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아상이 커서일까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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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상이 커서일까요?

본문

질문

저의 아상이 커서일까요? 내 자신 스스로는 모든 것을 참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건만 너무나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이 많아 정말 힘이 듭니다. 도대체 저에게 무엇이 문제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 잘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 놔버리지 못하니까 무명이다 아상이다 하는 게 나오는 겁니다. 근본에 완전히 맡기지 못하고 자기라는 걸 세우기 때문에 아상이 생기는 거고 또 믿지 못하기 때문에 무명이 생기는 겁니다.

나무들도 자기 뿌리로 인해서 살고 있으면서도 흙에 가려 있기 때문에 자기 뿌리를 못 보거든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기 뿌리를 못 보니까 믿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는 나무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고 있지만 나무의 싹은 흙이라는 무명에 가려서 자기 뿌리를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나에게 뿌리가 있다는 거를 전제하고 들어가야 믿어지는 거지 믿지 않으니까 거기에서 달리 나가는 거죠.

그러고 싹이나 이파리가 제 뿌리는 생각 안 하고 무명에 가려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싹이 자기라고 하고 이파리가 자기라고 하는 겁니다. 싹이 자기라고 그럴 때는 그게 아상이죠. 자기 뿌리를 모르니까 이파리가 빳빳해져서 나라는 존재를 세우니까 거기에는 아상이니 인상이니 중생상이니 수자상이니 거기 다 붙는 거죠. 싹은 뿌리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싹은 뿌리에다 전부 일임을 해서 믿고 맡기고 피어만 있어라 이겁니다. 원동력이 뿌리가 되는 거니까요.

그와 같이 우리도 싹이 자기라고 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를 세우는 거죠. 그러나 자기를 세울 게 아니라 항상 싹은 뿌리로 인해서 있다는 인식을 중간에서 한다면…. 그래서 계향 정향 혜향을 말했습니다. ''계향''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과 기본적인 계법에 의해서 모든 것을 정돈하고, 즉 말하자면 부작위한 일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나쁜 일을 한다는 것도 알고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다 알기 때문에 자기 질서를 지킨다 이겁니다.

그래서 질서를 지키는 거를 한마디로 요약해서, 질서를 지키는 인간이 돼야 계법에 적응이 되거든요. 이것은 인간으로서 계법에 적응이 되니까 계향이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항상 내 마음이 정돈된 그 자체 중간에 정(靜)으로서 내가 한 중간을 가지고 있는 게 지금 마음을 내는 겁니다. 이리로 가느냐 저리로 가느냐 하는 나침반에 속해 있는 것이 바로 정입니다, 정에 들었느냐 하는 소립니다.

그러니까 우주를 전체 싸고도는 정에 들었느냐, 아니면 지금 생활하는 데에 그냥 우리가 사사로운 사량심으로써 내가 똑바로 산다, 인간으로서 거짓없이 내가 똑바로 산다는 정에 들었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를 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나툼으로써 어디다가 세울 수 없는 정이 되죠.

우주를 전체 싼 정이 돼 버리고…. 어떠한 개별적으로 자기가 생활하면서 살아나가는 정은 남한테 손가락질 받지 않고 고지식하게 아무 속임 없이 인간답게 사는 그러한 정이고, 우주를 싸고 있는 지혜를 낸다면 바로 그건 전체를 싸고 있는 그런 정이죠.

그러니까 모든 것을 관해 보고 관해 듣고 전체를 볼 수 있는 그런 정이라 이겁니다. 그러면 정이라고 하는 그 자체를 세웠다가 나중에는 그 자체도 세울 게 없더라 할 때 비로소 인제 타파가 되는 거죠. 전부 내가 되니까. 그래서 싹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의 자체가 뿌리라면은 그 생각을 내는 거는 바로 중간에서 싹을 이끌어 가지고 가는, 생각 내는 데에 달려 있다. 싹을 잘 이끌어 가지고 가려면 바로 자기 뿌리를 생각을 해야 싹은 잘 소생될 수 있고 좀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다 하더라도 잘될 수가 있다, 바로 세울 수가 있다 이거죠.

그러니까 우리 마음이 같기 때문에, 저런 나무들도 생명이 있는 거기 때문에,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해주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어떠한 표본이기 때문에 나와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나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내가 즐겁기 위해서 또 거기다 거름을 주고 물을 줍니다. 그런데도 그게 어떻게 둘입니까? 모두가 둘이 아닙니다. 같이 살고 있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서로가 서로를 살려주면서 하나도 따로 떨어진 게 없이 지금 같이 걸어서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체가 없는 그 공(空)의 위치의 식(識)은 항상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그것을 부처님이니 법신이니 화신이니 이런 걸로 표현을 한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다 누구나가 생활에서 모든 걸 몰락 일임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있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주인이라는 그 자체도 공했기 때문에 ''공''이요, 그래서 ''주인공''이라고 한 거죠. 그러니까 주인이라는 자체가 공에서 나왔다가 공에서 사라지니 바로 전체가 주인공이 아니겠는가 하는 겁니다.

전체 속에 내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나가 아니다 이겁니다. 이것은 형성된 하나의 그림자인 것이죠. 그러니 이 그림자가 어떻게 살 수 있겠냐, 그저 쫓아다니는 거밖엔 안되니 당신이 다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내밀었을 때 놔버리는 겁니다. 그것도 이름해서 공이라고 세워놓는 것뿐이죠. 그렇게 해서 몰락 다 놔버렸을 때 비로소 거기에서는 몸이 아프다거나 집안에 어떤 일을 계획을 세운다든가 할 때 모든 걸 거기에서 하고 있다는 거를 전제함으로써 그것은 함이 없이 한 겁니다. 자기가 공이기 때문에 생각도 공이요, 또 우리가 추구하고 들어가는 것도 공이요, 모두가 삼합이 다 공이 돼버리고 마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무엇을 잘 하고 있다고 하는 그 생각부터 내려놓아야 해요. 모두가 한 마당의 공이기 때문에 자기라고 국한 지어서 생각하는 건 아상만 커지는 겁니다. 그러니 일체를 다 내려놓고 둥글려서 한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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