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생명들에 대해서...
본문
질문
스님 말씀이나 다른 경전들을 보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들도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과 다른 생물이 다른 이유는 과거에 쌓아온 업과 습의 차이와 그 두께가 다르기 때문이며, 그 본래 성품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인간이 습과 업을 녹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생물들도 그 모습 그대로 역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다른 생물이 인간의 몸을 받기 위해서 그 생물의 몸을 버리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아주 간단하게 여러분 몸속에 있는 그 생명들을 한번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일체 만물에 대한, 일체 만생에 대한 문제를 다 얘기하자면 아주 거추장스럽고 복잡하니까 자기 속에 있는 그 생명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지금 이 몸에 들은 모든 생명 의식들은 나쁘고 좋은 걸 몰라요. 사람처럼 이렇게 잘못되게 내가 하면 안 된다 이런 걸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예요. 그런 거와 같이 모든 게 인간이 돼야만이 부처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소립니다. 마음 하나 바꿔놓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 100%지만, 또 백지장 하나 사이의 마음가짐을 두고 인간이 중생이다 부처다 이러는데, 인간이 되기 이전에 짐승이다 이런다면 어떻게 부처 될 수 있겠어요, 단번에? 그러니까 연쇄적으로 자꾸자꾸 올라오면서, 또 인간이 잘못했을 때는 저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짐승으로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자꾸자꾸 돌아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인간이 됐다고 해서 인간만이 지속적인, 끝간 데 없는 진리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마음에 따라서 인간이 짐승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뭐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나오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지고 나왔다 하면 인간이 되기가 어렵다, 우리는 부처 되기 어렵고 짐승들은 인간 되기 어렵고 그런 거죠. 또 미생물에서는 미생물에서 나는 짐승이나 육지에 다니는 짐승 되기가 어렵다 이거죠. 이렇게 그 습이 자꾸, 뱀 소굴을 봐도 뱀으로 살던 습이 많기 때문에 그 모습을 털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겁니다. 쥐도 그렇고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참답게 살아나가는 습을 길러야 하고 선덕을 쌓아야지, 악덕을 일삼으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가지고는 오히려 짐승의 모습을 타고나게끔 자기가 자처한다 이 소리예요. 이 모습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틀림없이 이렇게만 하면 된다 이거예요. ‘남한테 이익하게 생각을 해줘라. 이익하게 행동해라. 이익하게 말해라. 또 없는 것을 좋은 일 한다고 꾸면서까지 주는 거는 그것은 미덕이 아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환경에 따라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지혜를 가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부처 되기가 어려운 것은, 마음 한번 제대로 못 굴리기 때문이다 이거예요. 바깥으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면서, 안으로는 주인공을 믿고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한다고 믿고 맡기는 것조차도 거기다가 맡겨 놓고, 영원한 친구, 친구라고 해도 되죠. ‘영원한 친구야! 네가 이날까지 나를 이끌어 왔고 지금도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안되는 것도 너한테서 나온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너 아니냐. 너밖에 없어. 네가 나를 이끌어가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네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하고 모든 걸 거기다가 맡겨 놓는 그 작업을 하면서 한 꺼풀 벗어날 수 있도록 공부하세요.
보이는 모습이 촌챙이나 짐승이라고 해서 그것들만 동물이 아닙니다. 사람의 모습을 받아 가지고 나왔으면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외려 동물보다 더 못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 이전글이성을 대하는 마음자세 21.10.25
- 다음글거침없이 행동해도 되는지요? 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