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마음공부를 해야 하나 > 주제법문

주제법문


주제법문-148_1994년 10월 23일 우리는 왜 마음공부를 해야 하나

본문

큰스님: 한 번만 하세요. 이 절하는 것도 급할 때는 삼정례를 일정례로 줄이는 거예요.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또 바쁘지 않다면 그냥 길게 늘려서 삼정례를 하든지 칠정례를 하든지 팔정례를 하든지 그건 상관이 없어요. 급하면 급한 대로, 또 급하지 않으면 않은 대로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자기가 해나가야, 대치를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고정됨이 없어요. 꼭 ‘삼정례를 해라’ 이러는 것도 아니고 ‘일정례를 해라’ 이러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 상황 따라서. 


질문: 안녕하십니까? ‘참나’와 ‘거짓 나’는 왜 형성되어 있으며 그 참나를 계속 지속시키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큰스님: 사람이 말이요, 자기 정신이 없으면 무효야. 육신이 무효라고. 송장이 된단 말이에요. 정신과 자기 마음, 이렇게 해서 총동원해서 같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은 언제나 빼놓고 자기 마음, 자기가 마음이라 그러고 이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걸 마음이라고 그러고 그냥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물질세계의 50%만 가지고 사는 폭이 되죠, 자기가 알기를. 

본래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이 아니게끔 지금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생각에 자기가 그냥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영화배우들이 감독에 의해서 모든 거를 소임을 맡아 가지고 영화 탈렌트가 돼야 되는데 감독은 쑥 빼 버리고 자기 자유껏 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감독이라는 자체의 자기 참자기가 있고, 정신세계에. 지금 물질세계의 자기, 지금 현 자기가 있어요. 그런데 둘이 아니게끔 같이 지금 운용을 하고 있고 생활을 하고 있고 이러면서도 자기가 그거를 납득을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납득하기 위해서 공부는 해야죠? 정신세계를 모르면 우리는 지금 현시대에 앞으로 점점 살기가 점점 급박해져요. 

지금 모든 게 과학이 발전이 됐다 이렇게 해도, 로케트가 올라가고 컴퓨터가 이렇게 저렇게 되고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많지만, 우리가 ‘비행기가 간다’ 이러면 컴퓨터에 의해서 나온 대로 이게 조정을 해야 하지마는…. 그러나…, 예를 들어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마음먹는 대로 비행기가 움죽거린다면 그건 첨단의 일이에요. 이 공부가 그러한 공부예요. 자기 자유자재권을 얻기 위해서요. 지금 우리 중세계는 바로 이 중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중세계를 굴릴 수가 없죠. 중세계가 이 컵이라면, 아니 중세계가 버스라면 버스 속에 다 타고 여러분들이 다녀도 버스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모르죠? 그 버스 안에서 벗어나야 자유인의 권리가 있는 거죠. 

그런데 버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권리가 없는 거예요, 자유 권리가. 그런 거와 같이 자기가 정신계에 집중을 안 하고 모른다면 물질계에도 발전이 못 돼요. 그리고 ‘테두리다’ 이러는 것도 과학이라는 이름 안에 테두리가 있어서 요거는 요렇고, 요건 요렇고 요건 요렇고 꼭이…, 예를 들어서 즉 말하자면 과학이라는 테두리에 덮여 있는 뚜껑이, 뚜껑이 덮여 있기만 한 게 아니거든요. 이건 고정된 게 하나도 없다고 그랬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그러니까 글로 써 놓는 거는 고정된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과학의 뚜껑을 파헤쳐야 진짜 과학이 나올 수 있어요. 자유권의 과학이요. 이 모두를 여러분들이, 지금 한창 자라가는 젊은 세대들이 이 도리를 모른다면, 앞으로 드문드문 그런 사람들이 세계 속에서 나온다면 그걸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어요. 

예전에 내가 한 스무 살 가까웠을 때 그, 접시 비행기가 뜨고 그랬어요. 그럴 때 난 생각했어요. 뭘 생각했느냐 하면 ‘접시 비행기는 자유권을 가진 그 마음으로써 그대로 움죽거리는구나.’ 하는 거를요. 그러니 우리가 그 세계를 넘어볼 수도 없고 점프를 해서 넘어갈 수도 없는 거죠. 여러분들은 어렵게 생각만 하는데 이것을 풀어나가는 데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이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저 우주 세계를 가려 해도 한 찰나예요. 또 요기를 내다 보는 거나, 여기 앉아서 댁의 집을 내다 보는 거나, 저 우주 세계를 내다 보는 거나 똑 같아요. 맞먹어요. 시공을 초월했어요. 이 마음은 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심안의 눈을 갖는다면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거죠, 내가 보려고 생각을 한다면. 그런데 그것도, 보는 것도 도가 아니요, 듣는 것도 도가 아니요. 사물의 모든 거를 다, 보이지 않는 데서 마음과 마음이 연결돼서 말하는 거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건 도가 아니라고 그랬어요. 보는 거, 듣는 거, 남의 속을 아는 거, 어디서 온 거, 또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오는 신족통, 이 모두를 너희가 잘한다 하더라도 그건 도가 아니니라. 거기 그 가운데서는, 바로 오신통 가운데서는 열쇠가, 누진이라는 열쇠가 있어요. 오신통 바깥으로 벗어나야, 오신통이라는 게 이 진리니까요. 이 진리를 벗어나야 진리를 굴리죠. 

댁이 나한테 이 공부는 왜 하는지 그걸 물었죠?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거예요. 사람은 천차만별의 차원에 따라서 모두 살고 있어요. 여러분도 지금 이 세상 돌아가는 걸 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금방에는 금이 모이는 데지 넝마나 무쇠나 모이는 데가 아니죠? 또 무쇠전에 금이 갈 리 없죠. 넝마전에 금이 갈 리 없고, 깡통 공장에 금이 갈 리 없고, 사람 사는 것도 그래요. 모두 차원에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들, 또는 상인들, 공무원들, 또 기사들, 또 정치인들, 종교인들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렇게 자기가 자기의 차원대로 모두 살고 있으니까, 그 차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가 같이 모이지 말라 그래도 같이 모여요. 기사는 기사대로 모이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모여요. 그렇게 해서 모두가 살죠. 누가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지 않아도 그렇게 스스로 모이게끔 돼 있어요. 

여러분들더러 가르치지 않아도 금반지가 떨어지면 어디로 가져가시겠어요? 금방으로 가져가죠? 그거 봐요. 누가 이래라 저래라 안 해도 그 물질을 봐서, 이게 어느 차원인가 봐서 아주 차원대로 그냥 나누어지죠. 그러니까 이 자연의 법칙이 그대로 우리들의 생활의 법칙이에요. 그러니 내가 나를 모르고야…. 그래 사대성인들이 다 말씀하셨죠. 달마 대사나 소크라테스나 또 이름이 많이 있어요. 그렇지만 모두가 ‘너부터 믿고 너부터 알아라’ 이랬거든. 너부터 모른다면 이 우주의 섭류를 다 모르느니라. 너가 없는데 어떻게 우주의 섭류를 알며 상대성 원리를 알 수 있겠느냐. 너가 있기 때문에 너를 먼저 알고 너의 그릇을 먼저 만들어 놓고, 태양력을 받아서 전력으로, 갖은 각색으로 용도로 다 써라 이런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배워야 하겠죠? 알아야 하겠죠? 해야 하겠죠.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