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31_1991년 11월 17일 마음으로 자기를 다스려서 놔라
본문
질문: 일체를 놓는 그러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체의 생각을 바라보다 보니까 육근(六根) 육적(六賊)이 내 집을 차지해서 이렇게 휘젓는 것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 주인공에서 그 의단이 자생적으로 나온다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일체를 놓는 것과 의단을 내는 것과 가끔 가다 혼동이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일체에 놓는 거라고 그러는 거는, 우리가 지금 걸어오셨지마는 뒤 발자취를 남기지 않고 짊어지지 않고 오셨습니다. 고정됨이 없이 그냥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본래는 그냥 놓고 가는 거죠. 놓고 간다는 말 자체도 할 게 없는 거죠. 헌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만날 마음으로 끼워 잡고, 착을 두고, 욕심을 두고, 집착을 하고 이렇게 모두 하니까 그걸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되풀이해서 말씀해 드리는 거죠.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망상으로써 모든 거를 끄달리고 이렇게 하는 것과 지금 놓는 것과 어떤 것이 더하냐고 했는데, 망상은 망상이 아니라 그대로 자생을 길러내는 원소 자체의 그 과정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고요. 그러니까 망상이라고 할 게 없다 이런 거죠. 그 생각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목석이지 그게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망상이다 하는 관념 그것을 떠나야 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놓는다.' 하는 것은 직접 '이게 뭐꼬.' 하기 이전에 직접 들어가는 겁니다. '내가 한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있다.'라는 얘깁니다. 과거로부터 이끌어온 주인이 모든 것을, 몸을 시자로 끌고다니면서 아프게 됐으면 제 시자를 제가 낫게 할 수 있고 또 이끌어갈 수 있고, 낫게 할 수 있고, 화목하게 할 수 있고 모든 일체 만법을 다 그놈이 하는 일이니 그놈 탓으로 돌려야 하고, 그놈으로 하여금 모든 길을 인도한다는 걸 믿고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놓고 눈을 번연히 뜨고도 쉬는 그런 자체가 돼야 그것이 진짜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놓는다' 그러니까 '다 놓고 어떻게 삽니까?'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냥 그대로 하는 것이 놓는 겁니다.
내면에 그대로 들이고 내는 거, 이거 보십시오. 그거를 모르시겄걸랑은 들이는 숨, 숨쉬는 것 있죠, 들이는 숨쉬는 그 자체가 없다면 죽고, 내쉬는 자체가 없다면 죽습니다. 그러면 들이고 내는 숨쉬는 걸 어떤 놈이 쉬고 있습니까? 그와 같이 생활도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는 데에 여러분이 계시니까 들이고 내죠? 여러분이 계시지 않다면 들이고 낼 것조차도 없죠. 그리고 여지껏 수억겁 광년으로부터 끌고 온, 진화되어서 끌고 온 장본인, 지금까지도 끌고 가는 이런 장본인 주인이 아니라면 그 간파를 못 하니까요. 그 주인이 있다는 것을 증명도 못하니까요. 그거는 사람의 마음으로써 다스려서 놓는 데에 아주 간파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질문: 그러면 지금 큰스님 말씀해 주신 거에 따르면 일체의 생각들을 한마음 주인공 자리에다가 놓는 것이 바로 의단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까?
큰스님: 그래야만이 의단도 대의단이 나오지 의단을 일부러 지어서 의단을 한다면 그거는 빈 맷돌 돌리는 거와 같다 이 소립니다. 내가 한때 이런 예가 있었죠. 내가 항상 그런 말을 하죠. 길이, 이 길이, 대로(大路)의 길이 길이 아니니라. 저 그 정말 발도 떼어놓을 수 없는 그런 산골, 아주 그냥 천야만야한 데를 그게 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어떻게 생각을 했겠습니까? 마음, 반드시 마음은 체가 없어서 마음은 지구 바깥에도 나갈 수 있겠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마음의 도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육신의 길만 찾아서 다닌다면 그거는 기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한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기 마음의 거미줄에 얽혀서 발목을 못 빼면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나는 금방 듣고도 또 잊어버리죠. 얘기하다가 잊어버려요. 지금 뭐라고 그랬죠?
질문: 바로 그러한 모든 생각을 한마음 주인공 자리에다 놓는….
큰스님: 음, 그랬지. 그래서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것이 실험이 되고 또 체험이 되고 이런다면 스스로서 놓을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대로예요, 그대로. 그대로 들이고 내는 그놈이 한다는 그 한 가지 믿음만이 남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묘하고 얼마나 무변하고, 얼마나 광대한지 자기도 모르게 어떤 때는 씽긋이 웃을 때가 있구요. 나는 가끔 그러길 잘해요.
옛날에도 어떤 한 순간의 일이었지마는 ‘부모가 자식한테 오면 자식이 하나가 되고, 자식이 부모한테 오면 부모가 하나가 되느니라. 그것은 무슨 연고인가?’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고만 생각을 딱 하고 나니까 하늘을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고 땅을 보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더란 얘깁니다. 이 세상 너무나 이렇게 모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 자체들이 전부 업을 짓고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걸어가면 그냥 걸어가면 될 것을 그냥 ‘내 다리가 어떻게 이렇게 걸리지 않고 걸어가나.’ 하는 생각에 그만 걸리는 겁니다. 다리 많은 지네가 왜 서슴지 않고 걸어갑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두 다리로 걸어가건만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조차도 걸릴까 봐 버들버들 떠니까 걸리죠. 모두가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없으나 이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의 잘못이 거기에 대두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자기를 다스려서 놔야 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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