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법귀일 일귀하처?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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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 일귀하처?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책을 통해서 진리를 구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밝힌 뒤에 책을 봐야 글자에 놀아나지 않고 진실을 알 수 있다고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또한 그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내 안에서 올라오는 의문이 있으면 되놓고 합니다만, 우연히 들렀던 법당에서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자꾸 의문이 생겨 질문을 올립니다. 그 하나는 바로 저의 근본을 뜻하는 걸로 생각이 들지만 그 하나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래요. 우리 공부하는 거는 딱 한 구녘으로 들어가서 둘 아니게 돼야 됩니다. 한 구녘이라야만이 진정코 믿고, 오직 우리가 살아나가는 거 일거수일투족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그놈한테, 거기에 다 있어요. 그리고 원력도 오직 한군데밖에는 없다 이겁니다.

일체 모든 흙이든지 물이든지 구름이든지 허공이든지 모두가 일체 살아나가는 게, 하다못해 꽃 한 송이도 거기서 나오지 딴 데서 나오는 게 없다. 한군데서 나오지. 그래서 지금 물은 것처럼 ‘세상은 하나로 돌아갑니다’ 하고 제자가 대답을 했더니 은사 스님이 그렇게 묻더라는 겁니다. 그 하나는 어딨는고 하고 말입니다. ‘이 세상의 진리는 어떠한고.’ 하고 물으니 ‘하나로 돌아갑니다’ 하니까 ‘그 하나는 어딨는고.’ 하고 물었던 거죠. 모든 게 하나 아닌 하나예요. 이 모습도 숫자가 뭐 얼기설기 수많죠. 생명들이 얼마나 많아요? 몸 하나를 본다 하더라도. 사실 몸뚱일 보면 깨끗한 게 하나도 없고 또 더러운 것도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생명, 아주 고귀한 생명은 하나밖에 없어요. 여럿이 그렇게 견뎌도 공생입니다. 모두가 같이 살고 있단 말입니다. 근데 공생이라구요. 따로 떨어져서 공생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 주장자에 모두가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주장자를 놓고, 대나무 한 주장자를 놓고선 빈 속, 대나무가 속이 비어 있죠? 오직 속 빈 그릇으로 그냥 모든 것을 다 넣어라. 넣으면 나오는 것도 그 자리요 들어가는 것도 그 자리다. 그것이 죽비 가운데를 피리로 표현할 수도 있고 바다로 표현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은 다 그런 겁니다. 그러니깐 나 하나를 배우는 데 나를 버려야 된다. 나를 버려야 된다 하는 건 믿음이 이걸 내면에, 이거를 만약에 대 주장자라고 하고 이걸 믿었다면 오직 여기 하나밖엔 없는 겁니다.

지금 시대도 그렇고 우리가 앞으로 큰 나무가 돼서 열매를 맺고 열매를 열리게 하고 누구든지 그 열매를 제 나무에서 익어서 먹일 수 있고 이렇게 된다면, 그건 아주 큰 나무도 무지하게 큰 나무인데 그거를 아예 요만하게 좁쌀 알갱이처럼 해서 우주를 담을 수도 있다 이겁니다. 이게 생각하면 엄청난 문제지만 주인이, 우주의 주인이 누구냐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깐 그 배우는 과정에 오직 너 하나가 있다면 너 하나는 너 하나에다 넣어라. 꺼내는 것도 너 하나에서 꺼내라 이겁니다.

그러게 양 무제가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그러니까 달마 대사를 미워서 죽였는데, 죽여서 묻었는데 신발 한 짝은 무덤 속에 놓고 신발 한 짝은 들고 다시 나온 거예요. 그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그러니깐 아무리 내가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그 그릇을 얘기하는데 꼭 그릇 속에다가 그걸, 그 말을 믿고 해라 이겁니다.

그런데, 스님의 말을 들으려면 책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래야 하지 않느냐 하는데 그게 아니죠. 아주 옛날에 선지식들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책을 보되 네가 책을 보지 말고 책이 너를 보지 않아야 된다.” 그러니까 보는 사이 없이 봐야지 내가 책을 본다고 그러고 안다 그러고 보지 마라 이 소리죠. 오직 거기서 보게, 너를 형성시켰으니까 보는 거지 네가 보는 게 아니지 않으냐 이겁니다. 모든 게 다 자기가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내가 이런 말을 별말 아닌 거같이 이렇게 해도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진정코 믿고 해야 할 것은 자기만이 자기를 믿을 수가 있는 거지, 누가 대신 믿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천 일을 서산 대사가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를 한 게 아니라 오직 놓고 그 하나를 믿기 위해서, 믿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러니깐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니까, 과거의 너와 현재의 너가 둘이 아니니까 하고 한데 합쳐 주는 소리가 그렇게 컸단 얘기죠. 그래 우리가, 내가 아주 잘났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못났다고도 생각하지 말고 항상 고개를 들지 말라. 고개를 들지 말고 오직 하나만이, 그 하나가 커지는 사이 없이 커져야 줄이는 사이 없이 줄어지고 마음대로 자유자재할 수가 있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만나는 소리가 견성의 소리요, 만나서 배우는 그것이, 그냥 없는 색경이 거기서 절로 나와서 둥글게 에너지가 주장자가 돼서 딱 나온다면 성불입니다. 누가 갖다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공부해서 내 자리를 내가 찾고 내면 자리를 정말 큰 공치기 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놓고 공을 칠 수 있어야 되는 거다 이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선지식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쳤다는 소리를 한번 안 들으면 정말 크게 깨칠 수가 없다고. 그렇다고 그냥 미친 사람처럼 못나게 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 안에서 하나를 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하는 거고, 하나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거기서 하는 거고, 누가 하는 놈이 없이 그놈이 다 형성시켰으니깐 그놈이 하는 거 아닙니까.

평상시에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것도 그놈이 다 움죽거리게 에너지를 주니까 이렇게 하는 거지, 자동적으로 나오니까 사는 거지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거를 공부하게 되면 그 에너지가 어떻게 돼서 끊어지고 어떻게 돼서 이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고 다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깐 오직 자기 아닌 자기 한 구녘에 넣고 꺼내는 겁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보되 보지 마라 이런 소리죠. 책을 보되 보지 마라. 그래서 이전에 금강경이고 뭐고 다 집어 팽개치고 태워 버리고 한소식을 얻었다 이렇게 말을 하잖아요? 근데 그거를 태워 버린 게 아닙니다. 마음으로써 모든 거를 집어넣었으니 없는 거죠. 한번 봐서 집어넣어 버리니깐 본 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한 것도 없고 본 것도 없고, 그러면서도 상식적으로 우리가 모두 방편으로 배울 거는 배우고 나가면서도 배운 사이가 없고 한 사이가 없고 했다는 말이 없다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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