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법문-95_1998년 6월 5일 할 수 있다 없다도 한생각에 달린 것
본문
질문: 큰스님 항상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질문드릴 거는요, 저는 지금 음악 공부를, 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서 교수직을 갖게 되고 이런 것이 저의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교수가 돼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러는 것도 좋겠지만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이미 많이 하고 계시고, 그렇다면 제가 그 공부를 하는 시간에 차라리 여기 무슨 병원이나 노약자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는 갈등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앞으로 지금 여기 많은 청년들도 공부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각자의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라든가 그런 것을 스스로 어떻게 깨달아야 되는지, 이 길이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가르침을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큰스님: 그거는 댁의 생각이에요. 빈약한 생각이에요. 사람은 물질로써 보시를 하는 거보다도 한마음을 해서…, 여기 <일체제불의 노래>가 있죠. 이 한마음을 음파를 통해서 이 전 우주에 음파가 되도록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그 음파를 통해서 전부, 마음들이 전부 개선이 되고 지혜로워지고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일전에 이런 말을 했죠. 물질 하나를 보시하는 거보다도, 그건 당장 쓰고 나면 그만이고 먹고 나면 그만이지만, 이 무주상보시를, 공심으로써 무주상보시를 한다면 그거는 끊어지지 않는 삶을 얻을 수 있다, 얻게 해 줄 수 있다 이런 게 있죠. 그러니까 이 무주상보시라는 것이 너무도 크고 광대해서 무주상보시를 모르고 있죠. 그저 남이 보게 내가 ‘이거 얼마를 시주했다. 얼마를 했다’ 이런 거를 모두 생각들을 하시는데, 그건 함이 없이 해야 그게 무주상보시가 되는 거지 내가 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무주상보시가 아니죠.
왜냐하면 누구나가 다 생각할 때에, 가게 물건을 사러갈 때요. 이건 한번 예를 들어서 얘기하는 겁니다. 그럼 돈을 가져가죠? 그 물건의 값어치대로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온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돈을 준 게 없죠? 그 사람도 돈을 받은 게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물건을 주고 돈을 주고, 받고 주고 했으니까. 피장파장이에요.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누구를 줬으면 준 대로 줬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이만큼 줬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나.’ 이렇게요.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그것을 했는데 그 값어치를 더 이상 더 값어치를 받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말도 그렇게 나오거든요. 그렇게 한다면 그 이상 것을 받지 못해요. 한 게 없기 때문에, 입으로 구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말이 어떻게 이상스럽게 돌아갔지마는 댁이 노래를 한마디 하는데 그냥 노래를 하거나, 미술을 하나 그렸는데 그냥 미술을 그렸다든가 이런다면, 산 음성이 되지 않고 산 그림이 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그림도 그려야 하지만 음성도 그렇게 해서 음성을 낸다면, 그 음성이 가사에 의해서, 그 가사의 용도에 따라서 음파가 되는 거죠. 그래서 남을 건질 수 있는 가사냐, 또 남을 이롭게 하는 가사냐, 평화롭게 할 수 있는 가사냐, 가사에 따라서 음성이 음파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 공부를, 이거는 말로 헤아릴 수가 없는 공부입니다, 이게. 세세생생에 끝 간 데 없이 말입니다. 지구가 끝이 없듯이. 우리가 사는 것도, 진리도 그렇게 끝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거를 허술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댁뿐만 아니라 어떤 분이 “아유, 우리 아버님께서 나오셔야 될 텐데 이렇게 나오시질 않으니까 서명을 받아서 진정서를 냈으면 좋겠다.” 이래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당신이 한생각이라면 저절로 나올 텐데 왜 비굴하게 그것을 받아서까지 진정서를 내느냐 이거야. 그건 뭐 꼭 얘길 해야만(하겠는데) 이름을 대면 안 되겠으니까 그냥 말하겠습니다마는…. 전직이 모모(에) 계셨던 분이거든요. 그런데 난 그것도 그래요. 우리나라를 생각하고 우리 국민을 생각하고 그런다면 모든 게 우리나라의 수치거든요. ‘조금 아쉽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 전 세계를 볼 때는 참 수치죠. 그래서 “하나만 알지 둘도 모르는구나.” 이렇게 말을 하게 되죠.
