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40_1996년 6월 2일 찰나찰나 회향
본문
질문: 회향에 대해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저희들이 좋은 일이 있고, 감사한 일이 있으면 회향을 잘합니다. 그런데 실지로 막상 고난과 액난이 닥쳤을 때에는 당황하게 되고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제 생각에는 어차피 겪어야 될, 원해서 온 거는 아니지마는 어찌됐든 그 고난이나 액난이 왔을 때에는 '그것이 바로 공부의 재료고 스승이다. 스승님이 나를 가르쳐주러 오셨다.' 하는 그러한 생각을 내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오히려 그 경계가 하나의 회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회향은 좋고 감사할 때만 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어려울 때에 힘들 때에 하는 그 회향이 더욱 큰 정진의 거름이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립니다.
큰스님: 회향이라는 것이 천차만별이죠, 회향도. 지금 현재에 살아나가는 생활 속에서 인생의 회향을 하느냐, 인생의 회향을 어떻게 해야만 잘했다고 하느냐는 회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술을 자시고 집안을 난가를 만들고 이렇게 해서 인생의 회향을 마치느냐, 또는 두 첩, 세 첩씩 두고 이렇게 서로 은혈이 지게끔 해놓고 회향을 하느냐, 또 그렇지 않으면 수수하게 잘 살다가 회향을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내가 뿌린 씨는 내가 거둔다는 그러한 일념으로써 살아나가면서 회향을 하느냐. 또 우리네가, 이러한 공부를 하는 스님네들로 하여금 일체 회향이 있습니다. 일체 회향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서 회향을 해야 하는 겁니다. 죽어서 회향은 없습니다.
즉 말하자면 회향이 있는 까닭에 살아나온다 죽는다 이런 언어가 막히는 겁니다. 죽은 뒤에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열반이 되고 회향이 돼야 진짜 그것은 삼세를,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삼세를 찰나찰나 나투면서 이렇게 말이 됩니다. 찰나찰나 나투면서, 우주와 이 대천세계를 찰나찰나 나투면서 보고 듣고 행하고 맘대로 자유권을 얻는다, 이런 겁니다. 그것이 그렇게 자유권을 얻음으로써 지금 부처님께서 이름을 지어서 말을 했다 하면, 그 넓은 끝없는 바다 가운데서 도장을 받았다, 이 소리나 똑같은 얘깁니다. 해인(海印)을 받았다. 해인을 받는다.
그런 까닭에 죽어서는 부딪침이 없기 때문에 대의의 공부를, 죽고 사는 생사를 다 끊을 만큼 공부를 못합니다. 몸이 없기 때문에. 부딪침이 없기 때문에, 고(苦)도 없고 또 낙(樂)도 없기 때문에 공부가 아니 되죠. 낙도 고도 있어야 이게 공부가 되는 거지, 자기를 다스리고 공부가 되는 거지 이건 몸이 없는데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죽기 전에 열반의 경지에 들어야 생사를 초월하고, 또 이 세상에 부처님이 나오셨다, 가신다, 이런 말이, 언어가 끊어지고 살아생전에 회향을 한 겁니다. 그래서 일체지에 회향을 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런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일체지를 회향을 한다 이런 뜻이라면 그 회향이라는 이름도 방편입니다.
그 회향이라는 이름도 방편이지 회향이라는 그 자체는 찰나찰나, 예를 들어서 '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갔으면 데려다가 집에까지 놓는다.' 요게 회향입니다. 애들을 갖다 놨으면 그냥 바깥에다 놓고 그냥 있을 수는 없죠. 안에다가 데려다 놓는 것까지 회향입니다. 밥을 했으면 먹고 치운 게 회향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러고 남의 일을 무엇을 맡아서 해준다 그래 놓고 끝을 마치지 못하는 건 회향이 못 되고, 그래서 그렇게 끝을 마치는 사람은 애당초에 그런 일을 맡지를 않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맡지를 않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 가지고서 내 분수를 알고 내가 능력만 있는 일을 해서 끝을 마치죠. 그게 회향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자기를 들뜬 마음에서 그냥 인생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뿌리고 자기가 회향을 못 하고 끝을 마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니까 찰나찰나 회향이지 회향이 따로 없다 이런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부담스럽게 살 필요는 없어요. 그저 진실하게 내가 뿌린 거 내가 거둔다. 양심을 나는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 속인다 이런 것도 없이 그냥 스무드하게 그냥 남을 나와 같이 생각하고 또 내 아픔같이 생각하되, 그러되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것이 그렇게 착하기만 하라고 가르친 게 아니라 양면을 다 줬습니다, 법도. 그 왜냐하면, 그래서 불 법 승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런 말을 했죠. '자기 분수를 알고 맡아야 회향을, 끝을 잘 맺는다.' 이런 말이 있듯이,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만약에 무슨 좋은 일을 한다고 보증을 서 주거나, 또는 빚 보증을 서거나. 자기가 그거를 잊어버려도 내가 생각해 볼 때 그거를 만약에 그 집에서 안 갚아도 내가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됐을 때에 그거를, 해주지 않으면 안될 집에 그런 집이나 보증을 서는 거지, 아무한테나 보증 서는 게 아니죠. 자기 집 한 채 놓고 땅 몇 뙈기 있다고 보증을 탁 서놓고선 그거 홀딱 뺏기고선 거지가 돼가지고, 식구들까지도 다 거지를 만들고 이러는 건 회향이 아닙니다, 그게.
부처님이 그렇게 하는 거를 착하다고 한 게 아니에요. 착한 게 따로 있어요. 똑똑하고 착한 게 따로 있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이 희미하게 살라고 그렇게 부처님이 가르친 게 아니죠. 정확하고 똑똑하고 그런 거죠. 그러고 인자하고요, 둥글고. 하여튼 찰나찰나 회향이 있고, 찰나찰나, 멀리 이렇게 앞으로 미래에 회향이 있고 이런 게 아닙니다. 우리는 밥 올려다 놓고 예배 올리고 밥 내려가면 회향입니다. 그것과 같이 인생살이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한 찰나찰나 얼마나 내가 뿌리고 얼마나 거뒀는가를, 그것이 바로 정확해야만이 회향이 찰나찰나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처님이 역시 아주 준수하게 가르친 뜻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더우신데 이렇게 왕림해 주셔서. 이렇게 동참하시고.
그랬는데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요. '야, 우리의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로구나. 지금 세에만 만난 게 아니라 수억 겁 세에도 우리는 같이 만나서 공부를 했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인연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옛날 옛적의 친구라고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여자 친구도 됐었고, 남자 친구도 됐었고, 그냥 어머니 아버지도 됐었고, 그냥 자기가 자식도 됐었고, 자기가 부모도 됐었고 그냥 겁을 돌았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열심히들 공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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