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길이 너무 멀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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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수행자라면 누구나 부처가 되기를 소망하고 부처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과 모습과는 너무나 멀고 보잘것없는 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처님의 세계란 중생은 어쩌면 도달하지 못할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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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부처님의 그 몸체와 우리의 중생의 몸체가 다르다 할지언정 어찌 다르겠습니까? 눈도 같고 귀도 같고 코도 같고 몸체도 같고 발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딛는 사람의 발, ‘요건 원망스러우니까 내가 쫓아낸다. 요거는 잘해 주었으니까 내 고맙다고 쫓아간다.’ 이렇게 갈라서, 조각조각 갈라서 걸음 걷는 중생들의 마음과 그 발과, 옳다 그르다 하기 이전에 아주 평상심으로써 걷는, 부처님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 자비심에서 걷는 발과는 뜻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지 생김생김이 차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부처님이 계신 데 중생이 있고 중생 있는 데 부처님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내가 지금 생각하면 여러분이 한 개별적인 몸이라고 생각할 때 바로 그 마음이 부처니, 바로 그 육신은 중생이니 중생 있는 데 부처가 있고 부처 있는 데 중생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마음이 부처라면 그 육신은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자기 부처가 자기 중생을 그렇게 헐뜯고 나쁘게, 자기 마음을 나쁘게 둔다면 자기 육신의 중생도 그렇게 나쁘게 돌아가니 어찌 고생을 시키지 않는 겁니까, 그게. 그러니 중생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바에야 딴 사람의 이익도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딴 사람의 중생들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마음으로 남을 원망치 않고, 또 조상을 원망을 안 하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걸로 전체 일체를 돌린다면 아마도 그것은 견성하고 성불하기는 아주 십중팔구 좋은 일이지요.
부처님의 경을 위로 꿰고 아래로 꿰고 옆으로 꿴다 할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그렇게 쓰지 못한다면, 그 팔만대장경을 위로 꿰고 바로 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소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때는 저한테 사람들이 이렇게 자꾸 얘기합니다. “어떻게 빌어야 됩니까? 어떻게 기도를 해야 됩니까? 뭘 어떻게 해야만 되는 겁니까?” 이것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기가 살고 자기가 생활을 지금 하면서도 그 생활 속에서 외롭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이러는데, 그 문제점을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봅니까?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을. 그래서 자기가 있기 때문에 부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가 있는 데 부처님은 그 속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으로서 자기 마음 내기 이전 본래면목에, 그 실상에게 자기는 ‘이렇게 내가 지금 고통스러운 것도 당신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니까 당신에게 일임합니다.’ 하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당신이 형성시켜서 이렇게 좋은 일이 있으니 참 고맙습니다.’ 하고 놔 버리는 그런 자세. 꺼내 쓰고 부어도 부운 사이 없고 꺼내도 꺼낸 사이가 없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부처로 알고 항상 그렇게 지켜볼 수 있는, 일일이 일체 만법을 지켜볼 수 있게 모두를 규합해서 해 나간다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가고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울던 것도 웃게 되고 만약에 운다 할지라도 그건 값비싼 눈물이 될 것이고 값비싼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즐거움도 거기서 아마 샘솟듯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 불당에 가면 아무것도 놓지 말아야 된다 이런 게 아닙니다. 왜냐. 그것도 바로 자기가 거기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가 부처님 아니라 더한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서 참, 어떻게 ‘내 집도 여래의 집이요, 이 도량의 이 부처님 자리도 바로 여래의 집이니 이 집을 운영하려면 내가 해야 할 테니까, 그저 초하루 보름 내가 다만 얼마라도 단돈 만원이라도 올려야겠다. 이게 바로 남의 집이 아니라 바로 내 부처님의 집이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바로 이것이 법당입니다. 또 자기네 집도 법당인 것입니다. 어디든 법당 아닌 데가 하나도 없고 부처 아닌 게 하나도 없으니 ‘이건 부처가 아니고 이건 등상이야.’ 이렇게 등상불로 따져서도 아니 됩니다. 그 역시도 또한 나의 몸과 똑같은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주를 싸고 있는 부처님의 마음이 거기 서리고 있는 이상 어찌 그것을 무시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불당에 들어가면 불당에 들어가는 대로 마음이 엄숙해야 하고, 내가 혼자 앉아 있다 하더라도, 변소에 가서 볼 일을 볼 때도 엄숙해야 하는 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재빨리 “하하하.” 하는 그런 마음을 갖지 말고, 좋아도 스무드 하게, 아주 언짢아도 부드럽게 지켜볼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자비이며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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