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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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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이 길밖에 없는 것인지

본문

질문

속히 자유스러워지고 싶고 저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싶은 마음은 절절한데 잡을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 이 공부가 무척 어렵습니다. 스님, 마음의 길을 배우고 닦는 것밖에 저희가 벗어날 방법이 진정 없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왜 이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지 수차 얘기를 했습니다. 기복적으로 수십 년간 공부한 분들도 있고, 경학(經學)으로써 수십 년간 공부한 분들도 있고 그렇겠지만, 마음공부는 글자나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이게 옳고 이게 그르다고 이렇게 분별심을 낸다면 벌써 한 찰나의 살림살이를 생각해 보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이 마음공부를 꼭 해야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고집멸도 사제법을 말씀하셨어요. 사람의 이 몸도 공했다고 하셨는데, 고(苦) 하나만 있겠습니까? ‘고도 공하고 몸도 공하고 물질이 다 공했으니’ 할 때는 고(苦) 하나만 없앤다면 집(集)도 없고, 멸(滅)도 없고, 도(道)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 몸속에 수십억 마리가 세포를 통해서 지금 보이지 않게 나고 들고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인연들을 뭐라고 부르느냐 하면 중생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은 부처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근본이 있기 때문에 인과가 됐고, 인과가 있기 때문에 부처가 되는 겁니다. 처음 인과에 의해서 하나하나 찰나찰나, 자기가 만약에 살생을 했다 한다면 살생을 한 대가로서 인연이 된 인과, 수없는 나날을 미생물에서부터 거쳐 왔으면…. 생각해 보시면 아시겠죠? 사생의 그 길을 다 거쳤다는 것을요. 사생이란 뭘 뜻하느냐 하면 화해서 낳는 것, 질척한 데서 낳는 것, 알로 낳는 것, 태로 낳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헤아릴 수 없는 그 생명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밑에서부터 거쳐 올라올 때 얼마나 죄를 지었겠습니까? ‘안 지었다, 지었다’ 이런 말 할 게 없이 얼마나 쫓고 쫓기면서 인과의 유전과 또는 인연에 따라서 한데 모였겠습니까.

현실의 몸속에서 때에 따라서 화기가 치미는 거는 바로 화탕지옥입니다. 왜 화탕지옥이라고 했느냐 하면, 인연에 따라서 그 인연이 돌면, 그 때가 되면 바로 속이 불타게 만들고, 가환이 있게 만들고, 말다툼이 생기게 하고 이렇게 부자연하게 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가환, 질병, 우환, 가난, 내 몸속에 모든 괴로움이라는 것이 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고통을 주니 거기에 속지 말라 이런 겁니다. 왜? 만약에 팔랑개비가 돌아갈 때 대를 잡고 있으면 되지 팔랑개비 돌아가는 데에 거기에 자꾸 말리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거기에 속지 말라고 하는 것이죠. 색색가지 차원대로 인연에 따라서 닥쳐오는 액운, 고통인데 왜 거기에서 자꾸 끄달리고 받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그걸 다가오는 대로 나온 자리에 다시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몸뚱이 속에 그 중생들이 전부 하나하나 나오면서 여러분을 괴롭힙니다. 그런데 왜 거기에 속고 거기에 만날 얽매이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깐 윤회에 끄달리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깨닫는다면 윤회라는 언어도 붙지 않는데 말입니다. 또는 여러분이 깨달으면 부처고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니 이게 엄청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은어가 알 낳는 거 보셨죠? 수십억 마리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것처럼, 보이지 않는 데서 한생각이 잘 돌아가면 보살로 화하게 만들고, 털구멍을 통해서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이 나고 들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여러분이 생각을 잘못해서 바깥으로 끄달린다면 하나하나가 전부 악으로서 수없이 털구멍을 드나들면서 바깥 경계 안 경계에 끄달리게 하니 어떻게 부처라고 할 수 있으며, 부처라고 하기 이전에 인간 자체 고등 동물이라고 어떻게 할 수 있으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장부라고 할 수 있느냔 얘깁니다. 그 깊은 뜻을 만약에, 한마음을 잘못 쓰면 영령들이 수십 개가 악으로다가 나가고, 마음 하나 잘 쓰면 보살이 수십억 개로다가 나고 듭니다.

그래서 들이고 내는 거 당신이, 또는 죽이고 살리는 것도 당신이 하는 거라고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미생물에서부터 거쳐서 오면서 형성시켰고 수없이 거듭거듭 해 왔는데 자기 주인공을 모른다면 어떡합니까? 그걸 믿지 않는다면 어떡합니까? 왜 그렇게 믿어지지 않습니까? 자기가 있음으로써 자기를 알아야 하고, 자기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상대를 알고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주 천하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없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이론으로만 끄달립니다. 누가 그런 거 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돈에 끄달리고 물질에 끄달리고 권세에 끄달린단 말입니다. 바깥의 경계에 끄달려서 헤매고 도니까 이익이 갈 게 뭐 있습니까?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진실하게 갖고 거기다 놓고, 수없이 경계가 안에서 나오더라도, 바깥에서 오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다그쳐 나가고 관한다면 얼마나 이익이 오는 줄 아십니까? 한 번 놓는 데 보살 하나를 화신으로서 만드는 겁니다. 진실히 믿고 한 번 내려놓는 데 화신이 된다면 그 화신은 보신도 될 수 있고, 관세음도 될 수 있고, 지장도 될 수 있고 그 어떤 것이 다 될 수 있는 겁니다. 한생각에 만법이 들고 한생각에 만법이 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심혈을 기울이고 숭상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시고, 저녁에 단 10분 동안이라도 관하고 좀 조용히 앉아서 모든 걸 마음에다 둥글려서‘주인공! 모든 일체를 들이고 내는 것은 당신에게 달렸소.’ 하고서 관해 보세요. 또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거나 오해가 생기거나, 식구들한테나 주위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문제가 생기걸랑 ‘주인공, 저 사람을 통해서 나를 둥글리고 다지게 해 주느라고 이러는구나. 참 저 사람이 감사하구나.’ 이렇게 돌려놓으세요. 증오하기보다 미워하기보다 감사하게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그 사람이 미워하기 이전에 벌써 금방 달라져 가지곤 이익을 주는 이치가 생기죠. 그러니 그렇게 한다면 미워할 사람도 없고, 증오할 것도 없고 앞뒤가 다 끊어져서 지금 현실도 그렇게 고정됨이 없기 때문에 공해서 돌아가니, 무엇을 할 때에 ‘나’라고 할 수 없으니 ‘무(無)’ 했던 겁니다. 그러니 앞뒤도 없고 현실도 무입니다. 시공이 없이 돌아가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 도리를 진짜로 배워서, 아니 배워서 될 일이 아니죠. 다가오는 대로 한 번 한 번 체험을 해 가면서 자꾸자꾸 용광로에다 모든 걸 넣고 가다 보면 헌쇠는 녹고 새 쇠로 재생이 돼서 나오니 또 다른 물건으로 재생된 새 이름을 갖고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생명들을, 중생들을 전부 보살로 화하게 만들어서 털구멍을 통해서 들고 나면서 상대를 전부 이익하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더불어 벗어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해 나가야만이 모두가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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