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41_1994년 10월 23일 안되는 게 없다면 배울 수가 없어요
본문
질문: 제가 청년대법회 이번에 세 번째 올라오게 됐는데요. 2회 때부터 세 번째 올라오는데 큰스님의 가르침으로 조금씩은, 이 법회 자리에 앉을 때 마음이 달라진 것을 보고서도 그것만 봐도 상당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큰스님 이렇게 가깝게 뵙게 돼서 무척 기쁘고요. 저희 가문에 영광인 거 같습니다. (대중 웃음) 그리고 항상 이렇게 일러 주시고 이런 자리가 있어서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일 거 같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큰스님께서 그렇게 고구정녕 일러 주시는데도 제대로 못 해 나가서, 저 같은 경우는 좀 게으른 거 같습니다. 그래서 걸리는 게 많았는데 오늘은 이걸 좀 여쭤보겠습니다. 해 나가다 보면 아주 충만할 때가 있어 가지고 저의 평상시 좀 약점이랄까 잘 안 되는 부분도 조금은 이치가 보이는 거 같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 좀 해 나갈 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어떨 때는 힘이 떨어지고 그리고 좀 마음이 허덕일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그리고 그렇게 충만한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야 되는지 그거에 대해서 일러 주십시오.
큰스님: 그러니까 마음을 좀 더 넓게 써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걸 표현하자면, 잘되는 것만 있고 안 되는 건 없으면 진리가 아니에요. 꼭 상대성이거든요. 우리가 차를 타고 갔다 하면 꼭 내려야 되죠. 꼭 내리고 꼭 내렸다가 또 타고 올라와요. 그 잘되는 것만 있다면 이 진리는 끊어져 버리죠. 모두 여러분들의 마음의 차원에 의해서 잘되는 것이 있고 중(中)이 있고 하(下)가 있죠. 그래서 이게 둥글러 가면서 자기 마음에 따라서 차원이 달라지면서 하로 사는 사람, 중으로 사는 사람, 대(大)로 사는 사람 이렇죠.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요렇게만 생각하세요. 차를 여기에서, 아니 예를 들어서, 광주에서 여길 타고 왔는데 타고만 댕기는 게 아니죠. 내려서 볼일 다 보고 또 타고 올라가야죠? 그러니까 종점과 시발점이 둘이 아니죠, 그죠? 그러니까 아하, 이것을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안 되는 것도 허허, 거기서 나오는 거, 되게 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안되게 하는 것이 바로 되게 하는 것이고 되게 하는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허허, 한 번, 한 번 생각해 볼 점이 있어요. 이것은 한생각이기 때문이에요. 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한생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한생각에서 굴러서 바깥으로 나오는 거죠. 그러니깐 에, 들어가서 얽히고설킨 것도 내 한 생각에 그 얽힌 거를 풀을 수가 있죠, 생각이니까. 한생각은 한 찰나니깐요. 그러나 우리가 물질 얽힌 거를 풀려면 아주 무척 노력을 하고 앨 써야 되겠죠, 풀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으로 지은 거는 천체가 마음으로 이 죄업이 되고 업보가 되고, 유전성이 되고 인과성이 되고, 세균성이 되고 모두 이런 거 아닙니까? 마음으로. 영계성도 되고요. 그러니까 마음으로 지은 거니까 마음으로 풀어야지 딴 걸로는 안돼요, 도저히! 그래서 대치해서 막을 길이 없어서 꼭, 독 안에 들어서 벗어날 수 없듯이 꼭 당하고야 말죠. 그러니까 그거를 안 당하려면 모든 거를 그 한, 그 용광로에 놓든지, 용광로라고도 하고 자가발전소라고도 할 수 있어요. 허허…, 컴퓨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컴퓨터에 앞서의 입력된 것을, 모든 걸 지금 현실에 나오는 데다 다시 넣는다면 앞서의 입력이 없어질테니까요. 안 그래요? 그래서 팔자 운명은 없다 라는 얘기구요. 즉 번뇌도 없다, 먼지 붙을 게 없다, 병고도 없다 모든 게 ‘없다’ 로 돌아가요.
