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의정을 내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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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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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의정을 내려면...

본문

질문

스님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아 생활하고 있는 청년 법우입니다. 이제는 마음공부에 대해서 조금 확고해지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생이 다하기 전에 확철대오 하고픈 마음은 간절하나 그 마음마저 근본 자리에 돌려놓고 스님께서 설법하신 법어집과 테이프, 그리고 매주 나오는 현대불교신문을 스님께서 직접 설법하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믿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해 나가다가 의정을 내어야 한다는 스님의 법문을 보고 어떻게 하면 참다운 의정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올립니다. 하찮은 질문이다 여기지 마시고 가르침 주신다면 소중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의정이라는 것은 못 믿고 모르기 때문에 이게 뭘까 하고 들어가는데, 보이는 이 육신은 가아(假我)이고 진짜 자기는 깊은 내면 속에 들어 있다는 거를 알면 아는 대로 넘어서는 겁니다. 의정을 떠나서 넘어서는 거죠. 진짜 의정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진짜 자기와 가아 자기가 같이 만나서 공부할 때 그때 비로소 진짜 의정이 나오는 거죠. 무의 세계 광대무변한 거를 다 배우려니까, 알지도 못하고 그냥 의정을 내겠다고 해서 내는 거는 무모하기가 짝이 없고 내가 줄을 잡아타고서, 즉 말하자면 소 고삐를 잡고 피리를 불 때 그 피리소리가 얼마만치 가는지 되돌아오는지 그것도 알게 되는 거죠.

예전에 내가 공부할 때 먹지도 못해서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간신히 엉금엉금 물 흐르는 데 기어가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게 배우는 일이죠. 나의 줄을 잡았으니까 거기서 가르치는 거죠. 그 물을 허덕거리면서 세 모금을 마시고 났는데 문뜩 생각이 나기를 ‘그 세 모금은 그대로 있느냐!’ 이 소리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쳐 나가는데 그거는 뭐 대의정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죠. 이거는 시공을 초월한 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거든요. 그러니까 ‘네가 세 모금을 먹었어도 한 모금을 세 모금으로 대처할 수도 있느니라, 아홉 모금이 세 모금이 될 수도 있고 한 모금이 될 수도 있고 한 모금이 한 모금도 아닐 수도 있다.’ 이거죠.

그러니까 그런 데서 의정이 있는 거지. 이거는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정이 있는 거죠. 순간 그런 것뿐이 아니에요. 이제 나투는 방법과 어떻게 해서 마음이 하나뿐이 아니라 수만 개의 분자로 화해가지고 입자로 화해서 보살로서의 응신이 될 수 있을까 할 때, 나툴 때 그렇게 의정이 날 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의정을 낼 게 하나도 없이 무조건이죠. 무조건! 무조건 대문을 탁 치고, 있다면 대답하라고 하는 거죠. 무조건 맡기고 말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애들이 아장아장 걸음을 걸을 때에 무조건 걷기 때문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해도 모르고 그냥 팔딱팔딱 뛰어가죠. 근데 반드시 애들 앞에는 어른이 지켜보고 있어요. 지금 우리의 자성 부처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와 같다고 할 수 있죠. 어린아이들이 어디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고 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낭떠러지가 생기면 무조건 딱 붙잡는 거예요. 붙잡아서 낭떠러지가 없는 데로 데려다 놓는 거죠. 이거를 진짜로 믿어야 해요. 그러니까 어디 떨어질까 봐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아버지는 대문 없는 대문 안에 있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꼭 찾아야 되겠다 하는 격이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우리가 정진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화엄경에도 그렇게 쓰여 있어요. 부처님의 곳처는 어디에다 두었는가. 또 사람들이 배우는 과정을 어디에다가 이름을 뒀는가, 명칭은 어떻게 정하는가. 그러나 그것을 이렇게 한 건지 저렇게 한 건지 봐도 모를 거예요. 그냥 글자로만 풀이를 해놨으니까 그 속에 숨어 있는 뜻을 모를 겁니다. 그렇게 심오하게 말씀하셨는데도 말입니다. 글을 떠나서 써 놓을 수 없기 때문에 글을 떠나지 않고 그 뜻을 표현하려고 하니까 어떤 때는 몇 자가 더 적어진 곳이 있어요.

『한마음요전』이나 『허공을 걷는 길』도 한 달에 한 번씩 얘기해 놓은 것을 편집한 건데,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비디오도 있고 또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현대불교 신문도 있으니까, 근데 죽은 글이 있는가 하면 산 글이 있어요. 살아있는 글에서는 샘물이 나오지만 죽은 글에서는 샘물이 나오지를 않죠. 아무리 읽어도 물리가 터지지 않습니다. 이론으로만 편집이 되어있기 때문이죠. 무한량으로 에너지가 거기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증득하기를 바래요. 이건 내 개별적인 마음이 아니고 개별적인 말이 아니에요. 그건 포괄된 여래의 법이므로 나는 입만 빌렸을 뿐이에요.

그러니 자꾸 넓게 펼쳐 나가도록 하세요. 아무리 광대한 법이라고 해도 적은 그릇에다 자꾸 퍼부어 봤자 흐르기만 할 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우선적으로 그릇을 크게 만들면서 바다를 집어삼킬 수 있게끔 열심히 해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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