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에서는 나쁜 생각도 법이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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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행 스님 법어집 가운데 〈자유인의 길〉이란 책에 보면 “만법이 그 한자리에 출현하였으므로 그 자리로 돌아가서 한생각을 내면 그대로 법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일체 법의 근본 자리에서 일으킨 생각이기 때문입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 자리로 돌아가서 나쁜 생각을 내면 그것이 그대로 법이 될까 봐서 공부하기가 두렵습니다. 나쁜 생각을 낼 경우에도 그대로 법이 되어 버리는지요? 이 경우 사회에 악이 될 텐데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네. 바로 나쁜 마음과 좋은 마음이 한군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 좋은 마음으로 자유스럽게 바꿔 쓸 수 있어야 되겠지요. 여러분 몸속에 있는 자생중생들을 바로 제도를 하려면 거기서 악업도 나오고 선업도 나오고 잘못하는 일도 나오고 강도짓도 나오고, 또한 선행을 할 수 있는 그 마음의 자세도 그 한마음 속에서 다 나오는 거니까 한마음 속에서만이 해결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바로 거기다가 다시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인간이기 때문에 나쁘고 좋은 거는 본래 다 알거든요.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자기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자기가 욕심 부린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집착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잘못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렇게 하면 나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 겁니다, 본래. 전부 알고 계시죠? 그걸 좀 대담하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인공, 이런 거 잘못되면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너만이 그렇게 안 하게 나를 이끌어 줄 수 있잖아.’ 하고 거기다 일임하는 겁니다. 그러면 입력이 되는 거지요.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공부해 나가시면 되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앞에 강이 있는데 그냥 그게 길이라고 가라고 그런다면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그냥 가야 옳겠습니까? 하여튼 그 자리에서 시키기는 대로만 한다면 강을 건너가야 되겠죠, 빠져 죽더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 문리를 틔게 하고 지혜를 내게 하고 마음의 발전을 위해서 바로 그렇게 던져 보는 겁니다. 던져 볼 때에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거기서 빵점을 먹으면 도루묵이 돼 버립니다. 그 시도한 것이 무효가 돼 버리는 거죠, 그냥.
만약에 조용히 일하다가 갑자기 ‘너, 거리에 나가서 춤 좀 춰 봐.’ 이러면 춤추겠습니까, 또? ‘응, 내가 어떡하나 보느라고 그러는 거지.’ 그러고 바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부처님께 누가 되고 자기한테 누가 되는데, 가정에 누가 되고 모두에게 누가 되는데 그 짓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누가 되는 일이라면 그것을 다스려야죠, 이제 마음을. 거기서 나오는 대로 좋은 거는 하고 언짢은 거는 ‘아, 이럭하면 안 되잖아, 누(累)가 되는데.’ 하고 거기다가 ‘나를 테스트 해 보려고 이러는 거구나.’ 하고 거기다가 되놓고 ‘참, 나를 가르치려고 그러니까 감사하구나.’ 하고 놔야지, 제 자리에다 되놔야지 그것을 안 된다고만 하고 온통 주인공이 시키는 대로만 또 좇아간다면 이거는 죽도 밥도 안 돼요.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다 이겁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 가운데에 사람이 잘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이 제일 으뜸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여러분이 “아휴, 우리는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어서 스님한테 왔습니다.” 이럴 때가 있거든요. “판단은 자신들이 해야지, 왜 내가 해!” 이럴 때가 많죠. 아, 자기네 가정 살림살이에 대한 문제는 사는 사람들이 판단을 더 잘하지, 내가 더 잘하겠습니까? 주인공에서 나쁜 걸 시키든지 좋은 걸 시키든지 다 하라는 게 아니에요. 나쁜 걸 시키는 거는 뜻을 보려고 하는 것이고 좋은 걸 시키는 거는 그렇게 그냥 하면 되는 거고. 그러니까 이 양면을 다 놓고 그 가운데서 마음을 잘 내서 생각을 잘해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래도 믿는 거고 저래도 믿는 거죠, 자기를 가르치는 채찍이니까. 가르치기 위해서 자꾸자꾸 뜻을 보는 거니까. 가르치는 스승이니까. 자기 마음의 스승이니까. 자기 마음의 스승도 됐다가 때에 따라 친구도 됐다가, 때에 따라 부처도 됐다가 법신도 됐다가, 때에 따라선 부모 조상도 됐다가 자기 영혼도 됐다 별놈의 게 다 돼서 돌아가요. 한 아버지가 남편도 되고 아들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모두 이렇게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이 묘한 법을 여러분이 잘 채택해서 잘해 나갈 수 있어야만이 그대로, 무심에서 나가는 그 모든 도리가 법이 돼서 현실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법에서는 내가 잘한다 못한다 이거를 다 떠나야 된단 말입니다. 자기를 형성시킨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지 심부름꾼이 뭘 그렇게 생각을 할 게 있습니까? 한 발짝 떼어 놓으면 없어지고 한 발짝 떼어 놓으면 없어지는 이 도리를 잘 아시면 나쁜 것도 법이고 좋은 것도 법이고, 잘못하는 것도 법이고 잘하는 것도 법입니다. 그 양면을 다 놓을 수 있다면 그거는 도(道)입니다. 진리입니다. 본래 진리라는 것은 놓고 가고 있습니다. 놓고 가는데 괜히 여러분이 붙들고 앨 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좋은 것도 자기가 한 거고 나쁜 것도 자기가 한 거기 때문에 둘 다 싸잡아 쥐고 지켜봐야 합니다. 어떤 게 좋은가를 자기 스스로서 지켜봐라 이겁니다. 그러면 다시 나쁘다 좋다를 거머쥔 채 자기는 ‘아하, 이것을 운전은 내가 하는 거로구나. 나침반이 나로구나.’ 하고서 그걸 거머쥐고 돌릴 수 있게 됩니다. 이해가 되실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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