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체득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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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주인공을 관해 보지만 ‘스님께서 이런 걸 말씀하신 거구나.’ 하는 체험을 해 보지 못해 아직도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뭔가 빨리 체득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신체적으로 힘든 극한 상황에 놓는다든가 하는 고행을 하면서 주인공을 관하는 것이 그냥 앉아서 관하는 것보다 더 느끼는 바가 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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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수 해를 두고 이렇게 수행해 오고, 이날까지 봐 왔고 이날까지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기복으로만 많은 세월을 보내 왔습니다. 그것이 아주 배어서 인제는 바깥에서 빌고 또 바깥에서 구하고 그러는 일들이 아주 습으로 남아 있어서 녹이기가 매우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가도, 만약에 바깥에서 구하고 마음 바깥에서 부처를 구하고, 만약에 성품이라 하면, 성격이라고 해도 됩니다, 성품에 의해서 역시 팔자 운명이나 인과응보에 끄달리는 이치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품 바깥에서 법을 구하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마음 바깥에서 부처를 찾아도 안 되거니와 법을 구해도 안 된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항상 누구나가 이 몸으로써 내가 고행을 해서 법을 구하겠다고, 또 옛 성현들이 마음을 깨달아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좇고 그 분들을 좇아 구하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들을 가져서는 절대, 그것은 바깥에서 구하는 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본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은 내 몸으로써 하루 종일 앉아서 눕지도 않고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머리를 짜내서 대경(大經)을 쓴다고 해도 아니 되고, 또는 내 몸을 잘라서 태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부처를 구하지 못하고 법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분주히, 발이 부르터서 디딜 수가 없이 만들어서 고행을 하면서 정말 몸을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고 이리 잘라지고 저리 잘라지고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지고, 그렇게 겁을 거쳐서 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자기의 참맛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어른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그렇게 찾는 자는, 바깥에서 그렇게 법을 구하는 자들은, 또 몸을 패대길 치면서 그렇게 고행을 해서 구한다고 생각을 하는 자들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법을 구한다면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런 소립니다. 모래로 밥을 지어서 밥이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걸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자체가 항상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을 갖되, 어느 절이든 가 보면 말과 뜻과 행을, 세 가지를 종합해 봐서 견해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바로 그것을 진실히 믿고 따르면서, 자기 마음 안에서 부처를 구하고 자기 성품 안에서 법을 구하는 그런 이치가 틀림없는 사실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는 하되 기복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고는 견해가 밝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에 기복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고 진실히 믿는다 해도 그것은 십중팔구 마구니로 빠지기가 쉽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견해가 밝아야 밝게 보고 옳게 행을 하면서 믿음을 진실하게 마음 안으로 굴려서 자기를 자기가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네들은 앉는다 선다 생각 없이 자기 몸을, 공한 자기 몸을, 즉 말하자면 화두를 삼아서 일상생활에 일분일초도 끊어지지 않게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넓으나 점점 가면서 좁아들고 막다른 골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좁되 점점 가면서 넓어지면서 이 천지만물이 다 화창하게 빛을 보는 것입니다. 나와 더불어 말입니다. 그렇게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부가 그렇게 묘하고 광대무변한 것은 내 마음 안에, 심원 안에, 온 누리에, 삼천대천세계 모두가, 모든 법이 찰나찰나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법이 한마음 심원에 들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갖가지로 이름을 붙여서 따지지 않아도 무슨 경에는 무슨 말씀, 무슨 경에는 무슨 말씀 하지 않아도 말씀 그 자체나, 또 그 뜻 자체나, 그 하나하나의 이름이나 그 심원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각자 눈 따로 코 따로 귀 따로, 눈은 뭘 보고 뭘 보고 뭘 보고 이렇게 봐야 하고 이렇게 따지자고 본다면, 눈으로 보는 것 따지고 또 귀로 듣는 것 따지고 이러다 보면, 내 몸 전체의 모든 것을 일일이 따지게 되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 전체를 가지고 우리가 내고 들이는 것이,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법이 다 내 안에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법이 있고, 법 안에 바로 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적든 많든 이 뜻을 정렬하게 생각해서, 마음 밖에서 내 부처를 찾아서도 아니 됩니다. 그리고 내 생각하는 성품 안에서 법을 구해야 된다는 것도 명심하고 그렇게 실천을 해 보다 보면 빨리 체득하고 싶다는 그 생각마저도 저절로 놓고 오히려 간절한 마음으로 관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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