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26_1991년 11월 03일 주인공이라는 끈을 잡고 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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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라는 끈을 잡고 하는 공부
질문 : 중생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불성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에게 본래부터 불성이 있었다면 무슨 까닭으로 그 불성이 온갖 무명(無明)에 뒤얽히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만일 태초부터 무명이 있었다면 중생에게 어찌 불성이 있다고 했는지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 불성이라는 것은요, 진리인 것입니다. 불성이라는 거는 즉 말하자면 '영원한 생명의 근본' 이 불성이라면, 전체의 그 생명의 근본은 같이, 같이 돌아가는 평등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주와 이 세상과 직결이 돼 있고, 세상은 가설이 돼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근본은 그렇게 같이 돌아가지만 그 외에 영혼이라는 그 자체, 의식 자체는 천차만별로 돌아갑니다. 천차만별로 돌아가는 과정에 나쁘고 좋은 것을 모릅니다, 하중생(下衆生)이. 그래서 짐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쁘고 좋은 걸 모르기 때문에, 이 몸 안에 들어있는 중생들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이 다스리면서 놔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불성이 본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이런 공부를 해야 하고 왜 그러냐고 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영혼 자체가 살아나가는 데 관습에 의해서, 주어진 업에 따라서 그냥 진행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이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서 자기 자성(自性)을 발견을 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과거에 살던 자기 조상과 현실에 사는 자기가, 즉 말하자면 같이 합류화 돼서 작용을 해야만이 진짜 '인간' 이라고 봅니다.
질문 : 다음 질문 더 드리겠습니다. ‘주인공에게 맡겨라, 맡겨라’ 하시는데 그것은'나' 라는 존재의 생각 생각이 온갖 망념의 장난일 뿐이라고 이해됩니다. 맡긴다는 생각도 망념의 한 가지일 것인데, 망념 사량으로 주인공에게 맡겨서 무엇을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지 저희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점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 여러분들은 도인이 다 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첫째도 '나' 를 발견하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두 번째도 둘이 아닌 도리를 알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세 번째도 둘이 아닌 도리에서 둘이 아니게 나툼을 알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첫째는, 내가 무명을 벗지 못해서 모든 몸 안에 들어있는 의식들이 모두 아무것도 모르고 저 상대성의 끈에, 인과의 끈에 의해서 자꾸 바깥으로 결과적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첫째는 예를 들어서 무엇이든지, (지금) 물건이든지 중심을 꿰어야만이 바퀴가 굴러가듯이 말입니다. 차도 중심이 있으니까 바퀴가 굴러가죠? 모든 것은 중심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중심이 없으면 이거는 목석이죠.
그래서 이 중심을, 즉 말하자면 가는 것만 알았지 오는 거를 모르니까, 오는 거와 가는 거와 한데 합류화시켜서 작용을 하게끔 하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모든 것은 중심을 세워서, 이거는 개별적인 하나가 아니라 포괄적인 하나입니다. 이 한마음 주인공이라는 건 내면에서도 한마음이요, 모두 내면세계의 세포 하나하나의 생명들도 '나' 아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도 모든 것이 한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모두가. 그러니까 '한마음 주인공' 하고 세워야 끈을 잡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실험도 그걸 잡고 실험을 할 수 있고, 그걸 잡고 체험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에 수련하는 것은 작업입니다. 즉 말하자면 모든 것을, 즉 말하자면 숙명통! 숙명통이 컴퓨터라면 입력이 돼서 자꾸…, 즉 말하자면 모든 업이 나오는데, 악업 선업이 나오는 거를 되 거기다가 맡겨놓아야만이 앞서의 입력된 게 없어지면서, 지금 현실에 들면 드는 대로 또 거기다가 또 다음에 또 놓으면 또 앞서의 것이 또 없어지고 또 놓고 또 없어지고 또 놓고 이래야만이, 내 마음이 스스로 밝아져서 나를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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