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을 깨뜨리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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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을 깨뜨리려면…

본문

질문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입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의미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트리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 마음공부의 측면에서 일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마음법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것이 사상을 깨어 버리고 우리가 본 근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일체가 들어가면 모든 것을 베풀 수 있는 둘 아닌 도리를 배우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거지. 사상이라는 그 자체가 ‘내가 있다, 내가 한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일을 이렇게 하고 간다.’ 이런 거니까. 또는 ‘내가 중생이다. 내 나이가 이러니까 이만큼 하면 수자의 근본이 이렇다.’ 하고 나를 세우는 그 자체가 사상(四相)이지.

그럼 그 사상 속에 다 들어 있단 말이야. 아만이나 아상이나 남을 업신여겨 보는 거나 내가 제일이라고 하는 거나, 하여튼 모든 것을 얕게 보지도 말고 높이 보지도 말고, 부처님을 볼 때도 높이 보지도 말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더라도 얕게 보지도 말고 자기와 같이만 봐라 이거야. 자기 모습같이 생각하고, 자기 아픔같이 생각하고, 자기 생명같이 생각하고, 자기 살아나가는 데 어려운 것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둘 아니게 이렇게 하면서 질서정연하게, 아래는 아랫사람의 도리를 해야 하고 위는 윗사람의 도리를 해야 하고 이렇게 서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거지. 근본 뜻은 평등공법으로서 나가되 질서를 정연하게 지키고 나가는 것이야. 이렇게 평등공법이 아니라면 질서를 지킬 수가 없고 계율을 지킬 수가 없어. 계율을 하나도 지킬 수가 없다구. 계율을 지킨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잘못된 게 있으면 화를 내고 악을 쓰고 이럴 수도 있지. 그러나 그것이 순간에 불뚝 나오는 거지 자기가 그러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래서 그것이 바로 구업이 되고 그것이 바로 업이 되는 거야. 천연적으로 사상을 다 깨뜨려 버렸다면, 관해서 거기다 놓고 다 평등하게 됐다면 스스로서 그렇게 돼, 스스로서. 스스로서 어떤 걸 보든지 나같이 볼 수 있어. 하다못해 꽃 한 송이를 봐도 나같이 볼 수가 있어. 내 설움같이 볼 수 있고, 내 아픔같이 볼 수 있고, 내 어려움같이 볼 수 있고, 못난 나같이 볼 수 있고, 잘난 나같이 볼 수 있고, 모두 둘 아니게 말이야. 이런 게 중요하지. 책을 위로 꿰고 바로 꿴다고 그래서, 그것이 질서정연한 게 아니야. 율법이 옳고 그르고 한다면 이건 벌써 선(禪)에는 그릇된 거라 이 소리야. 옳고 그른 게 없어야 돼.

그래서 그것을 옳고 그른 게 없이 해라 이러기 이전에 사상을 깨트려 버려라 이거야. 일거수일투족 다 거기다 놓고 가면 다 그냥 계율을 지킬 수 있다 이거야. 함이 없이 하니까. 이 세상에 내가 하는 게 하나나 있나 보라구. 자연의 진리를 가만히 습득해서 봐. 처음에는 육안으로 보다가 차차차차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깐 심안으로 들어가게 돼. 또 더 차차 하다 보니깐 혜안으로 들어. 혜안으로 들다 보니깐 전체 평등공법으로서 불안으로 들게 돼 있어. 사람이 마음을 맘대로 쓰라고 허용한 것이 마음이야. 마음을 맘대로 쓰라고 허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맘대로 쓰지를 못하는 거지.

우리가 지금 각처각급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모두가 뿔뿔이 마음이 흩어지니까 무엇을 하나 구성하지 못해. 그게 무슨 까닭이냐. 자기 마음과 자기가 통하질 못하기 때문이라고. 자기 몸이 집이라면 바로 자기 집 속에 주인이 없기 때문이야. 그러니 주인 없는 집은 유전성 영계성 세균성 업보성 인과성, 이 자체가 그냥 순간순간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거지, 빈집이니까. 들어왔다 나갔다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지, 내 집이? 내 몸이 어떻게 되겠어? 주인 없는 집이니까 보이지 않는 데서 들어오는 것 보이지 않는 데서 대치를 해야 하는데 대치를 할 수가 없거든. 집이 비었으니깐 말이야. 그러니깐 공부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네 나무는 너부터 알아라. 네 뿌리부터 믿고 알아라.’ 이거야. 잘났든 못났든 이 세상에 내가 이렇게 나왔으니깐 상대가 있고 세상이 있고 진리가 있고 부처도 있고 깨달음도 있고 깨닫지 못함도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나부터 상봉해야 된다. 왜냐? 몸속에 있는 생명의 의식들도 다 한마음으로 조절을 해야 되기 때문이지. 한마음으로 조절을 안 하면, 얼른 쉽게 말해서 부처님의 마음속에서 보살들이 전부 탄생이 돼서 이 이름 저 이름 천차만별로 보살의 이름을 지어서 응신으로서 모든 중생, 일체 만물만생, 천차만별의 중생들에게 다 베풀고 나가는데 내가 나하고 상봉을 못한다면, 또 상봉을 해서 의식들이 다 한마음이 돼서 한생각만, 그냥 생각이 아니야. 한생각 한다면 그냥 모두 어디든지 길 없는 길을 가고 그냥 함이 없이 거침없이 하는 거야. 그것이 부처님의 도리고 보살의 행이야.

부처님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부처님만 부처님의 마음을 보살의 이름을 지어서 내놓는 게 아니야. 우리들도 부처님과 똑같애. 둘이 아니야. 부처님의 몸도 둘이 아니요, 부처님의 마음도 둘이 아니요, 생명도 둘이 아니요. 그 반면에 저 미생물, 물에서 노는 고기, 들에서 노는 짐승, 허공에 날라 다니는 새, 질척한 데서 사는 생명들 이런 것도 둘이 아니란 얘기야, 그 도리를 알면. 그렇기 때문에 지렁이 하나도 스스로서 자기가 살면서 진화를 하게 돼 있어. 모든 게 다 진화를 하고 형성되고 진화하고 이렇게 내려오면서 뜻을 자꾸자꾸 일깨워 자기를 자기가 알게 되는 거지. 그러니깐 모두 어느 거 하나 없이 다 건질 수 있는 게 바로 이 공부요 깨우침이야.

나는 부지런히 깨우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어. 부지런히 내가 빨리 해야겠다 하면은 빨리 하겠다는 대로 가슴이 답답하게 돼 있어. 또 느긋하면 느긋한 대로 게으른 생각이 들어가서 답답하구. 그러니까 양면을 다 놓으란 말이야. 그대로 물 흐르는 거와 같이 우리도 그렇게 살란 얘기지. 어느 게 들어온들, 어느 게 들어와도 물러서지 말구. ‘아이구! 이렇게 더러운 게 들어와서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도 하지 말구. 흙물이든 고름물이든 핏물이든 오물이든 모든 걸 들어오는 대로 그냥 집어삼킬 수 있다면, 그냥 바다와 같이 집어삼켜라 이거야. 그러면 편안해. 악도 집어삼키고 선도 집어삼킨다면 그렇게 자유스러울 수가 없어. 그 가운데 자유가 있다 이런 말이야. 그러니까 사상이다 뭐다 하기 이전에 안에서 일어나는 거든 밖에서 들어오는 거든 일체를 나온 자리에다 다시 돌려넣는 작업부터 해 봐. 그러면 하나하나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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