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보다 세상사가 가깝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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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도를 닦아야 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전부 스님들이나 도인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문화 생활도 알고 보면 다른 선각자들의 피눈물나는 땀과 지혜의 결실로 우리 후손들이 그 열매를 따먹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 과거보다 오늘이 배고픔을 모르고 병환에 덜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 의학을 하는 사람 등등으로 인하여 오늘의 인간사회는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적인 발전이지 내적인 발전이냐 하고 반문하실 지 모르지만 절에 조용히 앉아 일체의 번민을 끊고 염불하시는 것도 중요하나 현실에 더 가까이 앉아 고통을 겪고 있는 장애인이나 불우한 이웃들의 냄새나는 대소변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내는 훌륭한 이웃들의 모습에서 진정 인간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부처인척 하는 헛된 부처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씨를 지성껏 심는 농부의 얼굴이 부처요, 공장에서 땀을 흘리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우리 아버지들의 진지한 얼굴이 부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중생들의 삶과 멀리 계시는 스님들의 이야기는 항상 어려운 법문, 중생들에게는 선문답같이 느껴집니다. 우리에겐 세상사 걱정하는 갑남을녀의 진솔한 이야기가 불경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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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지금 질문하신 분은 자신의 생각이 전체를 위하는 생각이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기에 옳다라고 생각을 하실 테지요.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이것이 올바르고 저것은 틀리다고 세우는 생각이 나와 남을 가르고 자신을 고정시킨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개별적인 하나의 생각으로 산다면, 항상 그렇게 생각이 되고 모든 것이 그렇게만 보이게 될 겁니다.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낫다, 저것은 필요하고 이것은 필요치 않다, 이것은 좋은 일이고 저것은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가는 길이 있고 오는 길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반반씩 있다는 겁니다. 가는 길과 오는 길 이 두 개가 한데 합쳐서 작용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작용을 못하는 까닭에, 사람들이 오는 것만 알고 되돌아가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힘겹고 고정관념에 가려서 살게 됩니다. 물질계와 정신계가 한데 합쳐져서 작용을 해야 보이지 않는데 50%에서 보이는 데로 나오게끔 돼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빠졌어도 헤어나기가 힘들고 그냥 여지껏 물질 세계에서 살아 나온 관습, 인과, 업보, 유전 이런 걸로 꽉 뭉쳐서 돌아가니까 이게 부작용이 나고,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같이 돌아가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공덕이 하나도 없단 얘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남도 도와 주면서 서로 함께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벗어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벗어나게 해 줄 겁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 죽는 거를 가리지 않고 다 버린다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다고 말입니다. 두려울 것도 없고, 이거는 된다 저거는 안된다 할 것도 없고, 이거 되게 해주쇼, 잘살게 해주쇼, 잘 먹게 해주쇼 이럴 것도 없을 거고요. 나는 여러 세월을 돌아다니면서 불쌍한 사람도 알게 됐고 갈기갈기 찢어진 사람도 알게 됐고 인생 살아나가는 게 다 이렇고 축생 살아나가는 게 다 이렇고, 모두가 죄가 있다면 한 가지 모르는 게 죄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죄를 져서 죄인이 아니라 자기에게 그 위대한 보배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죄구나 하는 걸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기로 작정을 한 거죠. 그런데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알 수도 없어서 항상 껍데기의 노예가 돼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그러다가 벗어나지 못하게 돼서 또다시 또 구르고 또 구르고 그런다면 그 불쌍함을 다 어떡하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자신 먼저 밝히라고 했습니다. 꼭 스님이 됐다고 해서 구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떠한 장사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가다 보면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건지게 돼 있습니다. 길에 가고 오다가도 건지게 돼 있고요. 얼마나 멋진 줄 아십니까? 남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길에 다니다가 그런 모순된 일을 보게 될 때에, 길을 가다가도 도와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을 때 참다운 인간의 본능과 자비와 더불어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 그 기쁜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과 바꾸자고 해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한마음 주인공이다 하는 것도 이런 포괄적인 하나이지 개별적인 하나가 아니란 말입니다. 다같이 기쁨을 가지려 한다면 진정 알아야 되고, 진정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길이 내 생활과 따로 떨어져서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을 살리는 속에 부처로 가는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활 불법이라고도 했고요.
그러니 내 안의 근본의 능력을 진실로 믿고, 내 한생각에 나와 남을 더불어 함께 밝힐 수 있다면 더욱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한계 지워진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으려고 하지 마시고 한찰나에 뛰어 넘을 수 있는 이 마음의 도리를 배워서 소중한 마음씨를 일체중생을 위해서 회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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