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피를 받을 수 있다는데...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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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피를 받을 수 있다는데...

본문

질문

스님의 법문을 알게된 지 십 수년이 지났으나, 근기가 낮아서 그런지 주인공을 찾다가도 화두 참선을 하거나 최근에는 염불 참선을 하기도 하는 등 계속 한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많이 맴돌았습니다. 최근에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 하는 일들마다 좋지 않아 염불을 많이 하여 벗어나려 하였으나 하면 할 수록 가슴만 답답해지며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주인공에 간절히 맡기고 관하자 마음이 편해지고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법문 중에 여러 불보살을 밖으로 찾아서 기도하다가 잘못되기도 한다고 그러셨는데 다른 스님의 법문은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은 우주 최고의 음이고 진여불성 자리이기 때문에 간절히 할수록 가피를 많이 입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살다 보면 여러분이 어떤 때는 생활에서 짓밟힌 것 같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주인은 떳떳하고 도도하기에 자기를 유(有)의 법이나 무(無)의 법이나 도도하게 흐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가르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을 못하면 ‘이렇게 되니깐 이거 큰일났구나.’ 이러거든요. 그러면 안 되죠. ‘당신이 다 알아서 해. 내가 이 자리에서 앉아서 죽든 나가서 죽든, 병이 들어 죽든 나한텐 아랑곳없다. 네가 끌고 다니는 거니까 알아서 해.’하고 놨을 때에 비로소 주인이자 나를 끌고 다니는 시자가 되니, 이 몸뚱이는 시자라 그랬는데 마음이 주인이자 또한 시자거든요. 시자이자 주인이고, 둘이 아닙니다. 처음에 배울 때는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이 바로 자기 시자이자 주인이자 부처이자 자유인입니다.

기도나 염불을 하는 것도 바깥으로 끄달리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는 있죠. 그렇게 될 수는 있으나, 버스 지나간 뒤에 버스를 타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도 얘기했듯이, 옛날에 어떤 스님이 자기 자신에게 “주인공!”하고 불렀습니다. 부르고는 “너 아침 공양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랬을 때에 자신이 또 대답을 했습니다. “식기 닦았습니다.”하구요. 그러니 그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한 발 떼어놓고 한 발 없어졌는데, 또 한 발 떼어놓고서 한 발이 없어졌기에 “밥을 먹었느냐?”하니까 벌써 “식기 닦았습니다.”이거예요. 벌써 한 발 떼어놓고 말입니다.

그런데 염불을 한다고 하는 사람은 염불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하는 거거든요. 염불을 한다고 생각을 안 한다면 몰라도, 물론 시간이 초월이 돼서 빠르고 더디고가 없다고 하지만, 염불을 해서 그것을 이룰 양으로 애쓰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그건 더디다 이거죠. 벌써 밥을 먹고 식기를 닦았는데 식기 닦은 뒤에 밥을 먹었느냐 하는 격이니, 그러니까 버스 타고 간 뒤에 버스 찾는 격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염불을 한다, 내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참선을 한다, 기도를 한다.'' 하고 그 내가 붙는다면 더디 가는 길이다 이겁니다.

상황이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기웃거리게 되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앞에 가로막힌 그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고, 모든 상황이 나를 죄어 온다는 생각이 들 때에, 아주 급박할 때에 오히려 공부하기가 쉬운 거예요. 그렇게 급박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어떻게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것도 바로 자기 주인공이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자기하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몸도 만들었는데 그 자기가 또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하게 한다는 것을 얼른 알아야 합니다. 공부를 시키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어 놓는 거죠. 그런 상황에 부딪쳤을 때에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 겁니다.

색(色)으로만 생각하고 사량으로 생각한다면 당장 죽겠으니까 내가 어떡하든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게 되죠. 그런데 그건 소용없는 겁니다. 내 주인은 어떻게 빠져나가나 그걸 보느라고 벌써 그렇게 만들어 놓고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사량으로 빠져나가려면 저 창문이 문인 줄 알고 그냥 나가려고 애를 쓰는 벌이나 같은 형국이거든요.

그렇게 급박할 때 모든 걸 다 맡겨 놓는, 그것이 바로 내 대로를, 벽도 없고 봇장도 없이 그냥 확 뚫어 버리는 그러한 공부를 하는 과정이라는 걸 믿으셔야 합니다. 생활이 가난하지도 않고 몸도 건강하고, 친구들도 많고, 자기가 살아가는 데 있어 모든 게 풍족한 사람들은 답답한 일이 당장 눈앞에 없으니까 스스로 자기 주인공을 찾고 마음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 앞에는 아예 그냥 쪼아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래서 홀랑 껍데기를 벗고서 우주 바깥을 벗어 나가나, 그렇지 않으면 껍데기를 쓰고 그 껍데기를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나 그걸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참 묘한 이 이치를 내 생활에서 그대로 재료로 알고 맛을 보고 가는 계기로 삼으신다면 크게 쉬어질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정말 믿음의 끈을 놓치지 말고 한 번 더 크게 생각하고 더 열심히 마음으로 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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