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면 모든 게 해결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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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내 안의 마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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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말하자면 우주의 근본도 여러분 마음의 근본에 직결돼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자체가 바로 근본에 가설이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그냥 여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불교라는 의미는 만물만생의 생명, 그 근본이 불(佛)이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에 일체가 다 같이 통하고 교류하고 돌아가는 그 자체가 교(敎)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라는 그 자체는 어느 한 군데 국한돼 있는 게 아니라 전체가 돌아가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불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해 놓고 말입니다. 어떤 종교라 할지라도 각자 생명의 근본이 있고, 말을 해서 서로 교류하고 전달하면서 돌아가니 모두가 불교 안에 있는 것입니다.
불교라는 자체는 너무나 광대무변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 없이는 세상에서 창조력을 기를 수도 없고 창조를 해낼 수도 없고 발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전부 자기가 태어났으니까 상대가 있고 잘못됐든 잘됐든 부딪침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상대도 없고 부처도 없고, 모두가 무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식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부터 믿고 너부터 알라. 너부터 알고 너를 깨달아서 본다면 모든 중생과 부처가, 일체가 다 둘이 아닌 도리를 알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갑니까? 애고든 병고든 천차만별의 문제가 닥치면 닥치는 대로 밖으로만 찾습니다. 명이 짧다 하면 칠성님한테 빌고, 가난하고 일이 생겼다 하면 관세음보살을 찾고, 좋은 데로 못 간다 하면 지장보살 찾고, 병이 들었다 하면 약사보살 찾고, 물에서 위험할 듯하면 용신을 찾고, 길을 가다가 위험할 듯하면 지신을 찾고…. 여러분, 한마음을 가지고도 자유스럽게 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것을 오는 대로 어떻게 타의에다가 상대를 두고 빕니까? 상대를 두고 빌어 봤자 공덕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도 나지 않으며 못났든 잘났든 자기를 발견해 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항상 노예로서 세세생생 끄달리면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우주하고도 직결이 돼 있고 세상하고도 가설이 돼 있다 이겁니다. 우주간 법계의 근본이 바로 여러분 마음의 근본에 직결되고 가설이 돼 있단 얘깁니다. 알기 쉽게 말을 하려니 이렇게밖엔 말할 수가 없군요. 그러니 병고가 오면 ‘야, 내 깊은 한마음 속에서, 바로 거기에서 병고도 나온 거니까 낫게 하는 것도 거기 아닌가. 네 시자를 네가 건강하게 끌고 다녀야지.’ 하고 거기 놔야 이치에 맞다고 봅니다. 또는 명이 짧다 하면 안에서 칠성이 됩니다. 금방 화해서 칠성 부처가 돼요.
이해가 안 가면 한마디 더 할까요? 가정에서 살면서 때에 따라서 금방 아버지가 됐다가, 금방 남편이 됐다가, 금방 아들이 됐다가, 금방 형이 됐다가, 이렇게 아주 자동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여보!” 그러면 “왜 그래?” 하고 그 행동과 말과 뜻이 그대로 남편 노릇을 한단 말입니다. 그랬다가도 “아버지!” 하면 금방 아버지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부처님 마음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그렇게 자동적으로 돌아가듯이 그대로 나투는 것입니다. 어떠한 애고에 대해서 모든 거를 놓을 때는 자동적으로 산신도 되고 칠성도 되고, 병고가 있어서 거기에 되돌려 놓을 때는 바로 약사가 되고, 좋은 데로 가지 못해서 놓을 때는 바로 지장이 되고…, 그 한군데서 그렇게 일체 만법을 굴리면서 돌아가는 겁니다. 그것을 바로 이름해서 수레공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거기다가 되돌려 놔야 됩니다. 내가 왜 나오는 대로 주인공에 되돌려 놓으라고 하느냐 하면, 주인이면서도 주인이 없고 그냥 돌아가는 그 자체가 이름해서 바로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나오는 거 거기다가 되돌려 놓아야 됩니다. 자기가 있기 때문에 일체가 다 나지, 자기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자기가 있기 때문에 부딪침도 있고 화도 나고, 애고도 생기고 병고도 생기고,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는 그런 이치가 생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돼서 나오는 거라면, 바로 되돌려서 거기다가 놓는다면 새로이 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입력된 거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있으니까 자기 나오기 이전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작년 씨를 올봄에 심었더니 싹이 돼서 화했더라 이거죠. 그 싹에서 수박이 열려서 씨가 그 안에 있으니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없고, 수박씨는 현재 자기한테 있으니 바로 수박을 그냥 쪼개서 맛을 보고 씨를 알아야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게 뭣고?’ 하고서 바깥으로 10년 20년 해도 도대체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 생각으로 과거 씨를, 내가 나오기 이전을 찾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다 들어 있으면서도 둘 아니게 공하여 화해서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역력히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몸 안에 악업 선업이 수십억이 들어 있습니다. 수십억이 들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런 얘기 다들 아시지요? 어느 수좌가 동짓날 팥죽을 쑤는데 팥죽 방울이 수없이 나오니까 “요것도 문수! 요것도 문수!” 하고 주걱으로 쳤다는 얘기 말입니다. 그것을 왜 주걱으로 그렇게 쳤는지, 무슨 까닭으로 “문수다! 문수다!” 했는지 그 뜻을, 그 뒷면을 아셔야 될 겁니다.
지금 되돌려 놓으라는 그 뜻도 그와 똑같습니다. 망상이든지 뭐든지, 우리의 마음이, 안에서 나오고 바깥에서 들어오고 하는 그 자체가 바로 딴 데서 오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팥죽 솥에서 팥죽 방울 일어나듯 하는 겁니다. 딴 데서 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뺏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이것도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거, 이것도 그 자리에서 나오는 거’ 하고 주걱으로 치듯이 놓아야 합니다. 왜냐? 팥죽 방울이 올라오는 게 바로 마음 일어나는 것, 생각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일어나는 것이 팥죽 방울 일어나듯이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그 팥죽 방울은 딴 데서 온 게 아니라 팥죽 솥에서 나온 거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몸이 팥죽 솥이라면 바로 팥죽 방울이 망상이라고 할 겁니다. 근데 그게 망상이 아닙니다. 이것도 법, 저것도 법, 그것도 법이다 이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부처요, 생각을 냈으면 법신이요, 움죽거리면 바로 화신입니다. 즉 말하자면 그건 자기가 뜻을 이루어서 그거를 알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한테 귀감이 되고 여러분한테 법을 전한 것도 됩니다.
우리가 모습만 보고 이름만 듣고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오신통이라는 통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통 안에서 벗어나야 되겠기에 모든 것은 마음에다 되돌려 놓고, 남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증오하지 말고 남의 탓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가정에서 남편이나 자식이 어떠한 잘못을 한다 할지라도 말로 그 몸뚱이를 잡으려 할 게 아니라 마음으로 서로가 밝게 살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심력을 키우는 것만이 해결 방법인 것입니다. 전깃줄과 전깃줄이 맞닿아야 불이 번쩍하고 들어오듯이, 내 주인공에 되돌려 놓으면, 모두가 가설이 돼 있으니까 거기까지 불이 들어오는 겁니다. 부모, 형제, 부부, 자식, 친구라고 알고 있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주인공에다가 모든 거를 맡겨 놓으면 거기까지 불이 들어와서 서로가 밝게 살 수 있는 여건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발견하는 지름길이며 그대로 여여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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