왜냐? 그건 마음을 먹기에 달린 거거든요. 마음을 그 인내 있게, 그 얽히고설킨 업보가 하루 저녁에 하루아침에 그게 다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차곡차곡 그 입력이 됐던 것이 하나, 하나, 하나, 나오는 대로 거기다가 놓으니까 거기 입력돼, 차근차근 입력된 게 하나하나 없어지는 거죠. 그러니깐 욕심 있게 대번에 어디서 하늘에서 떨어진 거 모양으로 싹 가셔서 도깨비장난처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진 거 자기가 전부, 얽히고설킨 거를 제거하려면 하나하나 인내 있게 믿음 있게, 조금도 허탈이 마음을 먹지 말고 오직 그 구녁은 털구녁 하나밖엔, 들어오고 나가는 게 그 구녁밖엔 없어요. 그것도 털구녁이라는 것도 방편이에요. 지금 방편으로 말하자면 컴퓨터라고 하는 것이 맞죠. 이 다섯 가지 오신통이 바로 컴퓨터라고 해도 돼요. 그러니까…, 날더러 왜, 뭐 물었죠? 근데 내가 이 소리 나왔죠? 하하하…, 뭘 물었어요?
질문: 큰스님이 일러 주시는 대로 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충만할 때가 있어서….
큰스님: 그래, 그래. 인제 생각났어요. (대중 웃음) 그래서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에 모두 질서가 지켜지고 사람이 살아요. 길고 짧은 게 있기 때문에 질서가 지켜지고, 어, 진리예요, 그거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서 쓰자 하면은 길고 짧은 게 없이 평등한 공부를 하면서 이 평등치 않게 길고 짧은 거를 다스려 나가는 거죠. 평등한 거를 먼저 알아야 그 평등한 속에서 둘이 아니게 에, 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모든 것을 크든지 작든지, 내가 큰 데 들어가면 크게, 큰 거고 작은 데 들어가면 작은 거가 되고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일체 만물만생에게 모두 내 아님이 없느니라.” 했어요. 원하는 자에게 전부 무조건 주기 때문이죠.
마음이 적은 데 들어가면 적은 것밖에 더 되겠어요? 소한테 들어가면 소가 되는 거고, 돼지한테 들어가면 돼지가 되는 거고, 돼지를 건질 때는. 사람도 돼지로 됐다가 소로 됐다가 말로 됐다가 뭐 별 게 다 되니까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모습이 바뀌어지거든요, 자꾸. 그러니깐 부처님께서는 돼지가 됐다, 소가 됐다, 사람이 됐다, 여자가 됐다, 남자가 됐다, 애가 됐다, 늙은이가 됐다가 또는 새가 됐다가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니 되는 게 없어요.
그것이 바로 나툼이죠. 모두가 이, 원자에서 분자로 화해서 입자가 돼서 모두 제각기 에, 그쪽에 들어가면 그쪽에 들어가는 대로 원자가 돼서 모든 거를 다 해결하고서 한 찰나에 나고 들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길고 짧은 거를 그러게 생각하지 말고 ‘아하! 안 되는 것도 너가 하는 거구나. 양면을 다, 저울추 가리키듯 양면을 다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구나. 아! 감사하구나.’ 이걸 알아야죠. 그거를 ‘아이고! 안 되는 거, 내가 되긴 됐는데 안 되는 것도 있더라.’ 이럭하면 안 되죠. 안 되는 것도 되는 거고 되는 것도 되는 건데, 하하하, 그 안되는 게 없다면 우리가 배울 수가 없어요.
질문: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큰스님: 그래 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아까 “스님, 참 감사합니다.” 그랬죠? 내 모습을 보고 감사하다고 그러지 말아요. 당신 그림자가 내 그림자를 보고서 허, 웃는 격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내 고깃덩어리의 모습을 보고 믿지 말아라, 따르지 말아라 이 소리죠. 네 모습을 네 모습이라고 하지 말아라. 모든 육신 속에 자생중생들의 집합소니라, 집이니라. 그리고 심부름꾼이며 관리인이니라.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면 너와 나와 둘이 아니니라. 그러니 그 진정한 마음으로 둘 아니게 믿으세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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