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한 마음 채워지지 않아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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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한 마음 채워지지 않아요

본문

질문

다니던 직장을 퇴임하고 나니 이제야 집 가까운 절에 인연이 되어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육신은 아파서 시들어 가고 사후의 일도 좀 걱정이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늘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있습니다만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뭐가 문제가 있는 건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오늘날의 우리 불교가 기복으로만 나가기 때문에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그 모든 일체 만법의 맛을 모르고, 먹을 줄 모르고 줄 줄도 모르고 이거는 막막하기가 한량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어디가 아파도 어떻게 처리해야만이 낫는지 그것도 모르고 누가 그러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만 가는지도 모른다 이겁니다. 그럼 여러분이 죽는다 산다 이것이, 사후에 어떻게 되느냐? 이 문제들도 여간 참 문제점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후도 바로 지금이 있어야 사후가 있는 거지 지금 없는데 사후가 있겠습니까.

굼벵이가 매미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근본 축이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겁니다. 영원한 자기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립니다. 그러면 대의적으로 봤을 때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매미가 될 수 있죠. 자기 마음의 차원이 조금, ‘나는 왜 기어다니기만 할까? 왜 저렇게 날지 못할까?’ 할 때 날게 될 수 있는 진화력이 생긴단 얘깁니다. 그래서 그렇게 됐건만 굼벵이가 매미가 된 것도 모르고 매미가 굼벵이였다는 것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이 어디서 왔는지, 내가 이걸 어디로부터 어떻게 해야 처리가 되는지 그것조차도 여러분이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늙어 가면서 얼마나 허무합니까? 벌써 이 세상에 생겨났다 하면 뚜벅뚜벅 죽으러 가는 형편이니 얼마나 허무합니까, 인생이. 고생은 고생대로 죽도록 하고, 쳇바퀴처럼 말입니다. 돌아가면서 자식 기르느라고 햇빛 주랴, 묵은 빚 갚으랴, 이건 여념이 없이 그냥 돌고 돌고 또 돌고 돌다가 머리는 허옇게 세어지고 인제 수족은 못 쓰게 되니 얼마나 허무한 문제입니까?
 
그런데 허무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면 이 마음 도리를 꼭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늙으나 젊으나 이 몸이 있을 때 그 도리를 알아야 진화력이 생겨서 바로 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죽지 않는 도리를 알게 되고, 끄달리지 않는 도리를 알게 되고, 업을 지니지 않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날 기복으로 그저 밥이나 해 놓고 떡이나 해 놓으면 부처가 잘 먹는 줄 알지만 여러분의 부처가 다 먹어치우고 가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 부처가 더 가져 오너라, 덜 가져 오너라, 많이 가져 오너라, 맛있는 거 가져 오너라, 다 내가 먹겠다 이럽디까? 그러니 어느 종교나 기복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 말들은 좋지. “부처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에 있죠.” 이런 말들이야 뭐, 누군 못합니까? 실천이 문제지. 그 근본의 실천이 문제예요. 한 걸음 한 걸음 떼 놓을 때 공짜로 떼 놓지 말라 이겁니다. 말을 하면 그 뜻과 말과 행이 같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따로따로 있지만 한번 만나면 둘이 아닙니다. 한마음입니다, 그대로. 그러나 헤어졌을 때는 너고 나입니다. 그래서 한 찰나에 이렇게 만나서 이럴 때는 원력이 있는 스님네라면 스님네한테 충전을 해 갑니다. 충전 있죠? 전기에 꽂아 놓으면 충전되듯이. 충전이 돼서 한 일주일 가면 또 충전이 빠져요. 그럼 또 충전해 가야 되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자가발전소가 그대로 있으면서 가설이 된 데에 용도대로 자기가 스위치 눌러서 쓸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의 능력을 기르시라 이 소립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인이요, 그것이 바로 자유인의 법칙이며, 그것이 부처며 그것이 보살의 행위며 그것이 진리 아니겠습니까?

부처는 가만히 있으면 부처고 생각 냈다 하면 법이고 법신이고 아, 움죽거렸다 하면 화신인데 어째서 화신 따로 있고 법신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고 중생이란 이름 따로 있고…. 아니, 그렇게 이름이 많아야 합니까? 그거는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서 조화를 이루려니까, 회전을 하려니까 이름을 지어 놓은 것뿐이에요. 여러분도 이름이 제각각이죠. 이름은 각각이나 그 이름이 해 줍니까? 이름은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할 때, “아무개야!” 부를 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이름을 지어 놓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이 능력에는 이름, 이런 것이 다 필요 없죠. 그러나 필요 없지 않다는 것은 그것도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진리다 이겁니다. 그거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우리가 이름을 모르면 불러서 일을 시킬 수가 없고 이름을 불러서 서로 웃을 수가 없고 얘기할 수가 없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니 그 능력을 길러서 모든 걸 안다면 이 몸도 그냥 그대로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실상이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밖으로 끄달리지 마시고 열심히 정진하시어 안으로 충만해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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