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마저 놓아야 하는지...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심마저 놓아야 하는지...

본문

질문

처음에 공부할 때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일체를 놓아야 하고, 나를 발견하고 나서는 무심마저도 놓아야 하기에 “놓고 또 놓고, 놓지 않음이 없을 때까지 놓아라.”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을 머리로는 그렇겠구나 하고 이해가 되는데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해야만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무심이 부처라는 말도 있는데, 왜 그 무심마저도 놓아야 하는 것 인지요?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놓는 방법을 지금 세 가지로 비유했는데, 일체를 놓아서 나를 발견했을 때에는 그 아는 것도 놓으라고 했습니다.

즉 말하자면 안 보이는 거 보이는 게 있잖아요? 남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가나, 잘될 건가 못될 건가, 죽을 건가 살 건가 이런 것을 아는 것을 숙명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그것도 놓으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신통력을 다 놓아서 그 신통력에서도 벗어나야 된다 이겁니다. 오신통에서 벗어나면 오신력이 됩니다. 그냥 무심으로써 역이 되는 거죠. 그럼 무심을 놓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모든 들이고 내는 것을 다 놨을 때는 오신통에서도 벗어나는데, 거기에서도, 무심에서도 또 놔야 되거든요. 무심조차도 놔야하는 것은 뭐냐하면 ‘사무’라는 문제가 나옵니다. 또 ‘사유’라는 문제가 나오면 이것을 한데 합쳐보면 무슨 별성이라든지 혹성이라든지, 이런 문제 등등이 전부 나오는 거죠. 보이는 겁니다. 그 안에서 뭐를 하고 있고, 뭐가 되어 있고, 뭐가 어떡하고 있고 이런 게 전부 이 법망으로 인해서 그냥 쫙 통신이 오는 거죠. 그렇게 통신이 오면서, 보는 것도 거울을 갖다가 놓고 보는 거와 같이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놔라 이겁니다.

그래서 놓는 게 세 가지입니다. 계단 없는 계단이 세 계단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방대해요. 그런데 보는 대로 그냥 그것도 놓는 겁니다. 무심에다 놓는 겁니다.

그런데 조금 어떻게 보이고 들리면 많이들 그걸 붙잡고 늘어지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 정말 그걸 놔야 됩니다. 그거를 놓지 않으면, 그 모두를 속속들이 놓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그러지 않으면 가다가 중지해 버리게 되고, 어쩌면 아주 잘못 나가는 일도 벌어질 수가 있죠. 그래서 그걸 다 놔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