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에 씨앗이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본문
질문
제 안에 저의 씨앗이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있다면 제 안의 씨를 발견해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저의 씨와 일체 제불의 씨가 진정 하나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마음 도리를 알기 쉽게 말하기 위해서 가끔 수박으로 비유를 합니다만, 우리 인간의 씨는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질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무의미하게 생각한다 이겁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상이 바로 보이지 않는 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박을 쪼개면 그 안에 수박 씨가 들어있다는 건 알지 않습니까?
근데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쪼개지 못하기 때문에 그 속에 씨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이겁니다. 작년 씨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씨를 찾으라고 하니까 작년 씨만 생각을 하고 작년 씨만 들고 있는 겁니다. 마음으로 들고 있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거니까. 예를 들어서 수박더러 “네 씨를 네가 찾아라”고 하니까 제 속에 제 씨를 두고 바깥에서, 작년 네가 나오기 이전 네 씨를 찾으라고 하니까 작년에 심었던 씨를 찾는 겁니다. 그러니깐 영 못 찾죠. 자기 안에 들어 있는 걸 모르고요. 벌써 작년 씨는 화해서 올 씨가 됐는데, 작년 씨로 말미암아 올해 자기가 나서 올 씨가 됐는데 그게 찾아집니까? 그 수박은 자기 안에 씨가 들어있는 줄을 모르고 작년의 씨를 찾고 있는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수박과 같이 내 몸이 수박이라고 한다면 수박 안에 씨는 들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수박 씨 때문에 지금 내가 살이 붙은 겁니다. 그러고 익어갑니다. 안의 씨가 여물었기 때문에 이 거죽도 익은 거지, 만약에 그게 여물지 않았다면 바깥의 수박이 익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바로 씨가 자기 속에 들어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믿으라고 하는 겁니다. 속에 들은 그 씨를 못 보걸랑 나를 봐라 이거죠. 각자 나를 봐라, 내 수박이 있지 않으냐 이거예요. 수박이라면, 비유해서 얘깁니다. 내 몸이 각각 수박이라면 그 수박 안에 씨가 있는 줄은 알아야 될 것 아니냐 이겁니다. 직감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우리가 지금 몸이 있기 때문에 씨가 있다는 거를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몸이 있는 것이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고 그것이 실상이 되는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도 말씀하시고 예수님도 말씀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씨로 비유한 겁니다. 그 씨 한 알 가지고, 올해 씨 하나 가지고 ‘밥 한 그릇’ 했습니다. 그 씨 하나 가지고도, 온 세상을 먹이고도 그 수박 씨는 되남더라 이겁니다, 쉽게 말해서. 그러면 “올 밥 한 그릇 가지고 세상사람들을 다 먹이고도 그 밥 한 그릇은 되남았으니….” 하는 소립니다. 만약에 그 수박 속에서 씨 열두 개가 나왔다면, 열두 광주리를 가지고 이 세상 사람들을 다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는 되남았다는 소리나 똑같습니다. 그러니 그 씨 하나에 수박이 얼마나 열립니까?
그런데 그 씨 하나가 말입니다. 일곱으로 화했다 하더라도 그 일곱 중에 또 씨를 번져 보십시오, 얼마가 되나. 그러니까 그 하나의 씨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 먹이고도 남음이 있다는 거는, 그 씨 하나가 바로 전체 생명이 하나로 돌아가듯이 하나다 이겁니다. 여러분의 씨 하나가, 차원은 여차 해놓고 씨라는 거는 똑같습니다. 씨라고 부르는 거는 똑 같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만 가지 천차만별로 돼 있는 씨라는 그 자체가…. 다 먹이고도 그게 남지 않습니까? 이거는 아주 발겨서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
그래서 예전에 어느 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다가올 무렵, “모든 형제들이여! 이왕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갈 바에는 풀 한 포기 없는 데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그래요. 공으로 얘기한 겁니다. 공의 도리를 얘기한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어떤 스님이 그 말씀 끝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이왕 동쪽으로 서쪽으로 갈 바에는, 잡초들을 하나하나 낱낱이 밟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이나 그 말이나 똑같은 얘기죠. 똑같은 공 도리를 말한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야! 이 세상에 뭐가 없다 있다 할 수 있겠나. 저 아래 삼거리에 내려가면은 달구지, 말도 많건마는 말이야” 천차만별로 갈갈이, 삼거리에 내려가면 말과 달구지가 많다 이겁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가 지금 살면서 천차만별의 씨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종류가 많은데, 씨라고 부르는 건 하나밖엔 없다 이겁니다, 씨라고 부르는 소리는. 그래서 달구지와 말은 많으나 그 채찍은 하나다 이겁니다.
여름이 따로 있고 가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풀 한 포기 있는 게 따로 있고 없는 게 아닌데, 그렇게 말씀을 해 놓으신 거는 역시 선지식들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 하셨다는 거, 덫을 많이 놓고 낚시 밥을 많이 던져 놓으셨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낚시 밥을 던져 놓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선종 도리는 아마 끊기고 돌아갔을는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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