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슬플 때가 많아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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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슬플 때가 많아요

본문

질문

저는 굉장히 슬플 때가 많습니다. 지구의 모든 돌아가는 상황과 그 지구 안에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마음이 아픈데요, 어떻게 하면 그 상황의 지배를 안 받고 즐거워질 수가 있고 그것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당신부터 즐거워질 수 있어야, 즐거운 걸 알고 자기부터 알아야 남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있죠. 그런데 내가 모르고는 나의 육체를 건사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죠. 남을 건질 수 있는 의욕이 없어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족을 이끌어 나가려 해도 나부터 알아야 된다는 결론이 됩니다.

지금 당신이 있기 때문에 아픈 줄도 알고 당신이 있기 때문에 세상도 있고 당신이 있기 때문에 상대도 있고 당신이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것도 모두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신부터 알아야죠? 내가 그걸 자세히 말로 하려 해도, 진리이기 때문에 말로 안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 하자면, 당신 몸뚱이를 이끌어 가는 당신의 근본 주인이 있는 건 아십니까? 그냥 생각으로만 아시죠? 통하지 못합니까? 나의 주인하고 나의 육체 나하고 통하지 못하느냐고요?

이게 과정이라고 할 수도 없고 100% 한다고 할 수도 없겠지마는 나와 나를 발견하는 데는 무조건 믿어야 한단 말입니다. 거기에 이유가 붙으면 그건 무효가 됩니다. 관하는 것이 통할 때는 정수에까지 찰나에 이루어져야 이게 관법(觀法)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너만이….'' 그 주인공은 수억겁을 거치면서 진화를 시키고 형성을 시킨 장본인이거든요. 지금도 이끌어 가지고 가는데 이끌려 가는 사람이 이끌어 가지고 가는 사람의 그 뜻을 몰라요.

그러니까 그렇게 모르고 무시 아닌 무시가 되니까 여러분한테 주어진 걸로만 살게 돼 있지 더 줄 수는 없다 이겁니다. 더 주어질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몸이 아프다면 ''주인공, 너만이 너의 육체를 건강하게 낫게 할 수 있어.'' 이렇게 해야죠. 그러면 보이지 않는 데서 의사로서 응신이 돼서 자기를 보필해 나갈 수 있어요. 그래서 모두 예전부터 이 공부는 은산철벽을 뚫는 거와 같고 바닷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다. 배가 있으면 강이 없고 강이 있으면 배가 없으니 어찌 건너갈 수 있겠느냐. 그러나 마음이라면 한 찰나에 건너갈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병이나 어떠한 고달픈 시련이나 또는 가정에 어떠한 문제가 닥쳐도 우리 이 공부 하는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아유, 그런 건 왜 걱정을 합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을…." 하고 아주 즐겁게 살거든요. 그 모두가 아주 일거수일투족이, 이 세상 살림하는 거, 사는 거, 모두가, 우주의 섭류 돌아가는 것도, 과거 현재 미래가 돌아가는 것도 다 하나의 광대무변한 평등공법으로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써 내 주인공을 진짜로 믿는다면…. 옛날에도 그랬죠. 하도 기도를 하고 그렇게 찾으니까, 어느 스님이 가다 보니 사방으로 절을 하고 온통 물을 떠 놓고 야단법석을 하니까 "자네한테 신이 있고 자네한테 주장자가 있고 자네한테 법신이 있는데 왜 딴 데 가서 자꾸 절을 하고 찾느냐?" 이렇게 말을 하고 가는 걸 듣고선 그대로 다 버리고 그냥 나 주인공을 진짜로 믿고 찾았더니 살았더랍니다. 그런 게 걱정이 안되는 거예요, 본래는.
그래서 이 내 자성이라고 하는 주인공은요, 본래 더럽고 깨끗한 게 둘이 아닌 청정한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둘이 아닌 청정함을 알라.'' 이렇게 한 거죠. 예를 들어서, 이해가 안 가시면 바닷물에 수없는 흙물이든 핏물이든 고름물이든 어떠한 물이든 거기 닥치면 그게 모두가 둘이 아니라는 얘기죠. 둘이 아닌 젖는 것뿐이니라, 이게. 젖는 거. 파도가 치고 이러는 것도 다 마음의 장난이고 젖는 것뿐이니라. 젖는 것은 어느 물에도 젖어요.
 
