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39_1994년 4월 24일 진짜 자기부터 알아야 일체를 알아
본문
질문자: 저는 그동안에 수행해 온 과정을 스님께 말씀드리고 꼭 알고 싶은 질문을 한 가지 올리겠습니다. 옛날에는 금강경을 읽고 천수경을 읽고 또 법문을 들어가면서 생활을 하고 불자로서 보시니 자비니를 실천해 가면서 살아간다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생활을 하다가 어떤 자극이 오면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내 마음이 참나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근데 이 한마음 공부를 한 뒤부터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하고 하나하나 굴리면서 놓아가면서 생활을 해간답니다. 경을 통한 그런 공부를 할 때는, 지금 생각하면 그래요, 스님. 논에서 벼를 가져다가 한 알 한 알 쌀을 만들어서 씻어서 밥솥에 넣고는 불을 켜지도 않고 배부르기만을 기다렸던 내 삶이었던 것 같애요, 스님. 근데 이 마음공부를 하면서부터는 밥을 해서 식탁에 올려놓고 수저로 떠먹고 있어요, 스님. 너무나 스님이 자세히 잘 가르쳐 주셔서요.
큰스님: 아주 표현 잘했소.
질문자: 이 밥을 한 수저씩 한 수저씩 떠먹으니 배부르고 배고프고가 어디가 있겠어요. 내가 원하면 떠먹으면 배부를 건 자동이잖아요, 스님.
큰스님: 아, 참 좋구먼.
질문자: 그래서 저는 너무 감사하고 그동안에 경 공부를 하고 또 저를 지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여러 스승님들께 이 자리를 통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회향 올리고 우리 큰스님 통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정진해 갈 것을 정말 약속드리고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스님: 그래서요, “경을 보되 보지 말고, 네가 경을 보지 말고 또 경은 너를 보지 않도록 해라.” 한 것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경을 보는 놈도 그놈이요, 안 보는 놈도 그놈이에요. 그러니 잘했든 못했든, 경을 꿰가지고 굴리든 말았든 그놈이 다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했으니까, 그렇게 한다면 ‘경을 무수히 보되 보지 않고 진실을 봤다’ 이렇게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그저 내가 배 고프면 어떠한 문제의 용도에 따라서 닥친다 하더라도 겁 안나고 우리가 배 고프면 밥 떠 먹듯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과정과 진리를 지금 여러분들한테 이끌어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인연을 만나기도 참 힘드는 인연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때를 놓치지 마시고 공부 열심히들 하세요. 못났든 잘났든 돈이 없든 있든 그것을 다 떠나서 말입니다. 죽을 먹는다 하더라도 ‘죽 먹이는 놈도 너니까 쌀밥 주는 놈도 너다.’ 하고 그렇게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바로 죽이 쌀밥으로 화해서 쌀밥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소립니다.
질문자: 스님, 제가 질문 한 가지 드릴게요. 스님 법문을 직접 듣고 또 테이프를 보고 공부를 하면서 또 한마음요전을 읽어가면서 늘 그것을 참구하고 또 참구하면서 보는데 스님께서는 늘 “안에서 구해서, 자기 안에서 구해서 마음을 밝혀나가고 깨우쳐 나가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생활해 가면서 어떻게 살아야지만 마음을 밝히고 안으로 잘 구할 수 있는가? 아까 스님이 다 말씀해 주셨지마는 우리, 저를, 또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큰스님: 맨날 한 말이 그 말이지, 뭐. 하지만 진짜로, 여러분들이 아주 진짜로 믿고 절감을 해야지 되는 거지. 그런데 그걸 내가 이렇게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아주 급박할 때, 아주 죽어갈 때 급박할 때에 그 심정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심정, 그 정도가 돼야 이제 겨우 ‘아이고, 그냥 너만이 할 수 있다.’고 아주 그냥 절박하게 하죠. 그런 때는 미국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일본에 있는 사람도 그렇구요, 아주 스님한테 전화를 할 때 절박하게 합니다. “알았어. 절박하게 관해 봐!” 그러면 그 이튿날이고 그 이튿날이고 전화가 또 뚜르르 옵니다. “아이구, 전화하고 나니까 그냥 멎었어요.” 하거든요. 이것이 바로…. 그래서 나는 그럽니다. “스님, 참 감사합니다.” 이럽니다. 그래서 “응, 네 전기줄과 내 전기줄이 둘이 아니가 돼서, 둘이 아닌 까닭에 불이 들어왔을 뿐이지, 내 전기줄이 제일이고 네 전기줄이 아니고 이렇게 한 게 아니라 네 전기줄, 마음의 전기줄하고 내 마음의 전기줄하고 같이 합쳐 놨으니까 불이 들어온 거다. 그러니까 네가 낫게 하고 내가 낫게 한 것도 없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역시 진정으로 믿고 그렇게…, 자기 뿌리를 자기가 안 믿으면 누굴 믿을 겁니까? 이름을 믿을 겁니까? 형상을 믿을 겁니까? 또 스님네들의 고깃덩어리를 믿을 겁니까, 응? 어떻게, 어떻게 할 겁니까? 당신을 이끌어가지고 가는 진실한 당신을 믿어야죠.
