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_185-1992년 11월 22일 죽든 살든 그 근본이 주인공
본문
질문: 목석같은 마음하고요, 무심으로 산다는 것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큰스님: 목석같은 건 그냥 포기하고 가는 게 목석이고요. 이건 포기가 아니에요. 포기가 아니라 재생을 하는, 재생의 중용이죠. 그러니까 창조의 중용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내가 용광로에다 넣어서 재생은 재생대로, 용광로에 넣기만 하면 재생이 돼서 나가게끔 다 만들어져 있으니까, 자동적으로. 그렇게 돼 있으니까 그걸 알기 때문에 거기다 맡기는 거예요. 맡겨 놔야지, 포기한다면 그냥 한데로 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맡겨 놓는다면 모두가 우주와 직결이 돼 있고, 세상과 가설이 돼 있는 근본이 여긴데, 거기다 놓는다면 하나도 빈틈없이 돌아가서 딱딱 맞춰지지마는 포기를 한다면 그냥 내버리는 거나 한가지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은 목석이요, 그러니까 생각이 자꾸 난다 하더라도, 어떠한 게 난다 하더라도 그건 재료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좋겠다 이거죠. 나를 승화시킬 수 있는 재료다. 이 몸뚱이 속에 의식들이 다 그렇게, 팥죽 솥에 팥죽 방울 나오듯 그렇게 모든 방울이 나와도 그 팥죽 솥에서 나오는 방울이지 딴 데서 오는 게 아니거든. 그와 같이 인간의 이 몸뚱이가 팥죽 솥이라면 이 몸뚱이 속에서 다 나오는 건데 나오는 것대로 거기다 되돌려 놓는다면 얼마나, 대기권에서 이탈되지 않게끔 얼마나 잘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이 모든 게 우리가, 불교에서는 법계라고 하지마는 이 세포 하나하나에 이것이 바로 대기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죠. 이 의식들이 다, 바깥이고 안이고 의식들은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모습들은 거기 있으면서 작용을 해요. 그래서 딴 세균을 끌어들일 수도 있고, 유전성을 끌어들일 수도 있고, 영계성을 끌어들일 수도 있고, 또는 영계성으로 인해서 유전이 될 수 있고, 인과로 인해서 유전이 될 수도 있고 이 병이라는 것이 천차만별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이런 사람도 있어요. 이 아버지가 땅꾼 노릇을 했는데, 수없이 땅꾼 노릇을 했는데 그것이 항상 산 거를 그냥 잡아서 항상 저거 했으니까 참 기가 막히죠. 그런데 아들 삼 형제를 낳았는데 아들 삼 형제가 다 불구인이에요. 이런 병들은 어디서 왔다고 보세요? 이게 바로 과(果)에서 온 거거든요. 과에서 유전이 된 거죠. 그런 거를 의사가 어떻게 합니까? 그거를 먼저 뿌리를, 썩은 거를 잘라 줘야만이 이게 새싹이 돋을 수 있죠. 새 뿌리가 내릴 수 있는 거죠. 그와 같이 그 업보라는 것이 유전성이라는 거, 영계성이라는 거, 세균성이라는 거 이거 무시 못 해요. 이 모두가 안에서, 이 세포 하나하나의 대기권에서 그것을 좌우하죠, 연락처도 하고. 대뇌로다가 연락을 해서 사대로 연락을 하는가 하면 바깥에도 전부 연락을 할 수 있는 이 대기를 가지고 있죠.
난 의사는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어느 거 하난들 배운 거는 없지만 말이에요. 철학이든지 천문학이든지 또는 의학이든지 천체물리학이든지 이 모두가 전부 이 한마음 안에서 나가는 거예요. 이름 없는 마음이요. 마음이라는 이름 이전, 참자기. 똥 누러 갈 때는 마음이라는 생각도 없죠? 똥 누러 갈 때 똥이 급하면 그냥 허겁지겁 그냥 화장실 문 열고 그냥 들어가서 펑 누죠? 그럴 때 무슨 마음이라는 이름이 있겠어요. 그리고 배가 고플 때도 그렇고 마음이라는 게 뭐 있어서 그 이름을 부를 새도 없죠. 그거는 이후예요, 그거는.
다 이거를 배우려니까 ‘마음이다’ 뭐, ‘주인공이다’ 뭐 이러지, 벌써 이름을, 마음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인제 주인공이 있다고 이렇게 찾고 이렇게 거기다 맡기고 가는데, 똥 마려운데 주인공, 나 똥 누겠다고 그러고 가서 똥 눕니까? 으레 주인공이 그대로, 죽든 살든 그냥 일체 만법을 살아나가는 데 근본이 주인공이에요, 그냥. 그렇기 때문에 믿지 못하고 믿고 할 게 없어요, 그냥. 어렵고 찌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그러니까 ‘네 몸뚱이 네가 알아서 끌고 가라.’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말하라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자기 조상이에요, 얼른 쉽게 말해서. 자기가 나오기 이전 자기 조상.
그러니까 우리가 배가 고팠을 때, 정이 배가 고팠을 때는 그냥 들어가면서 “아이고, 배고파!” 소리가 먼저 나오지, ‘주인공’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배고프게 하는 놈도 바로, 그놈이 바로, 모두가 한데 합쳐서 작용을 하는 그 근본이 돌아가기 때문에 배가 고픈 것도 알죠. 그러니까 배가 고프니까 그냥 응, 배고프니까 그냥 밥 먹지, ‘주인공! 밥을 먹어야 되겠습니까, 안 먹어야 되겠습니까?’ 이럽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대로, 내가 만약에 소라면 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달구지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잘…, 접때는 촛농을 말을 했는데 이렇게 잘 다스려서…. 왜, 사람이라면 나쁜 것 좋은 것을 다 잘 알지 않습니까? 이게 하면 나쁘고 이게 안 하면 좋고, 이게 해서 좋은 일이고 안 해서 좋은 일이고, 이런 걸 다 잘 알죠? 그러니까 다 잘 알고도 그냥 행은 그렇게 못하죠. 그러니까 잘못되는 때는 ‘이렇게, 이렇게 가게 하는 것도 너니까 안 가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마음을 그렇게 나지 않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거기다 맡겨 놓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면 엄연히 이 체내의 마음도 바꿔지고 이 체내의 이 모든 그, 몸뚱이에 있는 이 전체가 바꿔질 수도 있죠.
- 이전글진짜 해야 할 생각 24.12.23
- 다음글용도에 따라 굴릴 줄 알아야 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