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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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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마음에 대해서

본문

질문

이번 8월달 선원 달력에 “지혜 있는 데 마음이 있고 마음 있는 데 지혜가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왠지 내용이 좋은 것 같아 마음으로 계속 새겨 보지만 사실 뜻으로는 정확하게 와 닿지 않습니다. 저의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스님께서 그 뜻을 좀 일러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지금 젊은 분들도 그렇거니와 애들서부터 어른까지 다 알아야 할 인생관, 인생이 어떻게 해서 자기한테 주어졌고 어떻게 조화가 돼서 돌아가는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화원의 꽃이 저렇게 한데 합쳐져서 조화가 이루어지듯이, 또는 산의 고목이나 벌레 먹은 나무들, 짧고 긴 나무들, 풀 등도 각기 모습이 다 다른 것들이 같이 모여 있기에 조화를 이룬다는 것, 산골마다 물도 좋고 돌도 있고, 그 여러 모습들이 조화된 아름다움으로 우리들 눈에 비춰진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대한 것도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둠이로 생각해서 물 위에 산이 가고, 산 위에 물이 간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지혜 있는 데 마음이 있고 마음 있는 데 지혜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곧바로 자기한테 있다는 얘깁니다. 지혜 따로 있고 마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을 때 지혜는 물로 비유했고 마음내는 이 자체는 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모습 모습이 다른 여러 종류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는 산에 비유를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살아나가는 모습들이 다르고 이름들이 다르고 또는 병든 사람 건강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키가 작은 사람 큰 사람, 모두 다 같이 사는 것처럼 산에도 그렇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와 같이 들이나 산이나 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우리 한번 그것을 생각해 봅시다. 물이라는 것은 지혜로 비유하니 우리가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또는 감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온갖 지각이 한데 합쳐진 것을 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귀로 듣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는 눈으로 보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 코로 냄새 맡는 것을 받아들이고, 혀로 맛을 아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는 부닥치는 것을 받아들여서 그 모두를 지혜롭게 돌린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로 들어서 화가 불끈 나는 것도 있지만 아주 감미롭고 친근하고, 어떤 땐 웃음이 날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어떤 때는 상을 찌푸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이랬을 때에 그 듣는 순간에 마음이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지혜는 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것은 여러 가지로 듣기 때문에 산으로도 비유한 겁니다.
 
듣는 것만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도 역시 아름답게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아주 속상할 때가 있고, 여러 가지 가지 아니겠습니까? 냄새를 맡아서 구린내가 나는 것도 있고 향기로운 냄새도 있는 것입니다. 또 맛을 봐서 아주 맛이 없는 것을 느끼고 맛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또는 우리가 손으로 쥐어서 촉감이 좋은 것이 있고 아주 거친 게 있습니다. 그런 걸 알게 하는 그 자기의 모든, 한데 합쳐진 지혜라고 할까요? 달라지는 이 마음 자체가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혜 있는 데 마음이 있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청각이 뚜렷하고 시각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모든 게 융합돼서 돌아가는 것을 발현하고 서로 상응하게 하는 그 자체의 지혜가 넓어야 된다는 얘기죠. 바다와 같아야 된다, 좁아서는 허공에 바늘구멍도 안 들어간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우리가 귀로 듣고 혀로 맛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하는 것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것은, 중생들은 보고 듣고 생각 일어나는 것, 모두가 자기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중생이요, 부처님의 뜻은 자기가 고정돼 있지 않으니까 마음조차도 배꼽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처음 명상을 할 때 배꼽 밑에다 중심을 두라고 하지만 그 배꼽까지도 송두리째 빠졌다 이 소립니다. 송두리째 빠지니까 나라고 내세울 게 없는 것이 공한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고정되게 돌아가지 않고 공했으니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전부 공했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착(着)을 두지 말고 그냥 무심, 무심으로 해라 했던 겁니다. 좀 이해가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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