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사들은 고기 먹어도 돼죠?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왜 선사들은 고기 먹어도 돼죠?

본문

질문

부처님께서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시길 고기를 먹으면 자비종자가 끊어지고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없다 하셨는데, 한마음 불교방송국에 올려져 있는 불살생계에 대한 글에서는 고기와 한마음이 되면 먹을 수 있다고 써있더군요. 특히나 천도할 능력이 있는 선사들은 먹어도 된다는 부분이 너무 제 생각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글이라서 여쭙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거기에는 두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옛날에 선지식들이 길을 걸을 때는 발 밑에서 벌레가 하나 죽어도 그냥 환생한다고 했습니다.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짚신에다가 방울을 안 달아도 천도가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벌레가 밟혀 죽을까봐 짚신에다가 방울을 달았다 합니다. ‘이 방울 소리를 듣고 비켜나거라. 비켜나지 않는다면 살생이 되느니라.’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냥 걸었다는 얘깁니다, 주장자만 들고 휘휘 헤치면서. 그거는 왜냐?

한 가지는 자기만 알고 어떡하든지 그 제도를 깨지 않고 계율을 지키려고 하는 뜻이고, 또 한 가지는 짐승도 둘이 아닐지언대 자격 있는 사람이 한 점을 집어 먹어준다면 그 짐승의 모습은 간 곳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를 빌면서 천년이 가도 그때를 바라고 오는 짐승이 수 없이 많다고 보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식물도 생명이 있는 겁니다. 채소나 이런 것들도 모두 말을 합니다. ‘배가 고파’하고요. 그래서 물을 퍼다가 주니까 얼마 안 있더니 그냥 살아납디다. 그런데 어떻게 동물만 생명이 있고 식물은 생명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식물을 먹었다고 해서 계율이 깨지지 않고, 동물을 먹으면 그 계율이 깨진다고 해선 안 됩니다. 그거는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겁니다. 동물이 동물로 보이면 못 먹는 겁니다. 동물이 동물로 보이면 못 먹고, 동물을 자기와 같이 둘로 보지 않게 되면 먹는 겁니다. 그것이 자격이 있고 없는 데 달려있는 거지 계율에 달려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디 가든지 편안하고 어떠한 게 닥친다 하더라도 걸림 없이 그냥 편안해야 돼요. 그렇다고 그냥 편안하기만 해서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버리겠지만, 가는 것 잡지 않고 오는 것 막지 않는 다는 그 말에 모든 공식이 짜여져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태국의 절에 한국 스님네들이 갔더니 그 절의 스님께서 그러시더래요. 태국에서는 탁발을 하면 고기든 뭐든 가리지 않고 스님들께 정성껏 올리니까 시주님들이 주시는 대로 그냥 받아와서 공양을 한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스님네들이 같이 탁발을 해 왔는데 고기가 들어있다고 먹지를 않으니까, 그 스님께서 “가는 거 잡지도 말고 오는 거 마다하지도 말라고 했는데 스님들께서는 가고 오는 인연에 얽매여서 어떻게 부처를 이루려고 하십니까?”라고 했다고 하더래요.

그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냥 허투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부처님 팔만대장경의 뜻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봐야죠. 어느 나라는 이거를 먹고살고 이런 말을 하고 이렇게 생활을 하고, 이러는 것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생명이 살아나가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간다는 것을 알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깐 모든 것이 편안하고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거지 누구에게 매여 있는 게 아니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이게 옳다 저게 옳다를 떠나서 가는 인연 잡지 않고 오는 인연 막지 않으면서 자유스럽게 사신 것 아니겠어요?

하여튼 이 마음공부 하시는 분들, 때에 따라서는 깨우쳤다고 해서 그것이 다 환생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반야줄을 잡고 진짜로 자기 뿌리를 믿고 가는 분에 한해서는, 어떤 가정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닭을 잡는다든가, 뭐 돼지를 잡는다든가, 소를 잡는다든가 하는 이런 문제가 생길 때에는 반드시 관(觀)하고서 한다면 그 모습이 싹 없어질 수도 있고, 믿고 관하는 사람에 따라서 반만 벗겨지는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떤 때 소가 끌려가는 걸 보면, 그 큰 눈을 끔벅끔벅하고 갈 때 말입니다. 눈물이 글썽글썽할 때 꼭 내 눈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것 같습디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와 둘이 아닌데, 저걸 도살장에 끌고 가서 죽인다면 아프지 않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거를 그렇게 죽이는 법이 없거든요. 애를 쓰고 죽게 만든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세 가지를 다 해야 돼요. 아프지 않게 죽게 한다, 그 모습을 해탈을 시킨다, 그리고 어디다가 그 종자를 심어서 싹이 나오게 한다, 이게 모두 쉬운 것은 아닙니다. 눈물겨운 얘기입니다. 눈물겨운 얘기죠.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미생물까지 말입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래서 기가 막힌 일이 되기 때문에 낙(樂)도 아니고 고(苦)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하는 그 뜻을 여러분이 잘 잡수세요. 말을 잡숫지 말고 그 뜻을 잡수시기 바랍니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