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달구지 마부의 삼합에 대해서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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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달구지 마부의 삼합에 대해서

본문

질문

『한마음 요전』에 보면 삼합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영원한 생명의 불씨와 육신과 마음’, 그리고 “내가 들어가고 나온 자리를 모르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소와 달구지, 달구지를 탄 사람의 비유와 흡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소와 달구지와 마부 삼합을 비유를 하셨습니다. 소와 달구지, 달구지와 달구지를 탄 사람, 달구지를 탄 사람과 소 이 모두를 한 생명으로 묶어 보아야 옳은 것인지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불씨는 우리 원소의 에너지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불씨는 마음을 내게 할 수 있는 활동력이 있죠.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쳐지면 불이 들어오듯이, 그렇게 불이 들어올 수 있게끔 하는 바탕이 바로 원소 자체의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를 불씨라고 합시다. 불씨가 없으면 마음을 낼 수 없고 마음을 낼 수 없다면 육체가 움죽거리지 않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삼합이 동일하게 하나가 돼서 지금 움죽거리고 말을 하고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바로 소를 타고 피리를 분다 이 소리와 똑같습니다. 지금 소를 타고 달구지를 끌고 다닙니다. 즉 말하자면 마부는 마음이요, 육신은 달구지요, 소는 자기의 주인공, 바로 자기 조상입니다. 과거에 살던 자기, 현실에 사는 자기는 달구지요, 과거에 살던 자기는 바로 소입니다. 그렇게 비유한 겁니다. 그래서 마부는 그 소를 쳐야지 달구지를 잘 끌고 가지 않느냐. 달구지에다가 모든 걸 다 실었는데 어떻게 달구지를 치느냐? 지금 기복으로 나가는 게 달구지를 치는 법이요, 바로 지금 마음법을 가르치는 게 소를 치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삼합이 같이 동일하게 움죽거리고 가는 것을 바로 주인공이라고 하는 겁니다. 주인공, ‘나’이면서도 내가 공(空)해서 쉴 사이 없이 돌아가면서 화해서 돌아간다, 이런 뜻으로써 주인공이란 얘기죠. 그러니까 소는 과거 자기, 달구지는 현실 자기, 마부는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으로써 그냥 무조건, 달구지가 깨지든지 말든지 그냥 치는 마음이냐, 잘 다스려서 잘 이끌어 가는 지혜로운 다스림이냐 이거죠. 마부는 마음이니 마음으로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달구지를 치느냐 소를 치느냐 하는 겁니다, 이 마음이 말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 그렇게 바깥으로 빌어야겠습니까? ‘네 뿌리가 네 나무를 돕지 어느 누구가 돕겠느냐.’ 하고 안으로 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바깥으로 지금 찾아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안으로 찾는 건 제 뿌리를 제가 찾는 것이요, 바깥으로 찾는 거는 남의 뿌리의 이름을 부르는 거와 똑같죠.

그러니까 안을 치느냐, 바깥을 치느냐에 달려 있죠. 바깥으로, 달구지를 치면 절대로 안 갑니다. 소가 가질 않죠. 그러니까 소를 쳐야 달구지를 끌고 가죠. 그와 같이 우리가 지금 안의 소를 쳐야 바로 소가 작용을 하고 작용을 하니까 제도가 되죠. 작용을 하니까 일체가 다 제도가 된다는 게 뭐냐 하면, 그것이 그대로 통신이 되면 어느 한 부분에만 통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안을 치면 누진으로 통신이 돼 가지고 사대로 통신이 되는데, 그게 신호입니다. 그러니까 안을 치면 바로 사대, 즉 말하자면 세계로 친다면 세계가 다 통신이 되는 거와 똑같죠. 이 몸뚱이 세포 하나하나에까지도 통신이 되니까요.

그렇게 통신이 되면 어떻고 어떤 건가를 전부 다 알게 돼요. 통신을 안 하면 모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도가 되질 않아요. 그런데 거기 통신이 돼서 다 알고 자꾸자꾸 내 마음이 둘이 아니게 돌아가다 보면 둘이 아니게 부처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제도가 돼서 ‘위로는 일체가 둘이 아닌 줄 알고, 아래로는 둘이 아닌 도리로 제도해서 자꾸 안을 치면 그 소가 달구지를 끌고 작용을 한다. 그래서 제도가 된다.’ 그래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니라. 위로는 부처를 모시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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