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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법문-71_1993년 1월 17일 경전을 보되 자기 없는 자기가 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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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큰스님께서 여러 가지 공부하는 방법을 많이 지도해 주십니다마는 저희들은 지혜라든가 자비에 대한 두 가지 방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경전에 의하지 않고 여러 불쌍한 인생들에 대한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하시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과연 공부를 이렇게 해야 되는 건지, 거기에 대한 것이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저희들이 시도를 해야 될지 그것이 의문입니다. 

 

큰스님: 진짜로만 믿으신다면, 자기가 지금 말하고, 듣고, 보고, 행하고 가는 그 자체를 잘 뒤집어서 자기를 보실 수 있다면, 진짜로 지혜로워야만 자비도 나오고, 자비를 할 수가 있어야만 내가 둘이 아닌 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루만지는 것도 자기요, 어루만지는 걸 받는 자도 자기요,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건 무슨 까닭이냐 하면요, 내가 항상 얘기해드리죠. 이 전자 줄이 하나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마저 쥐고 이건 행하는 자와, 즉 말하자면 어루만져 주는 자와 만지키는(만지도록 하는) 자가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믿고 말을 할 때는. 믿지 않든 믿든 이렇게 같이 대화를 하게 되면 이게 하나가 돼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자 줄과 줄이 한데 합치면 그냥 불이 들어올 뿐이지 전자 줄이 합쳤다 안 합쳤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물었는지도 모르고 지금 잊어버리고,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어루만지는 자비로서는 베풀고 지혜는 가르치지 않는구나, 또 경전도 보지 못하게 하는구나.’ 이러지 마시고요. 경전을 보되 경전이 나를 보지 않게 하고, 내가 경전을 보지 않게 볼 수 있다면, 그거는 올바른 경전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경전을 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보되 보지 말라이 소리죠. 이거를 경전을 보고 또 경전이 나를 본다면, 글자 풀이만 해 나가는 거지, 내면 세계의 그 백지에 들어 있는 천차만별의 그 뜻은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모든 첨보를 누가 이 책을 보는가? 네가 보고 있잖어? 그러니 나는 그냥 봐주는 눈과, 그 겉 눈과 겉 손, 모두 이런 걸로만 심부름 해 줄 뿐이지, 보는 건 네가 봐.’ 하고 볼 수 있는 그런, 지금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마는. 그것은 말을 안 해도 자기가 보는 거죠. 근데 껍데기 자기가 본다고 생각하고 그 글자 풀이로만 나가니까 이거는 경을 자기가 보고 자기가 경을 보는 게 되죠. 그러니까 자기 없는 자기가 경 아닌 경을 볼 수 있어야 된다 이 소리입니다.

 

질문: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한다고 해서 놓는다’ ‘믿는다하면 그 속에서 저희들이 공부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고 또 그 경계를 파악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러한 내용들을 확인하려고 하는 이런 충동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것을 확인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공부 방법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큰스님: 그것은 확인을 하되 확인이 없이 확인을 해야 하는 도립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공부를 했다고 해서 내 주인공에서 말을 하란다고 해서, 하고 싶다고 해서 마구 내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거는 공부가 잘못되는 공부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속에서 이런 보이기도 하고, 또는 듣기기도 하고, 어떤 걸 알려주기도 하고, 남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내 마음 속으로 한번 실험을 해보는 거지, 내 마음을, 실험해 보겠다는 일으킴을 일으켜서 그래서 실험을 해보는 거고 체험을 하는 거지, 바깥으로 발설을 하고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한테 물어보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해 나가라는 뜻이지, 이거를 그냥 묵인하고 그냥 이거는 실험해 보지도 마라’ ‘그냥 놔버려라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지요. 마음에 발전이 없어서 이건 능력도, 그거는 자기 능력을 자기가 계발할 수도 없고, 얼만치 됐는지도 모르고, 남이 알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나를 알게끔 되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것을 쉽게 말해서 나오는 대로, 그래서 그랬잖습니까?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한 번 죽어야 하고, 둘 아닌 도리를 알기 위해서 또 죽어야 하고, 또 둘 아닌 나툼을, 일체 만물만생의 나툼을 알기 위해서 또 죽어야 한다.’ 이런 말을 했죠.

 

그러니까 모든 것을 실험해 보려면 아무도 알지 못하게 내가 그냥 실험해 보는 거지, 어떻게 말을 바깥으로 하고 실험을 합니까? 그리고 체험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도반들끼리 모였을 때 이렇게 얘기를 하고 돌아갈 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첫째 당신에 누가 되지 않고 둘째는 스님들에 누가 되지 않고 셋째는 온 부처님의 그 뜻이 누가 되지 않지 않느냐.” 하는 것을 제시해 주고 이렇게 속으로 자기가 실험하고 체험하게끔 이렇게 일러주고 하는 것이 도반의 도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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