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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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본문

질문

스님, 평소 때 마음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힘든 일이 생겼을 때는 그 일을 주인공에 믿고 놓는 식으로 공부를 한다지만 별다른 일이 없는 때에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요? 그저 단순히 명상에만 잠긴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닐 테고요. 조금이나마 주인공을 느끼고 있는 경우에도 계속해서 ‘주인공, 당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당신이다.’라고 관하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계속 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앉고 서고 먹고 자는 생활을 물 흐르듯이 해나가면서 그렇게 하게 하는 놈이 누구인가를 놓치지 않고 계속 지켜봐야 하겠죠, 친밀하게 믿고. 배워나갈 때에는 이 이름 찾고 저 이름 찾고, 이 사람이 이러면 이렇게 듣고 저 사람이 저러면 저렇게 듣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어떠한 걸 듣더라도 그것을 듣게 한 그 자리에, 잘 된 것이 있다면 감사하게 돌려놓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잘못되는 것도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거니까 좋게 돌아가도록 다시 그 자리에 돌려 놓는 겁니다.



즉 말하자면 책을 보더라도 내 주인공 불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책을 보게 되는 거지 내 근본이 없다면 어떻게 책을 볼 수 있겠습니까? 듣는 거, 보는 거, 말하는 거 모두가 다 근본 자리가 있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게 놔질 때는 바로 자동적인 컴퓨터에 입력된 게 없어지듯이 그렇게 없어지면서 새로이 입력하는 게 다시 현실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인간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옛날에 어느 사찰에서, 절에서는 재사를 지내면 항상 헌식을 하는데, 밥과 과일 덜은 거를 넓은 돌 밑에 놔두면 벌레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새들이 먹기도 하고 그러죠. 그렇게 뭇 생명들을 위해서 갖다가 놓는 겁니다. 그런데 큰 구렁이가 돌 밑에서 그걸 받아먹으면서 한 이 년 남짓 살다보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를 보면서, 우리가 지금 부처님 찾는 거나 똑같이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나와서 먼 산을 보고 있는데 돌 밑에 있던 구렁이가 나와서 하는 소리가 ‘스님처럼 저도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거는 도승들이나 듣지 보통 사람은 못 듣죠. 그러니까 ‘될 수도 있지만 그 어려운 고비를 어떻게 넘기겠느냐?’하니까 ‘죽더라도 꼭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스님이 하는 말씀이, ‘3백 명을 꼭 교화를 시켜서 이 도리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법당에서 스님이 법을 설하거나 또는 예불을 올리거나 하면 항상 그 분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들을 수 있겠느냐. 셋째는 삼 년 동안을 이슬만 받아먹고 살 수 있겠느냐’하고 말씀을 하셨더랍니다.



그러니깐 그 구렁이는 그것보다 더한 거라도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항상 이슬만 받아먹고 들어가고 그러면서 헌식하는 것도 그때서부터는 안 먹고, 자기 동료들을 교화시키려고 애를 썼답니다. 끄트머리에 한 가지 또 뭐라 그랬느냐 하면, 장독대에 가서 장을 얻어먹을 수 있어야만 된다. 사람이 먹는 장 방울을 얻어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항아리를 넘어 들어가서 먹는 게 아니다. 장을 뜨러 왔을 때에 떨어지는 방울을 먹어야 마지막에 인간으로 환토할 수 있다고 했단 말입니다.



그거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스님이 말씀한 거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노력을 안 하고 그 뜻을 배울 수는 없다는 겁니다. 또 노력하지 않고 차원이 높아질 수도 없고 노력 않고서 스스로 여여하게 살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죠. 그런데 그 구렁이는 그걸 이겨냈답니다. 이겨내서 거길 떠나지 않고 공양주가 간장을 뜨면서 떨어뜨린 거를 받아먹으려고 기다리려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 그거를 또 한 번 받아먹고 또 한 번 받아먹고 세 번 받아먹는 데에 삼사 년이 넘었단 얘깁니다. 그러니 얼마나 깊은 의지와 깊은 뜻이 거기 서려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구렁이는 사람으로 인도환생을 하는데, 그것도 뼈다귀만 남아가지고 너무나 애절하게 굴기 때문에 그 모습을 벗고 인간으로 환생을 하는 데 그 스님이 인도를 했답니다. 자손 없는 집으로 인도를 한 거죠. 그거는 부처님의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듣기에는 황당하게 들릴지 몰라도 부처님의 연기법이라는 것을 허투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그 모습 하나 벗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입니다. 토끼라면 토끼 모습을 벗기가 어렵고 새라면 새 모습을 벗기 어렵고, 인간이 되는 데는 부처님 경지에 이르러서야만이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돼 가지고도 99%가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된다고 얘기했죠.



사람이 소로 살다가 그 소의 습을 놓지 못해서 도로 소로 태어나고, 사람도 그런 생각이 없이 그냥 살다가 보면 회향을 잘 못해서 도로 중세계 차원의 삶에 그 마음을 가지고 다시 또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철 사는 데에 우리가 지금 필연적으로 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을 벗어나야 된다는 얘깁니다. 깨우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 불기둥이 자기를 움죽거리게 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고 자기 몸뚱이는 거기에 수레와 같이 중심을 끼어서 돌아가니 불성은 움죽거리진 않아도 항상 힘을 배출해 줍니다. 우리는 이 옷을 벗을 때까지라도 열심히 해서 차원과 모습과 또는 삶을 다시금 나올 때 고통받지 않게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을 건져주죠.



그래서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떤 거를 막론해 놓고 잘하든 못하든 상대가 좋든 나쁘든, 좋은 거는 좋은 거대로 놓고 나쁜 거는 나쁜 거대로 놓되 한 군데다 놔야 합니다. 우리가 나온 구멍이 그 구멍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구멍도 그 구멍이고, 그렇게 했을 때에 그 자체도 없는 자유 자재권을 인가 받게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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