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체험이 없어요.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내가 본래 공했기에 공한 그 가운데에서 일체를 둘로 보지 말고 나를 세우지 말며 자유인으로 생활해 나가라고 하십니다. 물론 그 말씀이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인줄은 알지만 생활 속에서 저는 일체를 나의 근본과 둘 아니게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둘로 보고 미워하면서 나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자리에서 일체가 나오는 거니까 그 자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해 나가면서 관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아직 특별하게 체험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부의 진전을 위해서 고견을 듣고자 질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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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데 뭐가 잘못 돼서 아직도 남들처럼 특별한 체험을 못하나 생각하지만, 뭐가 잘못 돼서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이 도리는 아무리 얘기를 백 번을 들어도 한번 자기가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벌써 자기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체를 둘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미 그것마저도 몰랐을 때의 자기가 아닙니다. 하려고 하는 게 다르고 해 보는 게 다르고 하고 나서 느끼는 게 다르고, 또 한 번 더 해 보는 건 분명히 다른 겁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실천을 하면서 체험을 얻게 되면은 자기 근본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그 자리에 대한 믿음 또한 더 강하게 되는 겁니다.
늘 하는 얘기입니다만, 콩씨를 올해 심어서 싹이 났으니 이미 콩씨는 콩싹으로 화했는데 어디 가서 콩씨를 찾겠습니까? 콩씨가 콩싹으로 변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콩나무가 콩씨를 또 찾는 거죠. 그러니까 콩씨가 콩나무로 화했어도 그건 콩씨라는 얘기입니다. 콩나무에 콩이 열리면 또 콩씨가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깐 상대하고 나하고 무슨 말썽이 있거나 한다면 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 탓으로 돌려라 이겁니다. 그래야만이 모든 게 그냥그냥 돌아가면서, 즉 말하자면 체험이 되는 거죠. 상대를 원망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라고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내가 있으니깐…, 이 말이 이해가 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있으니깐 그런 일이 생긴 거지 내가 없다면 상대도 없는 거니까 그런 일이 안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깐 모든 것이 내 탓이죠. 그런데 때로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되 내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도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주인공, 당신만이 저 사람도 그렇지 않고 나도 이렇게 분하지 않게 만들 수 있잖아.’ 하고 관하는 거예요. 이건 진실된 겁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는 반면에 듣고 보고 침착하게 생각해보고 체험을 얻는 겁니다.
그렇다고 안 된다 된다를 체험 얻으라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습니다. 즉 말하자면 안 되는 것도 거기 놓고 되는 것도 거기 놓는 겁니다. 안 되는 거는 ‘너만이 되게 할 수 있어.’ 하고 놓고, 구정물이 들어오면 ‘당신만이 맑은 물로 바꿀 수 있어.’ 하고 돌려서 놓고 관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체험해 가다보면 일체가 둘이 아니기에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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