그러니 우리는 경, 부처님의 경, 부처님의 말씀을 해놓으신 경이나 또는 각처 각급의 스님네들이 이끌어 주는 그것은 역시 길잡이밖에 안 되는 겁니다. 나부터도 길잡이밖에 안 되는데 방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스님네들이 방편을 안으로 두게 하고 방편을 썼으면 좋겠는데 바깥으로 기도하고 빌게 만드는 그것이 전부 가톨릭교고 기독교고 전부 그래요. 모두, 모두 하여튼 바깥으로 기도하게 하고 바깥으로 믿게 하거든요. 주처는 자기가 있기 때문에 있는 건데. 그렇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진짜 자기부터 알아야 일체를 다 알 수 있다고 가르치셨는데 모두 타의에서 구하고 있고 바깥으로 기도하고 있고…, 어느 종교를 막론해 좋고 세계적으로 봐도 다 그래요. 알라신교니 뭐 티베트불교니 뭐 기독교니 가톨릭교니 그런 사람들 다 만나봤고 또 그렇게, 어떻게 하나 기웃거려 봤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 이건 부처님의 가르침이 엇나가는 격이거든요.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 뜻을 아예 뒤바꿔 놓고 지금 가르치는 거와 똑같은 얘기죠.
그러니 우리가 경 한 번을 본다 하더라도 경을 달달달달 외워서 그 이름을 알고 말을 아는 게 아니라 그 진실을 알아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모두 여러분들이 그저 그 진실한 자기, 못났든 잘났든, 정말 희박하고 못나서 그냥 하든, 그러한 사람도 역시 자기 원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기의 원소 자체 불성은 변하지도 않는 거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아주 영원한 겁니다. 그러니 그 영원한 그 자체의 불성은, 사람이 못났든 잘났든 잘 배웠든 못 배웠든 그거를 떠난 자리입니다. 그러니 실망하시진 말고 뒤로 물러서지도 마시고 열심히들, 공부 열심히들 하세요. 공부하시라는 게 내면으로 믿고 이 자리에서 당장 급하신 분들이, 여기 처음 나오신 분들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주인공 뿌리야, 너만이 알고 있어.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하고 거길 믿고 그냥 그렇게 진정코 진실한 마음으로 해보세요. 안되나 되나!
질문자: 스님, 감사합니다.
큰스님: 되기 위해서만 하는 거는 아닙니다만 그것이 바로 방편이자 바로 부처님께서 “사탕 줄게 나오너라.” 불난 집에서 “내가 너 장난감 뭘 줄게 나오너라.” 이럭한 거나 똑같은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으십시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아니었더라면 여러분들과 내가 이렇게 있지도 않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할 줄도 모를 거고요. 그러니까 감사한 줄 아시고요. 하여튼 열심히들, 생활 속에서 진실히 해보십시오. 하나하나 다가오는 그 괴로움을, 애고를, 번뇌를 번뇌라고 생각지 마시고 공부할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하시고요. 그 재료가 있기 때문에 내가 공부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진실하게 가지시고 한번 해보십시오.
질문자: 한 가지 더 질문드릴게요. 스님, 천도재를 지낼 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천일기도를 드린 천도재일이 있어서 거기에 같이 동참해서 천일 천도재를 지냈었고, 또 백일 천도재가 있어서 또 거기 동참해서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도 부족한지라 대덕 스님을 모시고 또 천도재를 지냈었거든요. 천도재란 이렇게 자꾸자꾸 여러 번 지내야지만이 조상 천도가 다 되고 내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중생이 다 천도가 되는지요.
큰스님: 여러 번을 지내야 천도가 된다, 안 지내야 천도가 된다 이런 말은 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이 세상 떡을 하나 집어 먹은 분들이 천도재를 할 때는, 즉 그 영혼이 들어와서 그 스님의 마음을 볼 때 ‘아! 이 세상은 모두 떡 하나에 속하는 거로구나.’ 하고 다 떡 하나에 있는 거를 다 알게 되면, 그 스님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그 스님의 마음속에 와서 알게 되지만, 스님네들이 인제 상 하나를 차려놓고, 상 하나를 차려놓고 ‘얼마를 들여서 얼마를 상을 차렸다’ 이러는 거를 스님은 알고 있거든요. 그죠? 스님네가 잘 알죠. 그러면 영혼이 들어와서 스님네가 상 차려놓은 것만 알고 있게 되죠. 이 세상이 떡 하나에 속한다는 거는 모르고.
그러니까 떡 하나를 집어삼키고, 바다를 삼키고 토할 수 있는 그런 스님네라면 보지 않아도 되고 차리지 않아도 되고 여러 번 안 해도 되고, 하지만 그런 스님네가 아니라면 여러 번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공부하기에 달린 거예요. 여러분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스님네가 어떻든 말았든 그냥 여러분들이 하실 수 있는 거니까요. 모두가, 옛날의 조상들과 부처님 마음과 조상의 마음과 내 마음이 모두가 둘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한 솥 팥죽 끓는 거나 똑같은 얘기죠. 끓는 방울이 많다 하더라도 한 솥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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