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14_1986년 8월 12일 참나의 불을 밝히는 칠석
본문
여러분들께서 칠석날이라고 하는 이 자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여러분들한테 이렇게도 들을 수 있고 저렇게도 들을 수 있고, 이날까지 들어오신 걸로 봐서 내 말이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죠. 그러니 깊이깊이 잘 새겨서 들으시리라고 믿으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염주를 돌려보신 분들이든 안 돌려보신 (분들이든) 염주는 부처님이 계신 술이 있으면 염주알이 똑같이 이렇게 동그랗게 붙어 있습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린 염주를 돌릴 때 그거 한 번 쥐기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걸리면서 그거 하나 쥡니다. 그 부분 하나, 한 번, 교차로에서 그거 쥐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우리는 한 번 염주알을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려서, 그게 간단한 염주알이지마는 그것이 삼천대천세계의 유생 무생이 다 살 수 있는 우주의 근본의 진리라고,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염주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그런 대로 우리가 그 한 번 딱 쥐고 겸해서 염주를, 한데 합쳐진 부처님 계신 그 술 달린 그거 한 번 쥐기가, 극히 오랜 세월에 걸려서 그거를 한 번 쥡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동쪽에 해가 뜨면 서쪽으로 가고, 서쪽에 또 지면 동쪽으로 뜨고 이렇게 되는 이 문제, 밤낮, 일식 월식 이런 문제를 겸해서 우리가 잘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러한 마음으로써 한번 연구해 보시면 그것이 다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은 우리 산 사람들이 즉, 각을 이루어서 깨우친 날로써 이 날을 바로 그렇게 말씀해 놓으신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부부가 참 정다웁게 살았더랍니다. 비교하는 겁니다. 부부가 정다웁게 살고 그렇게 하다가 일찍 죽었더랍니다. 하나가 일찍 죽으니까 하나는 그걸 못 잊어서 마음으로써 그 사랑을 항상 간직하면서 살다가 말입니다. 그 여인을 좇아가니까 여인은 벌써 남편을 좇아서 이 세상으로 나왔더랍니다. 그랬으니 또 못 만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인은 다시 또 염원을 하다가 또 남편을 좇아가니깐 말입니다. 남편은 또 들어오게 됐죠. 그러니 그거를 맞추려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돌다 돌다 스쳐가기만 하고 안타까워서 즉, 남쪽과 북쪽을 향해서 스쳐가기만 하면서 그렇게 애원을 했답니다. 만나보기를 그렇게 염원했건만 그 기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걸렸는지 모른답니다. 그 기일은 즉,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나이가 맞지 않으면 안되죠. 나이가 맞지 않으면 부부로서 살 수가 없는 거죠? 10년이 위다, 20년이 위다, 30년이 위다, 어른하고 애하고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맞추려니까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남편이 나오니깐 뒤쫓아 나와서, 뒤쫓아 나와도 어린애더랍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살면서 또 닦고 닦아서 또 다시 왔다가 또 다시 가면서, 또 맞지 않는 것이 뭐냐 하면 그저 허덕지덕 하다 보니까 하나는 상놈의 집 딸로 나오고 하나는 양반의 집 아들로 나왔으니 또 맞지 않는다 이거야. 할 수 없이 그 집의 종으로 들어가서 살면서 그렇게 그렇게 빌었답니다. 나는 언제나 상놈을 벗어나서 양반 선비하고 살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말입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은연중 항상 인연이 돼서 돌아가는 거라. 우리가 얘기니깐 그렇지 여러분들도 자연히 그렇게 인연 따라서 도는 것이지, 인연 따라서 식구들이 한데 모인 거고, 인연 따라서 정치인들이 한데 모인 겁니다. 그건 자기 차원 따라서 상업가들이 한데 모인 겁니다. 은이 은대로 한데 모인 겁니다. 