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19_1993년 12월 19일 이유가 많으면 문이 닫힌다
본문
질문: 스님 법문 중에 생각을 내어서 맡겨야지 그냥 맡기면 그 집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 심부름꾼이 심부름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같은 가르침에 처음에는 유위적으로 이해가 되었고 저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 소상히 알고자 합니다. 즉, 내가 없는데 누가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되는지요? (중략) 그 생각을 내게 하는 놈을 관해 보면 생각 내는 놈이 없고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면 그 이름조차도 둘이 되는 것같이 느껴지고 군더더기가 되어 거부감이 듭니다.
큰스님: 묻는 거를 그렇게 길게 물으면 어떡합니까? 하여튼, 그 말 뜻은 우리가 배우는 측에 있어서 맡겨놓는다, 이게 맡겨놓는 그 선을 세워야 우리가 마음이 안위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러나 걷지도 않고 뛰려고 한다면 안돼요! 지금 말하는 거 보니까 걷지 않고 뛰려고 하거든? 내가 진짜 걸어 보고 내가 뛸 수 있어야 뛰는 것이지 걸어 보지도 않고 뛰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돼. 댁이 그 뜻을 알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묻질 않아.
‘내가 놓을 것도 없다’ ‘놓을 것도 없는 데에 놔야 된다’ 이런 것은 뭐냐 하면 ‘돌려 놔라. 돌려 놓지 못하면 입력된 게 그대로 나온다.’ 입력돼서 나오는 거는 피하려야 피할 여지가 없어. 그러니까 입력돼서 나오니까 그것을 다시 바꿔서 입력을 해라 이 소린데 이 세상은 굴리면서 살고 구르면서 살고 끝없이 바로 이어져요. 굴림을 모른다면 바로 내가 나라는 게 세워지기 때문에 동참을 할 수가 없어. 당신이 아는 게 있기 때문에. 당신이 세울 게 있기 때문에. 놓을 게 없다고 하는 세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놓기는 뭐를 놔. 그건 벌써 나라는 걸 세우는 거라구. 한번 다시 정립해서, 놓을 게 없든 놓을 게 있든 몰락 놔요. 이게 틀리다, 이게 옳다 이러지 말고.
질문: 옳다 틀리다가 아니고 생각을, 내가 생각 자체를 내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아, 그래’ 하고 던져버리는데, 스님 법문에 그런 게 있어서 혹시 내가 이걸 뭐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큰스님: 잘못한다도 없고 잘한다도 없어요. 왜냐? 이 나무가 바람에 쓸리고 또는 눈을 맞아서 흩어지고 비가 와서 비를 맞고 이렇게 해도, 또는 공기, 또 태양열 이런 것이 많이 흡수가 돼도 이 나무는 말이 없어요. 왜냐? 뿌리만이 올리고 내리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항상 순환을 하지요. 그러면 맡길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대로 여여하게 맡겨지는데 그때까지 우리가 넘어서야 할 그런 단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 그렇게들 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나무는 그대로 흡수돼서 밑으로 내리고 뿌리에서 올리고, 태양열, 공기 모든 거를 흡수해서 내려보내도, 그 내려보내기 위해서 나무가 때로는 비에 젖고 때로는 눈에 젖고, 때로는 바람에 젖고 때로는 뜨거운 데 태양에 젖고, 이렇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다 흡수해서 내려보내고. 밑에서는 수분이나 또는 땅 지기나 황열 또는 철분 이런 거를 모든 거를 흡수해서 올려보낸단 말이에요. 그래 영양을 섭취해서 푸르르게 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닥치는 겁니다. 그래도 그 뿌리, 자기가 뿌리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겁내지 않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놓을 게 없다느니…, 지금 아까 그랬지요? ‘놓을 게 없는데 놓는다, 생각을 한다, 생각할 것도 없다’ 이랬지요? 그런데 생각할 게 없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데에서 이게 잘못되고 잘되고 이렇게 돌아가니까 우리는 생각을 해야, 즉 맹물에다가 무엇을 넣어야 내가 이건 내 몸에 좋을 텐데, 기침이 나는데 뭐를 넣어야 기침이 안 날 텐데, 하는 생각을 해야 돼요. 생각이 없다면 목석이 돼서 무효예요. 생각을 못하면 목석이 돼서 무효고, 또는 생명이 없으면 또 무효고, 또는 이 육체가 없으면 보이지 않아서 무효고. 이건 삼 단계가 하나로 지금 집합이 돼서 돌아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주인공이라고 이름해서 붙였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유를 그렇게 많이 붙여서 하지 말고 요 다음에는 아주 간단하게 용건 하나만 가지고 해결을 하면 다 해결이 나요. 그, 아는 게 많으면 그렇게 이유가 많아. 이유가 많으면 문이 닫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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