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와의 인연에 대해서
본문
질문
나무는 흙에 가려서 제 뿌리를 못 보지만 뿌리가 본래 있기에 제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된다고 하시는 스님의 말씀을 따라 저도 그렇게 수행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쉬우면서도 확고한 스님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 나가다가도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다거나 뚜렷한 수행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이 마음 법을 떠나서 체계를 세워 공부를 하거나 몸을 다스리는 공부를 해 나가는 도반들이 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드는 것이, 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인연은 어떤 것인지 하는 겁니다. 가르침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참, 스님네들을 이끌어 가지고 나간다는 것도 어렵고, 또 신도들을 이끌고 나간다는 것도 어렵습니다. 예전에 내가 생각한 바로 봐서는 미처 그런 것을 생각 못하고 아주, 너를 죽여야 너를 본다고 했기에 그것만 귀중하게 생각을 했더니, 오늘날에 가만히 보니까 너무도, 이거는 같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면 여러분과 같이 그것이 죽어지지 않는다는 그 점, 또는 내가 산다 죽는다도 없이 같이 돌아가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다 산다 이것도 없이 우리는 같이 돌아가면서 이렇게 여러분의 마음에 따라서 복을 짓기도 하고 공덕을 쌓기도 하고 공덕을 감하기도 하고 복을 감하기도 하는 이런 살림살이에 의해서 돌아가는 이 시점의 오늘이 바로 화엄 도리면서 그것이 평삼심이라 우리가 이렇게 어려움을 같이 하고 있는 겁니다.
한탄할 것도 없지마는 내가 어떤 때는 한탄이 되는 이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미처 몰랐던 이런 것을 새삼스럽게 더욱 더욱 느끼면서 ‘참 광대무변하구나! 우리가 자신들이 모두 살아나가면서 느끼는 이 광대무변한 법을 어찌 부처님께서 말로 다 하셨으랴!’ 아마 그 팔만대장경을 설하실 때, 그것을 다 해 놓았다고 하지마는 그것도 다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어떻게, 이 하루도 변함없이 돌아가는 이치를 어떻게 팔만대장경으로 다 썼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다 말했겠습니까? 사람이 배운 것 안 배운 것, 나는 모른다 나는 안다, ‘난 이만하면 됐어. 이게 뭐 세상 돌아가는 거라는데.’ 하고 이렇게만 알고 거기에 멈춰 버린다면 어찌 그 사사건건이 돌아가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조각해서 다 원만히 해낼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게 사람이 벌어지는 원인이, “어째서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이런 것을 다 제껴 놓고 주인공이 뭐 말라빠진 주인공이며, 또는 이 심주(心柱)가 뭐 말라빠진 거냐? 이런 걸로 성스러운 부처님의 성어를 그렇게 묵살하고, 그게 외도가 아니냐? 그리고 어떻게 해서 탱화나 다른 부처님을 다 앗아 버리고 부처님 한 분만 남겨 놓는 그런 외도의 짓을 하느냐.” 이러는 사람들도 있더랍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런데 거기에 현혹이 되어 가지고 “지금 나는 이것도 저것도 감지할 수가 없으니깐 떠나겠습니다.” 하는 거죠.
비교하자면, 옛날에 어느 선사가 수좌들을 데리고 공부를 하러 어느 산중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는데, 들어가다 보니깐 수백 명이 쫓아 올라왔답니다, 그 스님을 따라서. 참 그 스님이 존경할 분이고 각을 이룬 분이니까 내가 쫓아가야겠다 하고 쫓아 나서기는 했는데, 가자마자 여러 사람들이 모인 그 중에서 어떠한 사람을 부르더니 “얘야, 공부하는 대중들이 다 쇠약해졌어. 그러니 큰 개를 하나 그슬려서 큰 가마솥에 솥을 걸고서 푹 고아서 한 그릇씩 줘야 먹고 기운을 차려서 공부를 하지 않겠느냐.” 하고 개를 한 마리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그 대중들이, 공부하러 올라왔던 스님들이 수근수근 수군수군, 여기서 수근 저기서 수군거리니 ‘저렇게 하는 중이 저게 중이냐’ 하면서, 저건 외도라고 하면서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 대여섯 명만 남으니깐 서로 쳐다보고 껄껄 웃으면서 ‘추풍에 낙엽 떨어지듯 했구나.’ 하면서 그저 같이들 그분네들끼리만 공부를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진짜 여러분도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거, 그 태어난 자체가 화두며 그 태어난 자체가 원인이 되고 그 원인으로 하여금 부처가 있다는 것을 참 그렇게 지켜볼 수 있다면…. 나물을 먹든지 밥을 먹든지 우거지 죽을 먹든지 물 마시고 편안하게 눕고 편안하게 똥 누고, 이렇게 편안하다면 바로 이만하면 만족한 것을 가지고 수차에 걸리면서 돌아치는 그 원망증으로, 또는 누구로 인해서 나는 공부를 못했고 누구로 인해서 살지 못했고 누구로 인해서 떨어졌고 누구로 인해서 망했고, 누구로 인해서 내가 돈을 잃었고,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공해서 돌아가는 그 길을 같이 걷지 못하고 그냥 중간에 가다가 그 길에 멈춰지고 떨어지고 좌천되고 올라가고, 그건 한계의 폭을 넓히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고 올라가고 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는 거죠.
큰 나무는 이파리가 하나 떨어졌다고 해서 떨어진 체도 없고 떨어진 사이도 없이 생각하고, 가지가 하나 부러졌다고 해서 뿌리가 들썩거릴 리는 없습니다. 그 가지는, 그 나무의 가지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만의 그 가지가 아니라 전체적인 가지니까요. 그리고 전체적인 이파리고요. 그래서 이파리가 없어도 아니 되고 꽃이 없어도 아니 되고 열매가 없어도 아니 되나 그런 문제 또한 역시 그것은 나무의 뿌리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라는 것은, 전체의 우주를 싼 뿌리는 아마도 우리가 다 멸망한다 할지라도 그 뿌리는 멸망치 않을 겁니다. 불법이 쇠퇴해지고 불법이 망가진다고 이렇게 말들 하지만 우리가 한 생명이라도, 무생이라도 있다 하면 바로 유생이 될 것이고 유생이 있다 하면 부처님이 나툰다고 하실 것입니다.
본래부터 부처님이 생긴 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생기고부터 부처님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부처님 자리가 따로 있고 우리들의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의 저 언덕이 따로 있고 살아 있는 이 언덕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모르니까 비교해서 언덕이 있다고 ‘언덕을 넘어서라, 넘어서라.’ 피안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피안의 길로 이끌어 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체가 없는 마음의 길이라는 것이 너무나 엄청나게 차이점이 있으니까 그 차이로 말미암아 언덕을 비유해서 만들어 놓은 것뿐이라는 것을 여러분과 더불어 알아갔으면 합니다
- 이전글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21.10.25
- 다음글어떤 것이 빠른 방법인지요? 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