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축적하는 마음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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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겹게 벌더라도 아름답게 쓰라고 옛 조상님들께서 말씀하셨으리라 생각이 드는데,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내 멋대로 편하게 쓰자는 뜻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물질을 축적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서 일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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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옛날에도 그런 예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지방의 원님으로 갔는데 원이 너무 욕심이 많았습니다. 욕심이 많아 가지고선 그저 돈을 갖다가 항아리에다가 들이 모으고, 또 지금으로 치면 취직을 시켜 주고 돈을 받고 장리를 줘 가지고 이익금 남는 걸 또 받고 넣어서는, 하여튼 큰 항아리에다가 잔뜩 넣어 놓고선 고만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 줄도 모르게 그만 그냥 객사를 했지요.
그랬는데 그때서부터 그 마을이 도대체 밤이면 집집마다 그냥 셋이 되기도 하고 아홉이 되기도 하고 열이 되기도 하고 이러면서 소복 입은 하얀 여자도 됐다가 신장도 됐다가 또 꺼멓게 옷을 입었다가, 이러면서 집집마다 그렇게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그 동네에서 살지를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죽는 사람도 더 많았고, 또 그 동네 일판이 다 이사를 가게 됐죠. 그래 그 흉가 때문에 그렇게 나라의 원이 살던 그 고을이 그만 쑥대밭이 돼 버리고 말았죠. 그랬는데 그 나라의 고을에 자꾸 원님을 내려 보내려 해도 그런 일이 있어서 자꾸 죽어 나가니까 할 수 없이 부임을 시키질 못하고 있는 처지였죠.
그래서 풀이 산더미처럼 나고 그랬는데, 어느 때에 어느 도승이 지나다 보니까 그 마을이 쑥대밭이 됐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그 마을에 부임하는 팔대조 할아버지가 원님으로 부임을 해서 참 아주 정직하고 그랬으나 두 나전들이, 얼른 쉽게 말해서 나전들은 심부름을 하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돈을 받아먹고 자꾸 일을 거슬려 놨으니깐 그 할아버지도 모함을 받아서 고만 귀향을 가서 죽었거든요. 그 스님이 가만히 보니까 그 인연으로 자기가 거기에 당도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이치로 그 마을을 다스리지 못해서, 안팎을 다 다스리지 못한 죄상으로 자기가 팔대조의 할아버지 인연으로 여기를 왔다는 생각이 무뜩 들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인해서 거기를 왔으니까 ‘여기에서 이걸 해결을 해 줘야겠구나.’ 하고 그 중 옷을 다시 잠깐이라도 벗고선 부임을 하게끔 했습니다. 거기는 누가 간다고 하기만 하면 부임을 시키니까요, 나라에서.
그래서 간다고 해서 그 고을의 원으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섰는데 밤이면 온통 그냥 천장에서 내려오고 또 문도 열리면서 그냥 들어오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그분은 벌써 아시고선 큰 화로에다가 불을 한 화로를 해 놨답니다. 그런데 옛날 집은 벽장이 큰 게 이렇게 붙어 있는데 그 벽장문이 스르륵 열리더니만 거기에서 큰 누런 손이 나오고 검은 손이 나오고 이러거든요. 그래서 나올 적마다 거기에다가 인두를 꽂아 놓고서는 한바탕씩 이렇게 질렀답니다. 그렇게 해 놓고 가만히 근맥을 봤답니다. 근맥을 보니까 ‘아하!’ 그때 알았습니다.
왜 알았냐 하면, 이게 요기에서 들을 만한 것이 있습니다. 돈을 모을 때 악으로써 모은 것은 악의 장난을 하고, 씀씀이를 잘 쓰려고 선으로써 모은 돈은 선으로 나가게 되는 겁니다, 그런 장난이 없이. 그런데 그 마음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 돈마저도 사(邪)가 돼 가지고선 나왔던 겁니다. 그래서 그 스님께서 그것을 아시고선 이튿날 일찍 일어나서 모든 군졸들을 풀어서 거기를 파게끔 해서 그 돈을 다 파서 그 고을에 이사 나갔던 사람이 다시 들어오게 만들어 놓고, 원님을 다시 내고, 군졸들을 풀어서 풀 뽑게 하고 다 잘 고치고 짓고, 그 돈으로다가 없는 사람들 다시 집 지어 주고 그래서 고을을 다시 신축을 해 놓고선 가서 원을 벗었죠, 인제. 원님이라는 걸 벗고선 다시 그 승려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이렇게 해서 참 좋게 살게 하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돈을 모은다 하는 것도 말입니다, 재산이 있다 하는 것도 우리가 주인공에서 관리만 하면 될 걸, 주인공이 하는 거니까 내 주인 거지 나는 관리인이거든요. 그런데 관리인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된다면, 이리 찢고 저리 찢고…, 그게 사(邪)가 되는 겁니다. 내가 지금도 여러분이 땅을 사고 집이 있고 돈이 있고 그렇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사가 돼서, 그 돈이 ‘사’가 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사가 돼서 모든 게, 내가 행하는 게 모두 사로 돌아가요. 그러니 되는 노릇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마음으로 지어서 마음으로 해결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끄달리고 또는 사무치고 아프고 그렇게 만드니까 여간 사람 살기가 고통이 되는 게 아니죠.
그래서 우리는 기복을 떠나서 우리 자성을 깨치면서 ‘나도 공했는데 뭐가 있으랴. 나는 관리인일 뿐이다.’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모두가 종합해서 ‘아! 주인공이시여!’ 하면 그건 전체에 들리는 건데, 따로 나를 이렇게 찾을 게 뭐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처음에 나를 찾을 때는 꼭 ‘내 주인공!’ 하면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일체 신이 거기 주인공에 다 들어 있다는 걸 그대로 믿고 찾아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믿고 찾고, 관하고, 감사하고….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렇게 자기 은혜를 모르고 자기는 그렇게 산발하게 다니니까 모든 게 사(邪)죠. 사가 돼서 모든 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서부터 열까지, 돈이 사가 되는 것도 그런 마음의 까닭이요, 돈이 쓸모 있게 쓰여지는 것도 마음 탓이요, 내 몸이 근중하게 되는 것도 마음 탓이요, 내 몸이 걸레가 되는 것도 마음 탓이란 얘깁니다. 모든 게 다 그렇죠.
그러니 모든 일체 만법의 만물이 다 마음에서 이렇게 갈라지고 저렇게 갈라지고 그러는 거지, 악도 그 한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한마음에서 나오는 걸로 말미암아 세세생생을 끄달릴 테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거기서 나오는 한마음도 ‘자신(自神)’이 돼서 보살행을 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 나와서 행을 할 수 있죠. 그 ‘자신(自神)’은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졌답니다. 또 그 반면에 ‘자악신’은 무궁무진하게 악을 범한다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거냐 저거냐 그럴 때, 이것도 여기서 나오는 거 저것도 여기서 나오는 거니까 두 개를 다 놔야 되죠. 그래서 그 한 구멍으로, 한 구멍에서 두 개가 나왔던 것을, 두 개를 한 구멍에다 다 집어넣으면 바로 올바른 이치가 되죠. 그래서 신수는 ‘색즉색’이 됐고, 또 육조는 ‘공즉공’이 됐거든요. 그러니 어떤 것이 맞느냐는 얘깁니다. ‘공즉공’ 이렇게 한 사람이 옳으냐, ‘색즉색’ 이렇게 한 것이 옳으냐 할 때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다 놨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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