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한 사람이 죽는다면…
본문
질문
마음을 닦는다고는 하는데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이 다하기 전에 제 마음을 다 닦아서 근본을 밝힌다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죽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이 마음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과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하다가 간 사람과 나를 밝히고 간 사람의 차이점을 설해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다른 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얘기해 드릴까요? 우리가 꼭 이 공부는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실하게 이렇게 내 안으로, 낱낱이 안으로 굴려서 안으로 돌리는 것, 이 생활하는 모든 것, 죽고 사는 것, 생사윤회를, 모든 것을 이 내 마음 안으로 돌리는 데 그 묘미가 있는 거죠. 공부를 한 사람에 한해서 말입니다. 지금도 돌려놓으라고, 놓으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가는 사람이 죽을 때는 죽기 전에 자기 갈 자리를 자기가 다 마련해 놓고 가요. 이건 죽는 게 아니거든요. 이 공부를 하게 되면 죽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거기에 요점이 있어요. 공부를 그렇게 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몸을 벗을 때도 몸을 벗기 전에 자기가 자기를 벌써, 정자와 난자를 좇아서 자기가 어디를 선택해요. 자기가 선택해서 자기가 열 달 내내 길러요. 그래서 여기서 생명이 딱 끊어지면요, 사람으로뿐만 아니라 다른 무슨 큰 생명이 된다든가 이런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꼭 사람으로만 비유하지 마세요. 사람 이외의 정말 벗어난 선인들이 된다 하더라도, 그걸 정망해서 다 해 놓습니다. 또 사람이 된다 하면 만 아홉 달이 걸려야 되지만 만 아홉 달이라는 것은 우리 지구에서 쓰는 거지 딴 데서는 만 아홉 달이라는 게 똑같이 쓰여지질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단 순간에 우리가 생각할 때, 이 목숨이 떨어지기 전에 벌써 그쪽으로 가고 이 옷은 벗어요. 사람으로 내가 화한다 할 때는 내가 목숨이 한 찰나에 딱 떨어질 때, 벌써 그리로 가는 겁니다. 이건 벌써 미리 가 있어요. 벌써 거기 뱃속에 들어가서 아홉 달 내내 길러 가지고 나오는 거죠. 여기는 사는 그 습만 있다 뿐이지 자기가 길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선처해서 그리로 가서 자기가 벌써 자기를 기르고 있어요. 그러니 길잡이는 자기죠. 자기 이외에 길잡이가 없어요. 그걸 아셔야 돼요.
또, 공부를 안 한 사람에 한해서는 자기가 자기 개척을 못하고 자기가 길을 모르고 컴컴하고 그러니까 자기가 죽어도 누가 인도할 사람이 없단 말이에요. 그렇게 살던 자기의 그 습이 있어서 눈이 캄캄하니까요. 그래서 살던 습에 의해서 자기가 착을 두고 있는 데에 그냥 머물러 버리죠. 그래 거기서 머물러 버리니까 때에 따라서는 영계는 집에서 산 사람한테 뱅뱅뱅뱅 돌게 되고, 자식이고 부모고 뭐 누구를 막론하고 얘기예요. 죽기 전에 자기가 집안의 친척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길은 몰라도 그 길은 알거든요. 그러니까 그 습에 의해서 뱅뱅뱅뱅 돌아다니죠. 자기에게 더 잘해 준 사람 앞에, 또는 자기 친구한테. 그래서 그 친구로 인해서 남 논등에 주저앉는 법도 있죠. 저희 집 식구들이 시원치 않고 그러면 친구한테로 가거든요. 이게 문제가 참, 여기에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부를 안 하고 바깥으로만 만날 돌고 다니던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길을 자기가 인도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타의에 의해서 내가 길을 인도 받아야 할 텐데 그 은사도 똑바른 사람을 못 뒀다면 그마저도 또 없는 겁니다. 그러니 캄캄하고 그래서 결국은 이제 무슨 개집이나 새집이나 족제비 소굴이나 돼지 소굴이나 뭐 이런 데로, 소 외양간 뭐 이런 데로 그냥, 그냥 떠지는 거죠. 또 요행히, 자기가 마음이 착해서 참 요행히 걸린다면 사람이 어떤 차원을 가진 줄도 모르게 그냥 그런 데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그건 십중팔구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도리를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 열 사람이라면, 컴컴한 그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이 열 명 중에 두 명 되기가 어렵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이 공부를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인간에게도 이득이 없고 사회에도 이득이 없고 국가적으로도 이익이 없고 세계적으로도 이익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예전보다도 너무 잘 알아요, 세계를. 예전엔 그렇게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방에 앉아서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 알고 있는 자기가 벌써 계발이 된 겁니다, 본래. 예를 들어서 평상시에 ‘아이구! 난 저게 좋다, 저게 좋다.’ 이러는 건 그냥 우리가 보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잠재의식 속으로 가서 컴퓨터에, 자연 컴퓨터에 가서 저장돼 있거든요.