이것은 바로 그 차원에 따라서 만남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차원이 다르니까 차원에 따라서 그것을 맞추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보니까 나중에는 종으로까지 살게 됐고 선비는 주인으로서 일찍 죽으니까 자기는 좇아서 바로 부처님 앞에 가서 염원을 하시면서 그렇게 한 3년 후에 그걸 다…, 3년을 겪는 거를 산등성이 밑에 가서 그분의 자손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거를 피해서 그 밑에 가서 그렇게 염원을 하고 그렇게 애를 썼더랍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똑같은 문벌과 똑같은 양반의 집으로 태어나서 둘이 재미있게 살았다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한 번 만나서 살기를 그 인연에 따라서 얼마나 어려웠다는 얘깁니다. 그랬는데 그렇게 부부가 살면서 그거를 알았습니다. 이 부부는 잠시잠깐 뜬구름같이 사는 것이 이건데 우리는 모르고 이날까지 염원을 하고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거를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나중에 중이 돼 버렸습니다. 양(쪽)이 다 그것을 알고서 떠나서 30이 넘어서 40이 가까워서 입산을 해서 승려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승려가 돼서 무엇을 생각했느냐 하면, ‘칠성’ 이라는 이것은 바로 육신 안에 바로 내 임이 계시고 내 임 안에 밝음이 있으니 이것이 칠성이니라. 이것이 그 마음, 한마음에 의해서 다, 여러분들의 명과 또는 아픔을 가셔줄 수 있고, 그 얼마나 돌고 돌았는데 돌면서 너무도 헤맸던 그 인연의 자기 그 마음의 깨우침에 의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분들이 잘…, 그저 명이 길게 해 주시고, 항상 잘살게끔 노력을 해 주셨고, 또 항상 그, 보배로서의 길을 (인도해) 길잡이가 됐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오늘날 칠성이라는, 칠성각이라고 하는 그 뜻은 밝았다는, 이렇게 여러분들이 사람이기에 바로 부처가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밝음을 가졌을 수가 있고 밝음을 가졌기 때문에 임은 나한테 있고 그렇게 교차로에서 그렇게 얽매이고 찾으려고 애를 쓰고, 만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아주 가까이 있다는 그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이 날을 정해 놨다는 얘깁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그 뜻을 아시라고 해 놓은 거지, 칠석날이라고 해 놔서 내가 빌고 산 사람을 위해서 촛불을 켜야 한다 하는 그 뜻은 어디에 뜻이 있느냐는 걸 아셔야 합니다.
산 사람을 위해서 오늘은 정해진 날이다. 백중날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백중으로 정한 날이다. 그때는 그때 따라서 또 말씀드리지오마는 오늘 이렇게 ‘산 사람을 위해서 촛불을 켜라’ ‘내 임은 내 마음, 이 육근 안에 있음으로써 임과 같이 있으니 칠이요, 바로 각이니라’ 하는 건 밝음을 뜻하는 거라. 이것이 둘이 아니기에 항상 만나려고 애를 쓸 일도 없거니와 항상 밝았으니, 죽고 사는 게 어딨으며 맴돌 게 어딨겠느냐는 얘깁니다. 동서가 둘이 아니고 남녀가 둘이 아닌데 어찌 이것이 둘이겠는가. 밝음은 그대로 여여하게 밝음이 있으니 오늘 칠성각으로서 이 집을 정해 놓고 칠성에, 칠성 부처님 앞에 항상 빌어서 우리가 밝음을 알게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이 항상 마음의 불을 켜야지. 만약에 항상 노예로서 남의 덕만 보려고 해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동쪽이 있고 남쪽이 있고 북쪽이 있고 서쪽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꿈과 생시가 둘이 아닌 그 까닭에 우리는 오늘의 밝은 이 칠석날을 정해 놓은 것도 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이 오늘 칠석이라고 이렇게 오시니까 부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자기가 부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 영향력을 가지고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그러한 분이 여러분이 되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날의 몸을 가지고 그 뜻을 모른다면 세세생생에 끄달리면서 그 업보의 고를 어떻게 받으시렵니까. 그러니 몸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가 이런 것을 다 알고 넘어가야 될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생략 하는 게 나으면 생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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