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믿는 것도 기복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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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많은 질문에 일일이 답해 주시니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제가 살아온 길은 정말 조바심의 연속입니다. 온통 조바심을 내야 겨우 하나를 달성할까말까 한 생활입니다. 그러나 그런 조바심이 없었다면 현재의 내 자리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때까지 조바심을 내야하고 열심히 일을 함으로써만이 이 조바심을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주인공에다 맡기면 괜찮을까요? 조바심을 내건 안 내건 주인공은 움직여 주나요? 한동안 주인공에다 맡긴다고 생각하고 좀 마음이 편해졌다 싶더니 역시 믿기 어렵습니다. 주인공이 해결해 주는 것을 믿으라는 것도 기복신앙 아닌가요? 그런데 경전에 주인공이란 말이 있습니까? 주인공이 불성과 같은 것인가요. 불성이라는 것은 착한 마음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계시 같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인공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데 결국 제가 이해한 바로는 주인공을 믿으라는 것 역시 기독교의 하느님을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고 결국 주인공이라는 것 역시 새로운 기복신앙이 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요즘 힘이 빠집니다. 알기 쉽게 직설적으로 납득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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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자기 영혼과 더불어 부모의 정자 난자를 빌어서 자기를 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 주인공이라고 했습니다. 수 억겁 광년을 거쳐오면서 나를 진화시키고 탄생시키고 이렇게 해 온 장본인이 바로 나의 주인공, 즉 주장자입니다. 경전에서는 주인공을 일컬어 불성이라고도 하고 진여(眞如)라고도 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하고 참나(眞我)라고도 하죠.
그런데 주인공이라는 이름조차도 방편이에요. 하나 이것을 알기 위해서, 발견하기 위해서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두었고 ‘이뭣고’나 ‘시심마’라는 화두를 선지식들이 참구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맹목적으로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부르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겉으로 주인공이라는 걸 부르지 않아도 마음으로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 너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생각을 한다면 그대로 그게 놓는 거고 믿는 거고 그렇지, 꼭 이름을 불러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자기의 근본, 자불(自佛)이죠. 자불! 그 자불이 아니라면 우리가 이렇게 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 그대로 송장이 되겠죠. 살아 있으니까 자기의 불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주인’ 이라고 하는 것은 에너지요, ‘공’ 하는 것은 지금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는, 화해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고, 나 자체가 주인공인 것입니다.
지금 주인공이 일거일동하고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시공을 초월해서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수레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수레! 그런데 심봉이 끼워져 있기 때문에 그 수레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나를 돌아가게 하는 그 불성 자체의 기둥을 믿어야지 어딜 믿느냐고 하는 겁니다.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심봉이 바로 나의 주인이지 따로 또 무엇이 있어 돌아가게 하겠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모든 걸 자기가 벌여 놓고, 자기가 행하고, 자기가 말썽 떨고, 자기가 울고불고, 자기가 구덩이에 들어가 놓고 구덩이에서 나오려고 애를 쓰고 그러면서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과거에 자기가 지은 대로 거기에 입력이 되어 나오는 것들에 속아서 자꾸 떠 벌이고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그게 다 자기가 살아온 습관 때문입니다.
나쁜 거 좋은 거, 일했던 거 말했던 거, 하루 24시간 걸어온 거를 저녁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다 알게 되죠. 다 알게 하는 그놈 말입니다. 그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그놈, 그 한 놈이 그 여러 가지 한 걸 다 알고 있더라 이겁니다. 그 알고 있는 그놈이 바로 주인공이자, 내 몸에 그대로 부착이 돼 있으니까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라고 한 겁니다.
이 도리를 우리가 말로 할 수 없는 거지마는 이렇게 말로 해서 알아듣는다면 주인공에다가 놓을 수 있는 자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 주인공에다 오직, 모든 것을 몰두해 보려는 큰 용단과 신심, 용맹심을 일으켜서 일체 만법과 또는 만물의 활용을 나 자체가 들이고 낸다는 사실을 단호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말 아닌 말들이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주인공에 맡겨 놓으라는 겁니다. 그 자리를 믿고 맡길 때 또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구요. 자기를 존재하게 하는 근본을 발현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임을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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