그러니 왜 이득이 없느냐 하면 자기가 이 도리를 모르면 그렇게 박혀 있기 때문에 자기 그 박혀 있는 대로 길이 갈 것이고, 자기가 자유권을 갖고 자유자재한다면 그대로 자기 가고 싶은 대로 미리미리 그렇게 다 해서 한 찰나에 딸칵 하면, 자기가 옷만 딸칵 벗는 거뿐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옷을 벗으려면 훌훌 그냥 벗죠. 그 순간뿐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옮겨 놓는 거뿐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공부를 못한 사람에게는 ‘길다, 짧다’ 이런 것이 있는데, 이런 공부를 한다면 ‘한 찰나다’ 이럴 때 이쪽에서의 한 찰나는, 한 찰나는 한 찰난데 이 집으로 들어가느냐 저 집으로 들어가느냐의 문제죠!
그러면 열 달이 걸리고도 한 찰나다, 일 초가 걸리고 열흘이 걸렸다 또는 아홉 달이 걸렸다 이래도, 만약에 아는 사람이 이렇게 믿고 다니던 길잡이가 있다면 벌써 그것을 알게 돼 있어요. 왜? 그 사람이 그 사람을 믿고 다녔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즉시 그것을 막아 줄 수 있는 겁니다, 즉시! 그런데 막아 줄 수도 있는가 하면 그것이 아홉 달이 됐다 하더라도 일 초로 축소한단 말입니다. 이건 체가 없는 거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눈뜬 사람 하나 만나기가 극히 어렵다 하는 거죠. 이런 사람을 하나 만나면 이익이,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이 있는 것이죠. 그래 사람 하나 만나기가 그렇게 쉽습니까, 어디? 그리고 또,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 하나 만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이 공부는 꼭 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이런 점이 있을 뿐 아니라 타의에서 구하면 절대로 그것은 세세생생에 해로운 것이 닥쳐온다는 얘깁니다. 왜냐? 그것이 습의 인과가 돼서 그게 유전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부모들 한번 잘못하는 까닭에,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하는 바람에 그만 자기가 씨를 뿌려 놓은 거까지도 그냥 몇 대조까지 내려가는 거죠, 뭐. 그러니 글쎄 얼마나 그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지금 보통 그냥 그저 기도나 하러 다니고 이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식구가 다 금이 되느냐 마느냐, 지금 아주 심각한 문제죠.
모두들 보면 ‘아이, 우린 장사를 하기 때문에 못 오고, 바빠서 못 오고….’ 이러시는데 아니, 어떤 사람은 뭐 그냥 가게 문 잠가 놓고도 왔다가 가는데 그렇게 가도 하루 종일 열어 놓고 파는 것보다 더 많이 팔았다고 합디다. 마음먹기에 달린 겁니다. 지금 제일 급한 게 뭐냐 하면 이 공부 하는 게 제일 인간으로선 급하죠. 먹고사는 문제도 그건 이차죠. 그렇다고 해서 굶고 벌지 말고 다니라는 건 아니거든요. 버는 거 벌면서도 조금만 부지런하면 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일상생활의 참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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