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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_171_1993년 04월 04일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삶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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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천부경에 대해서 간단히 여쭙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천부경에 대한 해설 책자를 여러 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비적인 요소나 비밀스러운 가르침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다만 일체유심조라는 마음 도리를 일러 놓은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천부경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큰스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에, 천부경이라는 것이 81자로 돼 있다고 합디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80종호가 됩니다. 그러면 이거 하고 비교해 볼 때 똑같습니다. 그 가운데 뭐가 있느냐? 우리가 반야심경 읽죠? 반야심경을 읽어 보면 알 겁니다. 또 덧붙이자면 그때의 세월은 너무도 인간이 태어나서 사람이 살아나가는 도리를 몰랐어. 그래서 도리를 일러주기 위해서, 천지인은 하나로 돌아가느니라. 그러니 부모한테 효도하는 법, 농사짓는 법, 사람을 다루는 법, 또는 마음을 쓰는 법 이것이 삼세에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감을 그대로 가르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더하고 덜하고 없이, 반야심경을 잘 보시면서 우리가 우리 삶을 또 한번 내다보면, 지구가 돌아가는데 어떻게 우리가 지구가 돌아가는지 모르고,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이것을 생각하고, 또 우리 뱃속에 있는 오장 육부 속에 있는 그 중생들이 사람이 어디로 돌아다니는 거를 알지 못하고 있는 거를 세밀히 우리가 알아본다면 그 내용이 다 거기서 나옵니다. 


질문: 제 자신조차 뭐 제대로 관하질 못하니까 그 질서 체계 있이 여쭤보지도 못하고, 그래 다시 좀, 그 천부경에 대한 거 관련해서 한 가지만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언젠가 큰스님께서 반문하신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아홉이 되는 도리를 아느냐?’ 이렇게 말씀하셨고요. 또한 어느 때는 ‘물 한 모금이 세 모금이 되며, 한 모금이 곧 아홉 모금이니라.’ 하셨습니다. 왠지 이 말씀이 천부경과 관련되는 것 같아서 그 뜻을 여쭙고자 합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부탁드리겠습니다. 

 

큰스님: 시간이 무(無)입니다, 무! 시간이 무예요. 우리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서 시간이니 두 시간이니 세 시간이니 하지, 전체가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거를 볼 때 시간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시(無時)죠, 무시! 그렇죠? 그래, 하나로 돌아가면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도 없으니 무시죠, 무시! 너만 두 시간, 한 시간이라고 지내고 나는 그렇게 안 지내는 게 아니고, 전체가 그 시간을 다 가지고 사니까 무시죠. 나만이 그렇게 사는 게 아니고, 상대방 사람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시예요. 무시이자, 무시처럼 우리가 한마음이라면 삼천 년 전의 마음이나 지금 현재의 마음이나 똑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 아닌 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내가 예전에 그랬죠. 한 모금을 물을 먹으니까 ‘세 모금이요.’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모금을 마시니까 아, ‘아홉 모금이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이 참작이 돼서 ‘아하, 이것이 하나가 풀리면 다 풀리는구나. 시간과 공간이 다 초월됐구나. 이게 모두가 공(空)했구나. 그러니 이 시간이다 할 것도 없고 저 시간이다 할 것도 없구나. 그거는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이름일 뿐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을, 그 뜻을 아시겠죠? 

우리가 지금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살고 있노라고요. 무시로요. 일시이면서도 무시로 살고 있다고요. 또 우리가 종을 따진다 하더라도 우리 생명의 근본이 너만 생명의 근본이 있고 나만 생명의 근본이 없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생명의 근본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근본이고 어떤 것이 근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까 무종이죠. 

한마음으로 모두가 돌아가듯이, 하나로 들고 나면서 돌아가듯이, 정맥과 동맥이 하나로 돌아가듯이…. 이게 정맥 따로 보고 동맥을 따로 본다면 이게 따로따로 둘이지마는 같이 하나로 본다면 하나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면서도 무종이다 이거야, 하나면서도. 전체 한데 합해서 하나로 돌아가면서도 그냥 무종이다.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생명만 중한 것도 아니고 네 생명만 중한 것도 아니야. 뿌리는 다 마찬가지야. 그렇기 때문에 어떤 걸 뿌리라고 하고 어떤 걸 뿌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까닭에 바로 무종이라고 했던 겁니다. 

그와 같이 아까 ‘물 세 모금이 아홉 모금이 된다.’ 이 소리는 우리가  나름대로 생각하기에 ‘세 모금이 아홉 모금이 되고, 한 모금이 아홉 모금이 되고, 아홉 모금이 세 모금도 되고’…. 이 주먹이 자동적으로, 쥘 때는 쥐고 펼 때는 펴야 정상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상으로 살기 위해서 세 모금이 됐다가 아홉 모금이 됐다가 한 모금이 됐다가 이렇게 된 거 일상생활에 있는 것입니다. 이거를 뜻으로 생각을 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하나를 만났을 때 “아버지!” 하면 자동적으로 아버지 노릇을 합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보!” 하면 남편 노릇을 합니다. 그러니 언제 어느 때 “여보!” 하고 찾을는지 “아버지!” 하고 찾을는지 “형님!” 하고 찾을는지 “얘, 아무개야!” 하고 찾을는지 그거는 지명을 못 해놓고 삽니다. 만나면 그냥 만나는 거고, 자동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아홉이 셋이 될 수가 있고 셋이 하나가 될 수가 있고, 자동적으로 돌아가면서 더하고 덜함이 없이 그냥 돌아가면서 중용을 하는 데에 쓰이는 그, 살림살이입니다. 우리가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이 아니게 작용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삶의 바로…, 권도라고 할까요? 이것은 모든 여러분들에게 권리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대권을 가질 수가 있죠. 그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면 누구나가 다 부처될 수 있다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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