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 대한 집착을 비우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를 위하여 성격에 맞지 않는 게시물, 광고 등 유해성 글들은 관리자가 임의로 이동,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질문을 올리기 전에, 게시된 글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비우려면...

본문

질문

대다수 큰스님들께서는 마음을 비우라고 가르치십니다. 또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 보고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그러는데, 사실 마음을 비우자는 것은 욕심을 버리자는 얘기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설법을 들으면 마음을 비울 수가 있는 것 같은데 문 밖에 나가서 물질을 딱 보면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근데 사실 알고 보면, 마음을 비운다 안 비운다 하기 이전에 이미 아주 탕탕 비어 있습니다. 본래 비워져 있습니다. 돈을 억만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건 가진 게 아닙니다. 재산도 자기의 추에 의해서 그냥 돌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여여하게 쓰고, 여여하게 사랑하고, 여여하게 듣고 여여하게 보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도 이름해서 부처가 되어 봐야 보살이 될 줄 알고 보살이 될 줄 알아야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것이 참사람이요, 이름 해서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신도 자기요, 보살도 자기요, 부처도 자기요, 중생도 자기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태초의 모습이, 자기 오장육부의 세포를 타고 자기의 그 태초의 모습들이 자기 속에 지금 우글우글하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선장으로서 한생각을 내면서 지금 여여하게 뱃놀이를 하고 가는데 아니, 소리를 못 지르나마, 노래는 하지 못하나마 왜 여여하게 가지 못합니까?

그러니 놓으라 하기 이전에 이미 놔져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놓지 않고 있다면, 지금 자기 생각에 의해서 그냥 잔뜩 끼고 있어서 그렇지, 그러니 여러분의 탓이에요. 어디 가려고 걸어가는데 그 발자취가 남습니까? 그 발자취는 금이 아니고 보석이 아니고 돈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무심하게 왔기 때문에 없는 거지, 아마 발짝 하나 딛는데 금은보화가 10억 붙어 있다고 그런다면 ‘아휴! 한 걸음에 10억씩 붙어 있는데 내가 이거를….’ 하고는 붙들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거는 뭐 돈 내는 것도 없고, 돈 붙는 것도 없고, 하나도 이익이 없으니까 그냥 태연하게 할 뿐입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이 지금 살아나가는 것도 태연하게 그렇게 가십시오. 여러분이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실 때 신발을 내가 벗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있이 들어가십니까, 신발을 벗는다는 생각이 없이 들어가십니까? 똥 누러 갈 때 똥을 누러 간다고 생각을 하고 갑니까, 그렇지 않고 마려우면 그냥 뛰어 들어갑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똥 버리는 건 아깝지 않고 금 버리는 건 아깝거든요. 마음이 이렇게 괴상망측합니다.

내가 나를 한번 봅니다. 돈이 백만 원이 들어왔든 천 원이 있든 그것은 한 개도 없습니다. 여러분한테 한 개도 받은 예가 없고 준 예도 없습니다. 또 여러분이 나로 인해서 한 예도 없습니다. 주고받은 게 없어요. 그건 왜 그러냐? 이렇게 절이 있어도 이게 내 것만이 아니고 여러분과 동시에 나와 같이 여래의 집이기 때문에 나는 욕심 부릴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가정을 가지고 있고 자식과 아내와 남편과 다 같이 있으면서도 그것은 동시에 식구들 것이기 때문에 내 거라고만 할 수 없으니 그냥 놓고 사세요, 그냥 그대로. 만약에 이 우주 천하가 다 내 거라면 무엇 때문에 그걸 짊어지고 다닙니까? 짊어지고 안 다녀도 그냥 허허지, 늘어진 게 바로 나고 내 생명이고 내 것이고 나 아님이 없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 도리를 꼭 공부하시라고 하는 겁니다. 자기 마음을 자아내려면 자기 주인공을 믿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왜 자기를 낮게 생각을 합니까. 낮게 생각도 말고 높이 생각도 하지 마세요.

부처님의 어느 제자가 아파서 그냥 일어나지도 못하니까 부처님 뵙기를 아주 소망을 했습니다. 그렇게 소망하는 줄 알고는 부처님께서 그 아픈 사람에게 갔어요. 그 집에 가서 “좀 어떠냐?”고 하면서 들어가니까 일어나려고 하잖아요. 일어나려고 하는데 “육신은 드러누웠으나 앉았으나 일어나나 상관이 없다. 단, 네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고 그렇다면 벌써 일어나서 반길 수 있는 그 진정한 진실한 마음이 있노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절을 삼 배 했느니라” 하시거든요.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네 마음이 말입니다, 그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네 마음이 자기를 구덩이에다 넣을 수도 있고 구덩이에서 나오게 할 수도 있는 묘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론으로는 정말이지 저보다도 이 세상에 유명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로, 이론으로서 무불통지 하셔서 말을 참 잘하신다 하더라도 못하는 나만 못한 겁니다. 그 뜻을 아십시오. 열 번 백 번 만 번 말을 잘한다 해도, 또 물질적으로나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율법을 지킨다 해도 이 무의 세계의 무루법은 따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 무루법은 두루 모습은 무궁무진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행하기가 어려운 거지, 한 번 행할 때는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행할 때에 주장자를 탁, 주장자가 동그랗게 말려서 가져다니는 사이 없이 가져다닐 때 주장자가 한 번 탁 이렇게 용도에 따라서 들었다 하면, 쭉 펴지면서 요란하게 소리가 날 때에는 우주간 법계에서 그 소리를 듣고 다 같이 호응을 해 준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이 몰라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고 자유로운 법입니까. 자유롭게 사십시오.

목록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13908) 경기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Tel. 031-470-3100Fax. 031-470-3116
Copyright (c) 2021 HANMAUM SEONWON. All Rights Reserved.
"이 제작물은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