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된 것이 지워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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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공부를 해 나가다 보면 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그러할 때면 그것도 내 속에서 나온 습인 줄 알고 다시 놓아 버립니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격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자신도 모르게 저 잘난 소리를 마구 늘어놓다가 한순간에 나도 모르게 아이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늘 되입력 하는 도리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만 이렇게 먼저 입력된 것이 잘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습이 워낙 두터운 까닭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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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그건 입력이 안 됐기 때문에 되나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입니다, 자기한테 자기가 자꾸 따지는 버릇을 갖는다면 그게 습입니다. 자기한테만 따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한테도 따지죠, 일일이.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몸속에 자기가 다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몸속에 전부 들어 있습니다. 들어 있는데 거기서 솔솔, 그저 이때 한 거는 이때 나오고 저때 한 거는 저때 나오고, 그냥 입력된 대로 순서대로 착착 나옵니다.
이거 거짓말 아닙니다. 착착 나오는데 그 나오는 의식들이 수가 없습니다. 그 의식들이 입력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게 자꾸자꾸 거기서 나오는 대로 나오는 그것만 알지, 그것이 잘되고 잘못되는 거를 모르는 중생들입니다, 이게 업식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대로, 그놈도 거기서 나온 거, 그놈도 거기서 나온 거, 그놈도 거기서 나온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 어느 수좌가 동짓날 팥죽을 큰 솥에다 쑤는데 팥죽이 부글부글 끓어서 팥죽 방울이 수없이 나오거든요. 수없이 나오니까 퍼뜩 생각을 한 겁니다. ‘아, 우리 몸뚱이 속에 있는 팥죽 방울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그러니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되겠구나. 방울대로 따로따로 있는 줄 알고 했는데 아이구, 한 팥죽 솥에서 나오는구나!’ 하고요. 이제 아시겠죠? 한 팥죽 솥에서 방울이 나오는 거지 따로따로이 방울이 나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요것도 문수, 요것도 문수!’ 자기 법이란 얘기죠. 법신! ‘요것도 법신, 요것도 법신!’ 하고는 주걱으로 때렸단 말입니다. ‘이것도 문수! 저것도 문수!’ 하고 그저 때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스스로 익는다면 벌써 팥죽은 다 익었으니까, 열기가 더 오르지도 않고 더 내리지도 않고 아주 평상시처럼 따뜻하게만 하고 가거든요. 그러니까 팥죽 방울이 올라오지 않죠. 모두가 하나가 돼 버렸으니까, 그냥 모두가 팥죽이 돼 버렸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듯이 모든 것을, 거기서 어떠한 뿔따구가 나오든지, 또 자기에게 누가 되게끔 생각이 나오든지, 또 집안 식구들한테 짜증이 나든지, 또 자식이 잘못해서 속이 상하든지, 모든 것을 거기다가 그냥 ‘그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 그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 자식의 일이든지 뭐든지 다 거기다가 맡겨 놓으셔야 됩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나오는 걸 거기다가 맡겨 놓을 때, 동시에 ‘흥, 이렇게 나오는 거라면 돌아서 잘 나오게도 할 수 있잖아!’ 하는 생각이 아주 필연적으로 따라다니지 않습니까. ‘안되는 일도 거기서 나오는 거라면 되게 할 수 있는 일도 거기서 나올 수 있잖아!’ 하고 돌려놓는 겁니다.
속에서 이렇게 뿔따구가 날 때 아니, 불이 일어나게끔 나올 때 불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도 바로 거기 아닌가. 이럴 때는 아주 선선하게 이 마음이 곧바로 화해 가지고는 아주 좋게 나옵니다. 즐겁게 나옵니다. 웃음도 깔깔대고 웃다가 ‘아이고, 이거 안됐잖아?’ 하는 생각을 하면 웃음이 뚝 멎죠? 그렇게만 하신다면 모든 게 아주 더함도 덜함도 없는 잘 익은 팥죽이 돼서 맛있게 맛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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