그런 거와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한번 ‘한생각이다’ 이게 말로는 “한생각이다.” 이렇게 아주 그냥 쉽게 말을 하지만 한생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광대무변하고 묘법인지 몰라요. 이 음파가 그대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원자에서 입자가 전부 나가서 조절을 하거든요. 마음을 조절을 해서 둘 아니게 응신이 돼서 하면 그 마음들이 다 풀려서 그 사람이 나오게 되는 그런 문제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죠. 그런데 마음을 자기 욕심을 채워서 말을 함부로 하고 또 스님네들을 우습게 보고 그냥 마구 해대는 수가 많거든요. 아무리 이런 돌이라도, 말 못하는 돌이라도 아, 이거는 내가 공부한 대로 여기서도 말을 할 수 있거든요. 내가 공부를, 마음공부를 했다면 꽃나무도 이런 들에도 전부 같이 통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어요. 나무에는 목신이 있고, 또는 물에는 용신이 있고, 산에는 주산신이 있고 이렇듯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모두 통해서 남이 아니고 서로가 조직적인 어떠한 그, ‘우주 전체가 조직적인 진리로서 에누리 하나 없이 이렇게 진행해 나간다.’ 이런 것이 틀림없죠. 질서정연해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질서정연치 못하니까 질서정연치 못하게 세상에 나가는 거죠. 그리고 이득이 없고, 자기를 자기가 망치고 돌아가거든요.
우리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하고많은 사람이 많아요 서울에는요, 인제 회사가 망하게 됐더래요. 내일이면 딱 망하게 됐어, 부도가 나서 다…. 그런데 “아이구, 이거 회사가 망하면 사람들이 전부 죽습니다. 이거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내가 살자고 하는 거보다도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이 노릇을 어떡합니까?” 했을 때 그 사람이 지극하게 이 마음공부를 그래도 웬만치 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응, 그것은 걱정할 거 없어. 모든 거를 거기다가 맡겼으면, 또 줬다가 뺏었다 하지 말고 그냥 진짜로 맡겼으면 저 나무들이 뿌리가 싹하고 뿌리하고 같이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이미 붙어 있다 이거예요, 주인공이라는 게. 이미 있으니까 그 뿌리를 믿고서 싹은 편안하게 웃고 부지런히 뛰기만 해라. 그러면 살 길이 있지 않겠느냐.” 그런 말을 했어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의 마음들이 빙그르르 돌아간 거예요. 돌아가서 그것을…, 다 살게 됐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그것이 그럼 우연이냐. 우연이 절대 아니죠. 우연은 없어요. 모두가 여러분들이 하기에 달린 거지 우연이라는 건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요만큼 알면 나도 요만큼밖엔 얘기 못하고, 여러분들이 이만큼 알면 나도 이만큼 얘기할 줄 알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듣지 않으면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거죠. 만날 그 우물 안에서 ‘나는 여기서만이….’ 어떤 사람은 이래요. “도무지 우리가 생각을 할 때에 아무리 해도 인간이라는 것은 할 수가 없다. 이거는 안 된다. 절대로 이건 될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허덕이고 있는데 이거는 어떻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얘기해요. 크나 작으나, 어렵거나 어렵지 않거나 ‘인간이 할 수 없다.’라고 하는 건 당신의 차원이지,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가 없다 이거야. 그건 한생각 하기에 달린 거지. 그건 당신의 그 살아오던 관습, 습 때문에 그런 거지 누구가 그렇게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 누가 말해 주더냐 이거야. 그러고 어떤 사람은 “삼살방이 들어서 이사를 못 간다.” 이러거든. 삼살방이 들어서 이사를 못 간다고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삼살방이 들은 거야.
그러니까 동서남북이 다 터졌다 이거야. 마음은 체가 없는 거라 우리가 벽을 뚫고도 들어올 수도 있고, 은산철벽도 뚫을 수가 있고, 강물도 들어갈 수 있고, 허공도 날 수가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마음이거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거는 도저히 할 수 없다.’라는 그 관습이 있거든. 쭉 살아오던 습이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노래하는 것도 남을 위해서,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을 해요. 더불어 같이, 당신도 이롭고 상대도 이롭고….
- 이전글내 자성 부처로 인정해준다면 21.10.30
- 다음글한 발짝을 뗐으면 그대로 놓고 가라 2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