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깨닫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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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나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너무도 한심스럽습니다. 저처럼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한순간에 깨닫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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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한순간에 깨닫고 싶다고 하나 어린아이가 태어났을 때에 그냥 응애 하고 우는 거와 같아요. 그래서 자기 근본을 알기 위해서 처음에는 일체를 그 자리에 되돌려 놓고 관해야 하고, 그 도리를 알게 되면은 또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일체를 또 그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배웠다면 나고 들고 하는 사이 없이 나고 들기 때문에 몰락 없어지면서 훌렁 벗어나서 자유로운 세상이 되는 겁니다.
쌀알이 어디에서부터 생겼을까요? 그게 종자가 되려니깐 농부가 벼씨를 심어서 싹이 나는데, 또 그 벼씨를 만들어 낼 때까지 길러지는 과정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일심(一心)으로 들어가야만 된단 얘기입니다. 다른 데서 찾은들 안되고 다른 데에 끄달려도 안되고 오직 거기에다가만, 그릇이 항상 비도록 ‘너만이 할 수 있어.’ 또 때에 따라서는, 그건 닥쳐오는 대로니까. ‘너만이 해결해 줄 수 있어. 너만이 보디가드가 돼 줄 수 있고, 너만이 이끌어 갈 수가 있고, 너만이 너가 있다는 걸 증명해 줄 수 있고….’ 이거 그냥 뭐, 모두가 거기죠. 모두가 거기라야만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몇 년, 몇십 년이 가도 자기와 상봉을 못하는가 하면 일년 이년 동안만이라도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자기와 상봉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거를 무의 세계의 도리로 한다면 한 찰나에 다 알게 된다, 이런 말이죠. 그건 형체가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는 법이 아니라 한 찰나라는 건, 한 찰나에 증득했다는 뜻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로 다시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렇게 왕래하는 것을 한 찰나라고 그러고, 한 찰나에 그 뜻을 알게 돼서 한 찰나에 굴리는 겁니다.
그런데 배우면서 ‘나는 이러니 저러니, 나는 이렇게 되느니 안되느니….’ 하고 붙들고 늘어지는데 안되는 것도 거기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안 되는 것도 거기에서 하는 거고 되게 하는 것도 거기에서 하는 거니까 걱정할 게 뭐 없죠. 하늘이 무너져서 가루가 돼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그게 뭐이 걱정입니까? 제 몸 제 맘대로 하라지.’ 하는 겁니다. 제 몸 제 맘대로 하는 건데 왜 일부러 걱정을 하느냐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렇게 말하게 하는 그 놈이 있으니깐 너 알아서 하라고 하지 왜 괜히 걱정을 하느냐는 겁니다. 자기 몸뚱이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죠. 근데 왜 생각으로 집착을 하고 모든 걸 걱정을 하느냐 이겁니다. 자기 몸뚱이는 자기 근본의 시자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는 요즘 특히 더 그런 이치가 생겨요. 걷다가 발목이, 그 전 같으면 그렇게 다니면서도 아파서 드러누워 본 예가 없어요. 그런데 지난번에 어디를 가다가 발목이 삐끗했는데, ‘발목 삐끗하면 누구 손해일까? 이렇게 하면 안되잖아. 너 알아서 해!’ 난 그냥 이래요. 그러면 그냥 편안해요. 내가 없는데 편안하지, 그럼 편안하지 않을 게 뭐 있겠어요? 그리고 내 몸을 다스리는 자기가 있는데 뭐, 내가 뭐라고 간섭을 하고 그래요.
어떤 땐 어디가 결릴 때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을 여럿 만날 때는 ‘너 방편으로 모습을 내놓고 하는데, 모습을 그렇게 내놓고 하는데 이렇게 거북하게 하고 힘들게 하면 되겠어?’ 이래버려요. 그러고 ‘의욕이 나게 해야지!’ 그러면 의욕이 그냥 저절로 생기고 그런 거지, 어떻게 좋아서만 사나요? 좋지 않으면 좋게 만들어서 살고 너무 좋으면 또 쪼끔 덜해서 만들어가지고 살고 그러는 겁니다. 정말 이 세상은 재미있어요. 알고 보면은 무척 재미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어떤 부처님께서도 푸른 산은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부처님 아닌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니 부처님들이라 이거예요. 바닷물이 흘러, 청빈한 바닷물이 흘러 내려가는 것도 모든 진리의 설법이고…. 그러니 우리가 말없이 배우고 말없이 증득(證得)하는 것이 지금 제일 필요로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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