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상을 어떻게 죽이나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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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상을 어떻게 죽이나요?

본문

질문

스님, 자신의 아상을 어떻게 죽이나요. 아상을 여의고 구경경지에 이르고 싶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함이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여러분이 가정에서 남편 노릇을 하고, 아버지 노릇도 해야 되죠? 그리고 부모가 부르면 금방 자식 노릇을 하듯이, 모습은 그대로 있으면서 속에서 찰나찰나 바뀌어서 돌아가는 겁니다. 찰나찰나 바뀌어서 돌아가니까 자기도 모르게 바뀌어서 돌아가는 그 자체를 응용하고 살고 있는 것이 바로 도요, 정신계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하는 겁니다. 우리들만 중세계에서 사는 게 아니에요. 생명체라는 것은 딴 세계에서도 살고 외계에서도 살고 있어요. 우물 안의 생명들만 생명이 아니라 딴 바다에도 생명이 있고, 딴 세계에서도 살고, 딴 외계에서도 살고 있어요. 또 지상에도 있고 지하에도 있어요. 조끄맣게 봐서는 안 돼요. 시야를 넓혀야 돼요.

그런데 내가 넓혀져야 넓혀진다는 거지요. 내 몸 속에 있는 생명들과 더불어 같이 넓혀져야 된다는 거예요. 내 몸 속에 있는 중생들도 제도를 못 받았는데 어떻게 딴 사람한테 통신이 되고 제도가 될 수 있겠어요. 내 몸 속에 모든 생명들의 의식들이 자기 마음을 따라서 모두가 이끌어 줘야 되고 한 생각을 하면 같이 따라줘야 되는 것이 바로 조복이고, 그것을 항복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불쑥 나만 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오지를 않아요. 더불어 같이 사는 한 개체이기 때문에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부처님께서 내가 너무 많아서 내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너무 많아서, 천차만별로 내가 많아서 내가 없다고 하신 거거든요.

그런데 내 몸 안에 있는 의식들과 더불어, 생명 모습과 더불어 같이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오는 문제들을 어떻게 같이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지요. 그래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에요. 첫번째도 죽어야 하고, 두번째도 죽어야 하고, 세번째도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지요. 나라는 걸 세우지 말고, 아만 아상을 세우지 말고,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야 내 몸 속에 있는 의식들도 따라서 같이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벌어진 거니까 잘했다는 것도 나고 못했다는 것도 나요, 욕을 먹는 것도 나요, 맞는 것도 나요, 모두가 나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서 상대방을 기억하지 말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나의 어리석음을 탓해라, 그래야만이 죽은 세상에 들 수 있고, 죽은 세상에 들어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이겁니다. 관 속에 들어가야 관 속의 이치를 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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