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없는 불자가 되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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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없는 불자가 되려면

본문

질문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다 보면 ‘지심정례공양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이란 대목에서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부처님의 뒤를 이어 진리의 등불을 전해 오신 조사와 종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지식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면서 공양 올립니다.’라고 읊조릴 때마다 그토록 어렵게 구한 도인데 나의 삶은 과연 어떤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스님, 정말 부처님과 제대선지식께 부끄러움 없는 불제자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이 도리가 어렵다고 하시지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24시간 살아나가면서 고정된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거 보면 저거 봐야 하고 저거 보면 이거 봐야 하고, 이거 들으면 저거 들어야 하고 이 사람 만나면 저 사람 만나야 하고, 이리 가면 저리 가야 하고, 매사 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내가 했다, 내가 살고 있고 내가 망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함이 없이 그냥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는데 어떻게 그걸 산다고 하고 했다고 하고 내가 한다고 하겠습니까? 그 도리는 정신계와 물질계가 같이 호응해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신계와 물질계가 같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 몸뚱이도 없겠죠. 우리는 지수화풍에서 나왔고, 또 지수화풍이기 때문에 지수화풍을 먹고 살아요. 먹고 살고 또 요다음에 갈 땐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니 다 갚는 거지요. 이렇게 정확해요. 하나하나 살아나가는 전부가 말입니다.

이 모습은 물질계입니다. 그리고 볼 수도 쥘 수도 말할 수도 없지만 자기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상 정신계는 자기한테 있단 얘기지요. 그거는 없다 있다를 논의할 필요도 없죠. 그냥 가지고 있으니까요. 자기가 살아 있으니까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성이라고 하죠. 불성인데 그 불성을 거꾸로 한번 말해 보세요. 성불입니다. 불성을 거꾸로 한번 말해 보시면 성불이에요. 그래서 ‘성불과 불성이 둘이 아니다. 네가 너부터 찾아라. 너부터 믿고 찾는다면 네가 이 자리에 다시 나와서 부모 자식 형제 인연을 짓고 세세생생 고생 안 하고도 훨훨 벗고 자유자재할 수 있느니라.’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응아! 하고 나오면 죽는 날까지 그 기간을 채우려고 살아나가는 겁니다. 죽으러 말입니다. 근데 산다는 것이 죽으러, 기간을 채우러 가는 것이라 한다면, 그 미리 좀 죽으면 어떻습니까? 미리 좀 죽으면, 삶이 없이 산다면, 하는 바가 없이 한다면 어느 누구한테도 고개 뻣뻣이 안 하고 눈 돌리지 않고 항상 자비하고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경에 있는 말씀만 하지 마시고 될 수 있으면 자기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코 자기가 알아야 될 문제, 그것을 아셔서 굴린다면 얼마나 이득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지원 스님이 “보꾹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봇장에 뭘 어떡해? 이 세상에 팔만대장경이 있다 할지라도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으로만 한다면 만법을 들이고 낸다 하더라도 조금도 걸림이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책이 그 다섯 마디 안에 다 들어 있어. 그러니 그렇게 조성해서 남들이 모두 단 한 줄거리라도 알게끔 해!” 그랬죠.

우리가 밤이면 자죠? 낮이면 깨서 일을 하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자면 와선이고 앉으면 좌선이고, 일을 하고 책을 보면 바로 행선이니라. 이 모두가 선 아닌 게 하나도 없으니 너희가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냥 놔라.” 하셨습니다. 그냥 놓지 못해서, 죽을 때도 이 몸을 바로 벗지 못하고 몇 해씩이나 고생을 하고 똥을 싸고 이러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설 거사 얘기 들으셨죠? “그저 난 가야겠다.” 그러면서 앉았다가 그냥 가셨죠. 그러니까 이 껍데기는, 이 모습은 집이에요. 자기 시자면서 집이라고요. 그래서 홀딱 벗어 놓고 ‘너 그동안 잘 살았어. 잘 있어. 예전에 내가 너를 형성시키고 진화시켜서 이렇게 가지고 나온 것은 시자로 쓸 양으로 가지고 나왔는데 인제 너는 다시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야 돼.’ 그러고선 딱 나왔단 말입니다. 또 딸은 딸대로 가죠. 밭에서 일을 하던 아들은 ‘아버지가 먼저 가셨다니까 안 되겠구나!’ 그러면서 급하니까 그냥 괭이 든 채로 갔단 말입니다. 부인은 김을 매다가 그냥 호미 자루 든 채로 또 갔단 말입니다. 이렇게 벗을 수가 있어야만 우리가 불제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뜻으로서의 불제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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