그러니까 그런 뜻을 생각해서 모두 여러분의 몸을 이끌어 가는,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몸이 그냥 다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몸속에서 생명들이 작용을 해 주기 때문에 다니는 거고, 마음을 크게 쓰느냐 작게 쓰느냐 하는 그 삶도 역시 여러분의 근본, 여러분을 이끌고 다니는 기사, 기사가 있기 때문에 자기의 몸을 끌고 다닌다 이거죠.

나는요, 그래서 기쁘게 살고 있어요. 난 누구나가 보고 가고 누구나가 얘길 하면 그냥, 또 얘길 안 해도 알겠지마는 사람이 나와 더불어 같이 산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죠? 남이 아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울거나 그렇게 할 때에, 그거보다도 더한 일도, 집을 뺏기고 거리로 나앉을 때나 이런 때도 같이 웃어 줄 수 있고 같이 해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죠?

그래서 나는 살면서 길에 지나가다가도 나보다 모자라는 사람, 불쌍한 사람, 애들을 끌고 집을 내쫓겨서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보면 그냥 죄 털어서 줘야 배기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게 너무 많이 나가요. 이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외국에서는 신도들이, 회장님들이 이 경제를 다 다스려요. 근데 우리는 그렇지를 못해요. 누구든지 다 그렇게 공부한 사람은 이런 공부를 가르쳐 줘서 너무나 감사해서 머리를 깎아서 신을 삼아 드려도 그 은공을 못 갚는다는 거죠. 그리고 한 달에 얼마씩이라도 꼭 갖다가, 운영하시라고 갖다 줘요.

어느 날 하루는 어떤 분이 아들이 아프다고요, 아들이 아픈데 병원을 아주 여러 군데 다녀 봐도 "이건 고질병이 돼서 못 고칩니다." 이러더래요. 그리고 천도재를 지내러 왔어요. 여기 돈으로 한 오천 불은 될 거예요. 가져왔는데 그 오천 불 받자마자 말입니다, 그 옆에서 울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어요. "사글세로 살았는데 사글세 값 보증금 낸 것이 다 까져서 인제는 나가라고 하니 어디로 나갑니까?" 하면서 울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천도재 지낼 걸 줬죠. 재밌는 얘기죠?

그래 천도재 지낼 사람은 와서 "스님, 왜 천도재 안 지내 주십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죠. "네가 급하다 하니까 천도재는 금방 빨리 했다. 벌써 지내 줬다." 이랬죠. 그랬더니 그래도 못마땅해서 머무적머무적하더니 그냥 가더군요. 그러더니 그 이튿날 그냥 새벽같이 왔어요. 왜 왔느냐고 하니까요, 자기 아들이 그렇게 앓고 그렇게 먹지 못하던 게 그냥 일어나서 먹더라, 그리고 일어나더라 이러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시를 어디에 했나요? 이쪽에도 보시를 했고 저쪽에도 보시를 한 거죠? 양면을 다 살린 거죠? 이게 진짜 보시예요. 물질적으로만 주는 게 보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 아픔을 내 아픔과 같이 생각하고 그냥 정신으로써 보시하는 게 물질적으로 보시를 얼마 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광대무변할 뿐만 아니라 이 우주의 섭류의 근본이 우리 근본 마음에 다 이렇게 교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인생을 편안하게 사세요. 자기가 하기에 달려 있으니까. 또 내가 이렇게 가르쳐 준 대신에 딴 사람도 그렇게 건지란 말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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