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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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요?

본문

질문

스님, 항상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직을 갖게 되고 이러는 것이 저만의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교수가 돼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러는 것도 좋겠지만 이미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그 공부를 하는 시간에 차라리 병원이나 노약자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고 갈등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지 그것을 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거는 작게 생각하는 겁니다. 진정한 보시는 물질로서 보시를 하는 거보다도 마음의 보시를 하는 겁니다. ‘일체제불의 노래’ 있죠? 한마음을 음파를 통해서 전 우주에 전해지도록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그 음파를 통해서 마음들이 전부 개선이 되고 지혜로워지고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일종의, 이런 말을 했죠. 물질 하나를 보시하는 거보다도, 고건 당장 쓰고 나면 고만이고 먹고 나면 고만이니까 물질 보시보다도 무주상 보시를 공심으로서 한다면 그거는 끊어지지 않는 삶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얻게 해 줄 수 있다 이런 게 있죠. 그러니까 무주상 보시라는 것이 너무도 크고 광대해서 오히려 무주상 보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지요. 그저 남들이 보게 내가 ‘이거 얼마를 시주했다. 얼마를 했다.’ 이런 것만 모두 생각들을 하시는데 함이 없이 해야 그게 무주상 보시가 되는 거지 내가 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이미 무주상 보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갈 때에, 예를 들어서 얘기하는 겁니다. 물건을 사러 가면 그 물건의 값어치대로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온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게 주인에게 돈을 준 게 없고 그 사람도 돈을 받은 게 없어요. 안 그렇습니까? 물건을 주고 돈을 주고, 받고 주고 했으니까 피장파장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누구를 줬으면 준 대로 줬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이만큼 줬는데 저 사람은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나.’ 이렇게도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깐 얼른 쉽게 말해서, 더 이상의 값어치를 받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말도 그렇게 나오거든요. 그렇게 한다면 그 이상 거를 받지 못해요. 한 게 없기 때문에요. 입으로 구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깐 여러분이 노래를 한마디 하는데 그냥 하거나, 그림을 한 장 그렸는데 그냥 그렸다거나 이런다면 그건 산 음성이 되지 못하고 산 그림이 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해서 음성을 낸다면 그 음성이 가사에 의해서, 그 가사의 용도에 따라서 음파가 되는 거죠. 그래서 남을 건질 수 있느냐, 남을 이롭게 하는 가사냐, 평화롭게 할 수 있는 가사냐 하는 겁니다. 가사에 따라서 음파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 공부는 말로 헤아릴 수가 없는 공부입니다. 세세생생에 끝간 데 없이 말입니다. 우주가 끝이 없듯이 우리가 사는 것도, 진리도 그렇게 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거를 허술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어떤 분이 “우리 아버님께서 교도소에서 나오셔야 될 텐데 나오시질 않으니까 서명을 받아서 진정서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요. 그래서 내가 “당신 한생각이라면 저절로 나올 텐데 떳떳하다면 왜 비굴하게 그것을 받아서까지 진정서를 내느냐.” 그랬습니다. 그건 뭐 이름을 대면 안 되겠으니깐 그냥 말하겠습니다만, 전직에 무모하게 계셨던 분이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그래요. 우리나라를 생각하고 우리 국민을 생각하고 그런다면 모든 게 우리나라의 수치거든요. ‘쪼금 아쉽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 전 세계로 볼 때도 참 수치지요. 그래서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구나.’ 이렇게 말을 하게 되지요.

그런 거와 같이 한생각이다, 이게 말로는 한생각이라고 아주 쉽게 하지만 한생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광대무변하고 묘법인지 몰라요. 음파가 그대로, 얼른 쉽게 말하자면 원자에서 입자가 전부 나가서 조절을 하거든요. 마음을 조절을 해서 둘 아니게 응신이 되면 그 마음들이 다 풀리게 되는 그런 문제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말을 함부로 하고, 또 스님네들을 우습게 보고, 그냥 마구 해 대는 수가 많거든요. 아무리 말 못하는 돌멩이라도 내가 공부한 대로 말을 할 수 있거든요. 내가 마음공부를 했다면 꽃나무도 전부 같이 통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무에는 목신이 있고 물에는 용신이 있고 산에는 주산신이 있고 하듯이 말이죠.

그러니까 모두 통해야 남이 아니고 서로가 조직적인, 우주전체가 조직적인 진리로서 에누리 하나 없이 틀림없이 진행해 나간다 이런 거죠. 질서정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이 질서정연치 못하니까 질서정연치 못하게 세상이 돌아가는 거지요. 그리고 이득이 없고, 자기를 자기가 망치고 돌아가거든요. 이렇게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남을 위해서 하는 봉사라 해도 무주상보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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