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없는 봄의 마음이 되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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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없는 봄의 마음이 되려면

본문

질문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마음은 나와 상대를 나누고 내 탓과 남의 탓을 끊임없이 해 가면서 나라는 관념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가 위험하다는 내용을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자주 보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제 안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감정의 용솟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스님, 제 안에 용솟음치는 의식들을 조복 받아 사계절 없는 봄의 마음을 한결같이 지닐 수 있도록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날씨가 따뜻해져 봄이 온 것을 보니 우리는 보이는 봄만이 아니라 안 보이는 마음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칩이 되면 개구리 입이 떨어진다는데 여러분도 마음의 봄이 와야 입도 떨어지고 귀도 떨어지고 눈도 뜨이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 마음의 도리라는 것이 천차만별의 이치를 다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보배인 것입니다.

내가 때로는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요만한 그릇을 가져왔다 하면 나도 요만한 그릇의 설법밖엔 못합니다. 여러분이 바다를 가져왔다면 나도 역시 바다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름도 모르고 먹어 보지도 않고 그랬는데 어떻게 그것을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곧바로 관(觀)하라는 것밖에는, 기도가 아니라 관하라는 것밖에는 말을 할 수 없겠죠, 그게 제일 시급하니까.

그래서 항상 여러분한테 말씀해 드리기를 “오신통이라는 그 자체가 바로 시쳇말로 컴퓨터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컴퓨터에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것을 다시 되입력을 한다면 앞서 입력된 게 없어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앞서의 입력이 없어지면서 거기에 새로 입력하는 대로 나오기 때문에, 그릇은 항상 차지도 않고 비지도 않습니다. 들이고 내는 그 구멍밖에는 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전에 얘기했죠? 몸속에 있는 모든 생명들과 모습, 의식들이 다 여러분의 차원에 따라서 주둔해 있다고요. 의식들이 말입니다. 유전성이나 영계성이나 세균성이나, 업보성이나 인과성이나 이 모든 인과가 다섯 가지가 주둔해 있는데, 그게 차례차례로 자기가 저질러 놓은 그때부터, 선한 일을 했으면 선하게, 악한 일을 했으면 악하게 입력된 대로 나옵니다. 조금도 에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되입력을 한다면 앞서의 입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팔자 운명이라든가 이런 것이 붙을 자리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너무도 좋은 공부여서 부처님께서 “이 마음을 너로부터 깨달아라.” 하는 그 말씀과 더불어 사대 성인들이 다 “너부터 알고 너부터 믿어서 너를 깨달으면, 내 마음과 네 마음이 둘이 아니니라. 또, 하나로 돌아가는 이 우주의 섭류도 너희들이 다 알 수 있느니라. 그래서 하나로 돌아간다는 그 자체마저도 공(空)해서 없는 줄을 알 수 있느니라. 그거를 알면 그대로 여여한 줄을 알 수 있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일거수일투족 하는 것이 생활인데, 생활 속에서 ‘나는 중생이 돼서 모자란다. 얼마나 업이 많고 죄가 많아서 이럴까.’ 하는 생각까지도 있어서는 아니 되죠. 물이 흘러갈 때에 나는 바람이 불어서 못 흘러간다, 파도가 쳐서 못 흘러간다, 구정물이 들어와서 못 흘러간다고 말합디까? 어떤 게 들어와도 대치하면서 가라앉히면서 여여하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끝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공부를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생활이 부처님의 법이자 생활이지 우리들의 생활이 없이, 못났든 잘났든 우리들이 없이 부처님 법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에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우리가 못났든지 잘났든지 내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삼세를 초월함이 있고, 우주가 있고, 천차만별의 만물이 있고, 끝없이 흘러 도는 이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가지고도 왜 내 마음대로 못 사는가. 여러분은 여러분 육통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육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바로 공기주머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에 한 치도 실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누적이 돼서, 집착에 누적되고 욕심에 누적이 되고, 바깥으로 살아나가는 것을 보고 끄달리거나 안에서 해 오던 습성이 모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한 다리로 절름발이로 걷게 되고, 애꾸눈이 되고 그러는 거죠, 다. 그래서 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신발 한 짝은 무(無)의 세계에 두고, 한 짝만 신고 나왔어요. 그 신발 한 짝을 내가 마저 신을 줄 알아야, 무의 세계와 유의 세계를 같이, 용무를 스스로 하게끔 돼 있는 것입니다. 즉, 평등공법(平等空法)을 그대로 여여하게 하시고 가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항상 말씀해 드려도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봅니다. 일거수일투족, 뿌리와 싹이 같이 붙어 있기 때문에 내가 믿느냐 안 믿느냐 이런 말도 붙지 않는다 이랬죠. 종자를 심으면 뿌리로 화(化)하고 뿌리로 화해서 싹을 형성시킵니다. 비유를 하자면 말이죠. 그래서 그 싹은 바로 제 뿌리를 믿어야 싹과 뿌리가 상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과거에 살던 나와 현재에 사는 나가 상봉을 해야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그렇듯이 지금 그 싹은 뿌리에서만이 자기를 잘살게 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의심을 갖지 말고 진짜로 믿고 들어가야 합니다. 진정코 믿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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