다시는 미워하는 마음 생기지 않게 해.’라고 관하지만 용납할 수가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냥그냥 하고 나가면 될 것을 왜 자꾸 따지고 가슴 답답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에 대해 자폐아가 되려는 지난날로 되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용서가 안됩니다. 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닫아 버린 가슴으로 무슨 관이 되겠습니까? 내가 관을 하든지 하지 않든 태양은 떠오르고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정말 어디를 의지해야 할지 모를 겁니다. 제게 맞는 답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많은 분들이 살면서 그런 것을 많이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싫었는데 조금 지나서 생각해 보면 야, 그만했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싶기도 할거고,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을 잘 쓸 걸 하기도 하고, 그 덕분에 내가 배웠지,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내가 참 그때 모자랐지’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럴 때 어떤 것이 나라고 하겠습니까?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는 그 옭매인 마음이 진짜입니까? 아니면 좀더 마음을 어떻게 해 볼 것을…, 하는 마음이 진짜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닥친 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발버둥을 치고 왜 내가 이런 인연으로 꼬였나,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하고 힘겨워 합니다. 그것이 진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말하자면 속는 거죠, 그 모습에요. 힘들다고 하는 마음을 한번 잘 살펴보세요. 거기에 무엇이 있어서 나를 힘들게 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한 번 바다에 가 보세요. 바다는 맑은 호수처럼 조용하다가도 집채만한 파도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파도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바람이 일면 파도가 일어나고 바람이 자면 바다는 조용할 뿐입니다. 그리고 바다든 파도든 다 같은 바다입니다. 그 물은 파도도 될 수 있고 때로는 얼음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젖는 성질은 어느 것이나 다 똑같습니다. 이처럼 바닷물의 여러 다른 모습들이 바로 우리들의 생활 모습이요, 그리고 진리와 도의 모습과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공부를 해 나간다고 하면서도, 마치 바람이 자면 바다가 조용하듯이 마음이 조용해지면 망상이 가라앉았다고 하고, 바람이 일면 바다에 파도가 일듯, 마음이 산란하면 망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와 같이 생각하고 공부해 나가신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참선을 어떻게 해 나가시렵니까? 바다와 파도의 근본이 둘이 아니듯, 본래 망상과 보리도 둘이 아니므로, 망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그것을 분별하지 않고 모두 놓아버려야만 진정‘나’도 없고, 분별 망상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분별을 다 놓고, 놓는다는 그것도 또 놓고 푹 쉬지 못한다면, 일일이 모든 것에 끄달리게 되어서 보는 대로 분별이고, 보는 대로 망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라고 하고, 내가 산다고 하고, 내가 당했다 하고, 내가 즐겁다고 하고, 내가 고통이라고 한다면 있는 대로 고가 착착 붙죠. 살면서 새록새록 나타나는 고통을 혼자 짊어졌다고 한다면 그냥 나타나는 거죠.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그 고통은 말도 할 수 없는 거고 말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인공이에요. 그러니 그거를 이렇게 바꿔보세요.‘내 안에 있는 중생들이 더불어 같이 이렇게 했구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불어 자기 몸뚱이도 빼 놓지 않고 주인공인 거죠. 모든 것을 더불어 같이 한 거니까, 그렇게 같이 한 속에서 그것을 해결을 해야죠. 자기 혼자가 아니니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동체(同體) 속에서 더불어 했으니까, 나라는 고정된 생각을 가지지 말고 모든 것을 맡겨서 해결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같이 잘못했으면 같이 잘못한 거를 해결을 해야지, 내가 혼자 산다 하고 꺼덕거리니까 ‘흥, 너 혼자 했으면 너 혼자 맡아라.’이러고 그냥 다 안겨진단 말입니다. 안겨지니까 고통을 받을 수밖에는 없는 거죠.
그러므로 이러한 도리를 진실히 믿고 그대로 해 나가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이렇게 분별하여 고집하고, 저렇게 분별하여 고집한다면, 언제 실상을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바로 실천하는 무심 법행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인간 세상, 이 통 속에 갇혀 사는 그런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통을 자유자재로 굴리며 참다운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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