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60_1997년 2월 16일 우주를 삼키는 큰 도둑이 되려면
본문
질문: 지금 여기 있는 이 미련한 놈은 엄마 뱃속에서 막 나온 눈먼 장님입니다. 큰스님의 대비하심과 위없는 가르침을 엄마의 젖줄로 삼고 유생 무생 만물만생을 도반과 스승으로 삼아 올바르게 탕탕하게 평등한 자비심을 두루 갖추어 큰스님 같은 대장부가 되고 싶습니다. 큰스님 가르치시기를 욕심 내려면 큰 욕심 내고 도둑놈 되려면 큰 도둑놈 되라고 가르치셨기에 이 미련한 놈이 큰 욕심을 내어서 우주 삼천대천세계를 통채로 집어삼킬 큰 도둑놈이 되려고 왔습니다.
큰스님: 첫째, 되려고 해도 아니 되고 다 집어삼키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나하고 같이 한다고 해도 아니 되고, 또 아니 한다 해도 아니 돼. 그런 사심은 다 버리고 오직 한마음이, 두 마음이 아니라 일체 닥치는 대로 다 집어삼킬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대로 여여하게 그대로 발을 떼어놓고 다니다 보면 날아도 다니겠지, 날개가 생겨서. 그리고 또 구석구석이 자기가 없어야 그것이 일치되는 거지, 자기가 있다면, 배울 수 있는 자기 못난 놈이 있다면 아니 되지.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야 되겠지. 그 못난 놈이 있다면 어떻게 그게 거기에 해당이 되는가, 둘 아니게.
모두가 내가 없어야 벌레 하나라도 버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있다면 벌레 하나뿐만 아니라 모두 미운 건 다 버려야 하고, 나쁜 건 다 버려야 하고 이렇지 않은가. 좋은 것만 차지하고. 그러나 좋은 것을 차지할 때는 나쁜 것도 또 생기게 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이 소리죠. 그러니 모든 일체를 벌레 하나까지도 다스릴 수가 없게 되지. 그러니 못난 놈까지 버려. 배워야 하겠다는 그놈이 버려. 그냥 버리라는 게 아냐. 죽어야 죽은 세상을 보지, 어떻게 살아가지고 죽은 세상을 다 알 수 있겠나. 안 그런가?
그래서 진짜 욕심이라는 건 욕심을 내지 않고 욕심이…, 욕심이라는 건 말뿐이야. 진짜 자비한 사람은 욕심도 없고, 욕심 아닌 것도 없고, 다가오는 거 겁내지도 않고, 다가오는 거 탐내지도 않고…. 그냥 허공과 같애. 그러니까 그 허공 같은 마음이라야 내가 찰나찰나 나투어 화하고 또 응해 주고, 내 아니 되는 생명들이 없이 되지. 첫째는 벌써 내 몸 안의 생명들을 나하고 둘 아니게 조복을 받지 못해. 첫째 말이야. 내 안에 있는 생명들을 나하고 둘 아니게 조복을 받아야 상대 모든 거하고도 둘 아니게 되고, 역대 조사들 부처님하고도 둘 아닌 자리가, 한자리가 돼버려 내가 대천세계니 삼천대천세계니 온통 우주 천지를 다 집어삼키고 싶어도 그건 엉뚱한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러한 생각을 다 놓고, 요만한 거 하나를 조복받을 수 있어야 그만한 것도 조복받을 수 있다 이 소리야. 집을 짓더라도 기초가 되지 않았으면 그 집이 무너지게 돼 있어. 알았죠?
그래서 버리는 사이 없이 버려라. 내가 이런 말을 지난 번에 했어요. 우리가 사는 것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실 때 “공했느니라.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인데 그냥 여여하니라.” 이런 말씀 그 한마디에 이 세상 돌아가는 걸 다 아셨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 세상에 이 발자국 떼어놓고 다니는 것도 한 발 떼어놓으면 한 발 없어지죠? 보면 본 것이 없어지죠? 들으면 들은 게 없어지죠? 온통 없어지는 거뿐이야. 보이는 거뿐이고 없어지는 거뿐이니, 보는 것대로 없어지고 듣는 것대로 없어지고 움죽거리는 대로 없어지니 어디 붙들 게 있어서 내가 있단 말이오? 하도 이것저것 너무나 할 게 많고 한 게 많아서 아예 했다는 말도 못하고 한 놈도 없어지고 말아 버렸어.
지금 현실이 그러해요. 현실이 그러한 거를 한생각에 백지장이 벗어나질 못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세상에 내 생명을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다 버렸다면 뭐이 겁나는 게 있겠소? 하늘이 무너진대도 겁나는 게 없을 거고 나를 마구니가 와서 다 집어간대도 겁날 일이 없고, 칼이나 총이나 가지고 와서 죽인다 하더라도 겁날 일이 없고, 아무것도 겁날 일이 없을 때, 그냥 여여할 때, 그때 육조스님도 이렇게 말을 했다고 내가 말을 했죠. “내 불성이 있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여여한 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갖추어 있음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만법을 들이고 내는 걸 어찌 알았으리까.” 한 말씀 말입니다.
그러니 나를 세워서 그렇게 해보겠다는 생각이라든가…, 젖줄은 그대로 당신한테 주어져 있으니까 찾을 뿐이지 뭘 욕심내고 그럴 것도 없어요. 그런 엄청난 생각에서 잠기면, 망상에 휘몰아치면 외려 들뜬 미친 사람이 되니까 절대로 안정하고 진짜로 믿어요. 내 뿌리를 진짜로 믿어요. 그 뿌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만 그냥…. 불성이 바로 뿌리니까.
옛날에 어느 조사님들이 죽 앉으셨는데 어느 학인이 한번 들어와서…, 그 변재가 유명하더랍니다. 선지의 변재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보게, 자네 차나 마실 줄 아나?” 하고 “차나 마실 줄 알걸랑은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했더랍니다. 그 차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야만 되는데 차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이 그 변재를 늘어놓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 변재를 가지고, 말을 가지고 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즉 말하자면 공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이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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