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마음도 우리와 같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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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요즘은 살기가 힘들어지다 보니 집에서 잘 기르던 동물들도 내다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더러는 그런 동물들을 거둬서 살려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동물들의 마음이나 우리들의 마음이나 똑같은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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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언젠가 제가 산으로 돌아칠 때 장마가 들어서 비가 오려고 그러는 것도 아닌데, 맑은 저녁에 말입니다, 개구리가 알을 물고 발로 끌고 가요. 난 별거 다 봤어요. 그래서 ‘참 이상스럽다.’ 그랬더니, 그걸 끌어다가 물 바깥으로 이만치 올려다가 가지에다가, 땅 풀숲에다가 갖다 놔요. 그러곤 또 가더니 또 가지고 와요. 그거를 팔짱을 끼고 몇 시간을 앉아서 본 겁니다. ‘야, 참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저렇게 저러는데, 나는 부모의 그 가슴 타는 걸 아랑곳도 하지 않고 죽었나 살았나 얼마나 속을 썩이면서 이렇게 나와서 있나.’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거를 몇 시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그게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가는 도중에 벌써 빗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그 끌어온 자리가 물이 딱 들어서 그냥 쓸리는 거죠, 뭐. 그거를 봤을 때 제 생각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일체 만물만생은 다 부모 형제가 있고 다 저렇게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가 하면 다 주는구나. 거미도 자기 새끼들을 위해서 속을 다 빼 주고 겉껍데기만 남아서 휘휘 바람에 날리는 걸 봤거든요. 그런데 자식들은 뭐라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바글바글 기어오르면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우리 엄마 지금 시원하게 그네 뛰고 있다는 거죠. 우리 엄마 지금 시원하게 놀고 있다는 거예요, 그네 뛰고.
그뿐입니까, 개미 떼는 어떻고요. 이 말이 이어지지 않아도 거기선 이 귀로는 들리지 않습니다마는 이 마음의 귀로 들을 때는 그냥 연발로 이렇게 침을 꽂고 갑니다. 침을 꽂고 가면 연발로 그 침 꽂은 채로 행진을 합니다. 참 무서운 도리라고 봐요. 그러면 모든 게 우리 인간이 살아나가는 거와 뭐 다른 게 있습니까? 뱀도 그렇죠. 한 부부가 살다가 만약에 독살을 당했다거나 이런다면 그 부부가 하얗게 테두리를 하고, 정말이에요. 하얗게 테두리를 하고 복수하느라고 눈이 벌게요. 그런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이 도리를 등한시하시겠습니까?
한번은 산에서 제가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저는 그때 근 십여 년 동안 밥을 안 먹었습니다. 안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었습니다. 밥이 어디 있으며, 들고 다니지도 않았고 칫솔도 들고 다니지도 않았고 소금이라든가 옷이라든가, 먹을 거라든가 이런 거는 전혀, 나는 죽어야 나를 본다고 그래서 아예 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 죽게 돼서 거기 쓰러진 것이 어디 쓰러졌느냐 하면 소똥에다 그냥 들이박고 쓰러졌단 말입니다, 그렇게 지쳐서 다니니까. 지쳐서 쓰려졌다가 인제 정신이 나서 이렇게 보니까 쥐란 놈이 말입니다, 참 내! 고구마를 말입니다, 요만한 고구마를 두 발로다가 요렇게 이마에 대고 말입니다, 깡충깡충 뛰는 겁니다.
세상에 드러누워 정신없다가 정신이 나 가지고 눈만 겨우 이렇게 뜨고서 보는 내가 얼마나 웃었던지 말입니다. 거기서 그냥, 하여튼 기운이 없어서 크게 웃진 않았지만 그 희열이 넘친 입이 이만큼 벌어지면서 기운이 난 거예요, 그걸 보고. 야 참, 아무 생각도 없이 웃으면서, 몸이 붙어서 그냥 놀려지지도 않는데, 별안간에 입이 이만큼 찢어지면서 웃음이 나는 게, 거기서 그냥 웃음이 나면서 침이 생기면서 그냥 기운이 난 겁니다.
그런데 날 보더니 고구마를 거기다 똑 떨어뜨려 놓고 가는 거예요. 깡충깡충 가는 거예요. 사실은 그걸 먹고 물을 마시고, 물을 아홉 모금을 마셨는데, 한 모금이 세 모금이고 세 모금이 아홉 모금이고 아홉 모금이 세 모금이고 또 세 모금이 아홉 모금이니라. 이 시공을 초월한 법을 거기서 배웠어요.
그러니까 모든 게, 일체 만물만생을 내가 내 생명같이 아낀다면 어떠한 생명이라도 날 구합니다. 정말입니다. 그건 거짓이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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